키키 스미스, 자유낙하, 1994, 에치젠 고조 기즈키 종이에 요판 인쇄, 포토그라비어, 에칭, 드라이포인트, 84.5X106.7㎝ ⓒ키키 스미스, 유니버설 리미티드 아트 에디션 제공

키키 스미스, 자유낙하, 1994, 에치젠 고조 기즈키 종이에 요판 인쇄, 포토그라비어, 에칭, 드라이포인트, 84.5X106.7㎝ ⓒ키키 스미스, 유니버설 리미티드 아트 에디션 제공

오래전인데도, 처음 스카이다이빙을 했던 날, 내 몸이 경험한 낙하의 순간에 대한 기억은 꽤 생생하게 남아 있다. 전문 강사에게 매달려 비행기에서 뛰어내린 뒤 그가 이끄는 대로 하늘을 날았다. 난다고 말하기에는 떨어지는 중이었겠지만, 착각이라고 해도 잠시나마 맨몸으로 하늘에 떠서 몸을 스치는 바람을 실감하는 시간은 두려움과 두근거림으로 차올랐다. 공포에서 벗어나 하늘을 즐길 수 있을 정도가 되었을 무렵 낙하산이 펼쳐졌다. 순식간에 낙하의 속도가 줄어들었다. 낙하산에 의지해 세상의 풍경을 만끽하기에는 울렁증이 심했다. 낙하산을 펼치기 전의 시간이 그리워졌다. 거스를 수 없는 중력의 지배를 받는 가운데, 잠시 누릴 수 있었던 비행은 세상의 모든 틀에서 벗어난 것 같은 일종의 해방감과 비슷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다시 하늘로 올라가고 싶었다.

오랜 세월 육체를 매개로 다양한 질문을 이어왔던 키키 스미스가 자신의 나체 사진을 소재로 제작한 작품을 ‘자유낙하’라고 명명한 바탕에는, 고착된 세상의 구조로부터 한발 떨어져 나오고 싶은 작가의 욕망이 있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그는 자신의 나체 사진을 적외선 필름으로 동판 위에 옮기고, 배경을 사포로 문질러 거친 질감을 연출한 ‘자유낙하’를 책의 형태로 제작했다. 작가가 뛰어내리고 싶었던 세상은 다름을 차별의 근거로 여기고 혐오를 정당화시키는 세상, 정신과 육체를 분리해 가치를 이분화하고 중심과 주변을 나누고 여성과 남성을 나누고 우월함과 열등함을 구별해 위계질서를 부여하는 세상, 금기를 양산하는 세상이 아니었을까.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돌아가는지 알 수 없어져버린 세상의 질서는 자유낙하할 수 있는 용기를 상실한 이들이 구축한 견고한 성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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