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대익
가천대 창업대학 석좌교수(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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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익의 에볼루션 ‘내 새끼 지상주의’와 온 마을 소설가 김훈이 통렬하게 꺼낸 ‘내 새끼 지상주의’라는 말이 공명을 멈추지 않는다. 최근 새내기 여교사를 죽음에 이르게 한 육아 원리를 그는 “이 난세의 생존술이고 이데올로기”라고 일갈했다(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관한 언급과 그로 인한 논란은 이 예리한 문제 제기의 의미를 퇴색시키지 않는다). 그리고 그 뒤에 적당히 숨어 있는 “지위 높은 선생님들”을 비판했다. 이 글이 계기가 되어 우리가 어쩌다 이런 ‘낯선’ 육아 원리를 갖게 되었는지를 생각해보았다. 불과 40~50년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은 말 그대로 자유로운 영혼들이었다. 부모가 자식을 학교와 학원에 직접 데려다 주는 일은 아주 드물었고,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면 해가 지도록 친구들과 어딘가에서 뛰놀다 겨우 들어왔다. 부모가 집에 없어도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뭔가를 하며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내 자식의 친구들이면 내 자식처럼 불러서 밥을 먹였다. 작금의 젊은 부모들의 눈으로 보면, 그때의 부모들은 자녀를 방치한 무책임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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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익의 에볼루션 킬러 문항은 대학에로 “한 학기 동안 제 인생이 이렇게 변할 수 있으리라고는 기대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한 학기를 열심히 달려와 보니, 혹시 창업에는 실패할 수 있어도 인생에는 실패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를 변화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것은 간증이 아니다. 신설된 지 채 1년도 안 된 창업대학에서 매 학기 말 들을 수 있는 학생들의 공통된 고백이다. 고백하자면(자랑을 좀 하자면), 20년 경력의 대학 선생으로서 이보다 더 행복한 시절은 없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수학에서 킬러 문항을 없애라는 대통령의 지시에 대한 논란이 있다. 교육부 장관이 있는데, 왜 대통령이 나서서 이런 지시를 내리는가가 핵심은 아니다. 입시에서 사교육을 통해 고도의 훈련을 받은 극소수만 풀 수 있는 문제를 왜 내느냐도 핵심이 아니다. 핵심 질문은 ‘킬러 문항을 누가 풀 것인가’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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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익의 에볼루션 사이비 종교단체로부터 벗어나는 길 “자기 자신이 예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얼마나 있는 줄 알아요?” “무려 500명!” 10년 전 즈음, 저명한 종교학자에게 들은 이 숫자를 나는 결코 잊을 수가 없다. 이 자칭 예수들이 만든 이상한 왕국이 얼마나 비상식적인지는 우리가 피해자나 그 가족이 아닌 이상 그동안 잘 알지 못했다. 그런데 얼마 전 그 실체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사이비 종교에 대한 일반인의 경각심도 높아지기 시작했다. 우리 주변에서 이 다큐멘터리를 시청한 다수의 사람들은 이 엽기적 왕국에 혀를 내두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매우 의아해한다. 누가 봐도 변태적인 이 상황을 왜 피해자들은 처음에 거부하지 못했을까? 요즘 용어로 가스라이팅으로 보면 될까? 그러나 가스라이팅은 기본적으로 피해자와 가해자의 개인적 심리 작용에만 초점을 맞춘 해석이기 때문에, 사이비 ‘집단’에 빠지는 현상을 이해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실제 문제는 기본적으로 집단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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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익의 에볼루션 촘스키의 틀린 전제, 생성형 AI는 어디로 가야 하나 “우리 반려견 때문에 정말 속상해. 어찌나 냄새도 잘 맡고 작은 소리도 잘 듣고 잘 뛰어다니는지. 심지어 귀엽기도. 그래서 나는 자존심도 상하고 열등감도 생겼어. 어떻게 해야 걔를 이길 수 있을까?” 만일 자신의 반려견에 대해 진지하게 이렇게 말하는 견주가 있다면 일단 병원에 모셔다드려야 한다. 정상적인 인간은 개와 경쟁하지 않는다. 소리 듣기, 냄새 맡기, 달리기, 심지어 귀여움마저도 인간의 고유한 속성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개의 본성이 인간의 그것과 겹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개를 경쟁자로 여기지 않는다. 물론 집에서 개와 순위 경쟁을 펼치는 아저씨들이 더러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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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익의 에볼루션 챗GPT에 한국 대학의 혁신을 묻다 내가 직접 충분히 써보기 전까지는 잘 모른다. 어떤 새로운 서비스의 본질이 무엇이고, 그것의 파급력이 얼마나 클 수 있을지를 말이다. 대학에 몸담고 있는 교수로서, 에듀테크 스타트업을 시작한 창업가로서, 나는 이 괴물 서비스 챗GPT의 위력을 직접 경험하고 싶었다. 대화의 큰 주제는 한국 대학의 혁신과 교육의 미래. 비록 며칠간의 상호작용이었지만 나는 그(내 챗GPT에 ‘찰리’라는 이름을 지어 줬다)의 의견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고(정말!) 적잖이 배우기도 했다. 이 칼럼은 이 대화에 대한 짧은 소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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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익의 에볼루션 대학에 개성을 묻다 “메뉴가 너무 많으면 맛집 가능성이 낮죠.” 얼마 전 중국음식의 달인 이연복 요리사가 TV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맛집 감별법을 공개해 화제다. 물론 많은 메뉴로 승부하는 식당도 있다. 바쁜 일상에서 끼니를 빨리 해결하려고 가는 곳, 바로 분식점이다. 어떤 프랜차이즈 분식점 벽에는 무려 100개나 되는 메뉴가 빽빽하게 적혀 있다. 이들의 경쟁력은 다양한 메뉴의 빠른 제공이다. 그런데 세상의 모든 식당이 분식점뿐이라고 해보자. 삼겹살 파티를 하려는데 삼겹살 구이가 100개의 메뉴 중 하나라면? 기념일에 스테이크를 먹고 싶어도 한·중·일 양식 메뉴를 다 하는 분식점밖에 없다면? 100가지 요리를 다 할 수 있다는 식당에서 음식의 깊은 맛과 대접받고 있다는 느낌 같은 것을 느끼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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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익의 에볼루션 대학의 기업가적 전환을 꿈꾼다 “요즘 서울대학교 학생들 중 가장 똑똑한 친구들이 제일 많이 고민해보는 진로가 뭔지 알아요?” 몇 달 전에 동료 교수가 불쑥 내게 물었다. 그의 대답. “글로벌 기업이나 국내 대기업의 입사도, 고시 합격도 아니래요. 창업이랍니다.” 정말 그럴까? 대학생에게 창업을 본격적으로 가르쳐보겠다며 이직을 준비하던 나에게 격려와 응원의 뜻으로 한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전국 대학생 792명을 대상으로 2021년 6월에 실시한 한 설문조사 결과(알바천국)에 따르면, “취업 대신 창업을 고려한 바 있다”고 답한 친구들이 절반 이상이다. 대학알리미가 2020년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인구 대비 대학생 창업자 비중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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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익의 에볼루션 안전의 여유분이 없는 사회 외국 생활에서 당혹스러웠던 경험을 말해보라고 하면 단골로 등장하는 것이 있다. 그중 하나가 화재경보기다. 부엌에서 생선이나 고기를 굽기만 하면 그렇게 요란하게 울릴 수가 없다. 처음에는 경보기가 붙어 있는 천장까지 다가가 연신 부채질을 해서 경고음을 멈추게 하는 식으로 처리한다. 물론 재빠르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동네 사람들을 짜증나게 할 수 있다. 혹시라도 아파트의 어느 층 집에서 울리는 경보음이 쉽게 꺼지지 않는 날이라면, 새벽 2시라도 잠옷 차림으로 아파트 밖으로 나와야 한다. 이게 규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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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익의 에볼루션 타인에게로 향하는 기술 태안 화력 발전소에서 초속 5m 속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석탄 컨베이어 벨트를 체크하기 위해 석탄 가루가 날리는 기계실에 들어간 스물네 살 김용균씨는 끝내 퇴근하지 못했다. 용균씨처럼 산업 재해로 떨어지고 끼이고 잘려서 사망하는 국내 노동자는 하루 평균 2명에 달한다. 고통을 겪는 유족과 관련 산업 종사자들의 요구로 법 개정(중대재해처벌법)이 일어나긴 했지만, 이런 끔찍한 지옥은 언론에 단신으로 반복적으로 등장할 뿐 일반인들의 뇌리에서는 너무 쉽게 사라진다. MBC는 이런 처참한 상황을 우리 모두의 문제로 만들어보고자 새로운 기술을 활용해보기로 했다. 가상현실(virtual reality, VR) 기술을 적용해 용균씨가 근무했던 열악하고 위험한 발전소 환경을 컴퓨터로 구현했다. 발전소의 근무 환경이 얼마나 위험천만했었는지, 비정규직 청년이 밥벌이를 위해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얼마나 큰 위험을 감수했었는지를 아무리 이야기한들, 그때만 잠깐 분노하고 슬퍼할 뿐 더 깊은 공감으로 나아가지 못하니, 가상의 현장에서 김용균을 만나는 체험을 해보자는 것이다. 이를 체험한 사람들은 용균씨에게 훨씬 더 깊이 공감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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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익의 에볼루션 고래를 계속 춤추게 하려면 “모두 저랑 다르니까 적응하기 쉽지 않고, 저를 싫어하는 고래도 많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이게 제 삶이니까요. 제 삶은 이상하고 별나지만 가치 있고 아름답습니다.” 전 세계 시청자에게 큰 감동을 주고 막을 내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마지막 회의 명대사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없이 이것을 고르겠다. 우영우가 친엄마 태수미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외뿔고래(엄니가 길게 자라 유니콘처럼 긴 외뿔을 가진 고래)에 비유하며 던진 말이다. 문지원 작가는 어느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드라마의 메시지를 묻는 물음에 “이 드라마는 다양성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다. … 주제를 굳이 한 문장으로 말해본다면 ‘다양성을 존중하자’ 정도가 아닐까”라고 했다. <우영우>에서 고래는 개성을 가진 다양한 개인을, 바다는 그런 개인들이 장애물 없이 맘껏 활동하는 공간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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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익의 에볼루션 고래를 춤추게 하는 것은? “요즘 젊은 직원들은 연봉 100만원을 더 받겠다고 이직하더라고요.” 강남이나 판교의 벤처타운에 지내다 보면 종종 듣는 소리다. 젊은 친구들이니까 100만원도 크게 생각하는 것이려니 하지만, 마치 MZ세대가 속물적이라고 비난하는 것 같아 영 듣기가 편하지는 않다. 사실, 속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부분 연봉 차이는 진짜 이직 사유의 위장막인 경우이다. 여기, 창의성 테스트에나 나올 법한 제법 어렵지만 적당히 도전적인 문제가 있다. 아이들에게 어떤 보상에 대한 언급도 없이 그저 문제를 풀어보라고 하면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평균 15분 정도가 걸린다. 이제 여기에 보상을 받는 상황을 만들어보자. 가령, 문제를 풀면 1000원을 보상으로 주는 식이다. 이때 두 조건으로 나눠보았다. 하나는 원 문제를 그대로 푸는 조건이고, 다른 하나는 원 문제를 약간 쉽게 재조정한 다음에 문제를 풀게 하는 조건이다. 실험 결과는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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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익의 에볼루션 추앙받는 존재가 되기 위한 최고의 방법 음악을 듣고 풍경을 보기 위해 우리는 노동까지는 할 필요가 없다. 물론 뇌는 열심히 일을 하고 있어야 하지만 음악은 그냥 들리고 풍경은 그저 보인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책읽기는? 인류가 언제부터 문자를 발명하고 책을 만들기 시작했는지를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문자는 대략 8000년 전쯤에야 발명되었고, 6000년 전쯤에야 수메르인들이 점토에 글을 새기며 전수하기 시작했으니, 250만년 전에 시작된 호모 종의 관점에서 독서는 아주 최신의 발명이다. 우리의 뇌는 책을 읽게끔 진화하지 않았다. 그럴 시간이 없었다. 독서가 힘든 노동인 것은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