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를 춤추게 하는 것은?

[장대익의 에볼루션] 고래를 춤추게 하는 것은?

외적 보상이
행복을 준다 믿는 사람은
자율성 욕구가 없기보다
그것을 억누르고
유능감에 집착하는 이들
그래서 더 큰 상에 집착

진정한 기쁨은
내면서 나오는 것이기에
자율성 욕구가
만족되지 않으면
내재 동기가 생기지 않고
삶이 휩쓸려 불행해진다

임윤찬씨는 산에서
피아노만 치고 싶다 했다
당신이 진짜로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요즘 젊은 직원들은 연봉 100만원을 더 받겠다고 이직하더라고요.” 강남이나 판교의 벤처타운에 지내다 보면 종종 듣는 소리다. 젊은 친구들이니까 100만원도 크게 생각하는 것이려니 하지만, 마치 MZ세대가 속물적이라고 비난하는 것 같아 영 듣기가 편하지는 않다. 사실, 속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부분 연봉 차이는 진짜 이직 사유의 위장막인 경우이다.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여기, 창의성 테스트에나 나올 법한 제법 어렵지만 적당히 도전적인 문제가 있다. 아이들에게 어떤 보상에 대한 언급도 없이 그저 문제를 풀어보라고 하면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평균 15분 정도가 걸린다. 이제 여기에 보상을 받는 상황을 만들어보자. 가령, 문제를 풀면 1000원을 보상으로 주는 식이다. 이때 두 조건으로 나눠보았다. 하나는 원 문제를 그대로 푸는 조건이고, 다른 하나는 원 문제를 약간 쉽게 재조정한 다음에 문제를 풀게 하는 조건이다. 실험 결과는 어땠을까?

실제 실험에서 아주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조금 쉽게 낸 문제는 대체로 1분 내로 다 풀었지만, 도전적인 원래 문제를 푸는 데는 보상이 주어지지 않은 경우보다 오히려 3분이나 더 소요되었다. 동기(motivation)에 관한 이 고전적 실험 결과가 말해주는 바는 외적 보상이 쉬운 문제를 푸는 데는 꽤 효과적이지만 도전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사실이다. 만일 어떤 회사가 인센티브 규정으로 인해 잘 돌아가는 곳이라면 역설적으로 쉬운 업무만 해결하고 만족하는 조직일 수도 있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동기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내재 동기와 외재 동기. 가령, 공부도 열심히 잘하고 말썽도 피우지 않는 아이지만, 만일 엄마가 그렇게 하면 선물을 준다고 했으니까 잘하는 경우라면 그 아이의 행동은 외재 동기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선물만이 아니다. 칭찬을 받기 위해 잘하는 것도 외재 동기의 작동이다. 심지어 아빠에게 혼나지 않기 위해 잘하는 아이도 마찬가지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만 칭찬도 외적 보상이라는 측면에서 돈과 다를 바 없다. 실험용 생쥐가 레버를 계속 누르는 이유도 ‘먹이’라는 외적 보상 때문이다.

‘외재 동기면 어떠랴, 칭찬이든 돈이든 통하면 그만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저 공부만 열심히 해주면 다 해주겠다는 부모의 마음을 어찌 모르겠는가? 연봉을 더 주는 것으로 누구든 데리고 올 수 있고 남게 할 수 있다고 믿고 싶은 회사 대표의 마음도 다 이해된다. 하지만 외적 보상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살피고 관리하는 일도 그리 쉽지 않다. 그들의 요구는 끝이 없기 때문이다. 가령, 작은 장난감에서 시작한 외적 보상이 게임기가 되고 자동차가 되더니 나중에는 집 한 채가 될 수도 있다. 한편 보상을 받는 자의 입장도 마냥 좋지만은 않다. 보상을 해주는 자와의 끝없는 갈등뿐만 아니라 남들과의 끝 모를 비교 때문에 마음이 황폐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칭찬은 외적 보상 측면서 돈과 유사

외재 동기만을 가진 직원들로 가득 찬 조직을 상상해보라. 거기에는 경쟁과 비교, 시기와 질투, 배신과 지배가 일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곳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스타트업의 성지인 실리콘벨리에서도 모두가 스톡옵션을 받고 일하는 것도 아니고, 스톡옵션을 받고 일하는 핵심 인재들도 이런 외적 보상 때문에 밤을 새워서 일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생쥐가 아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게는 내재 동기가 작동한다. 일종의 내적 보상 회로의 작동이다. 가령, 수학 공부가 단지 재미있어서, 글쓰기를 그저 좋아해서, 어려운 동료를 돕는 게 삶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어서 하는 행위들은 내재 동기의 작동 결과이다.

수학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 교수가 최근 언론에서 한 인터뷰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학자에게 내재 동기란 이런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는 수학 공부를 왜 하게 되었는지, 수학 연구란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재밌어서 … 인간이 얼마나 깊게 생각할 수 있는지 알고 싶어서 … 마라톤 뛸 준비를 위해 매일 웨이트트레이닝을 즐기는 것”이라고 한다.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수상 소식을 처음에 전해 듣던 상황을 회고하는 장면이었다. “수상 소식을 듣고 나서 아내를 깨워야 할지 말지 10분 정도 고민하다가 깨웠더니 ‘그럴 줄 알았어’라고 하고 다시 잤다”는 것. 필즈상을 존중하면서도 그 상에 집착하지 않았던 멋진 수학자 가족이라고밖에!

우리는 지금 그가 큰 상을 받아서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 열광하지만, 그는 미디어에 주목받는 것보다는 하루에 4시간 정도라도 수학 연구에 몰두하는 게 인생의 낙인 사람이다. 우리 주변에는 자연과 우주, 그리고 인간과 사회를 더 깊이 이해하는 게 큰 기쁨(쾌락이라고 해야 함)이어서 평생 학생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런 길 위에서 학자들이 탄생한다.

그들은 서울대학교 교수가 인생의 꿈이었다거나 대학 총장이 인생의 최종 목표라는 따위의 말을 하는 이들이 아니다. 그저 궁금하고 더 알고 싶어서 호기심과 끈기를 가지고 여기까지 오다 보니 그런 자리에 있음을 고백하는 사람들이다. “내 인생의 꿈은 노벨상을 받는 것”이라고 호언했던 사람들 중에 노벨상 수상자는 단 한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일반인에게도 잘 알려진 위대한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노벨 물리학상 수상 후 이런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나는 무엇이 상을 받을 만큼의 가치가 있는 연구인지를 판단하는 스웨덴 아카데미의 결정에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 나에게는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기쁨,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그 발견을 활용하고 있음을 목격하는 것 자체가 이미 큰 상이다. 이런 것들이 진짜이며 (노벨상) 영예는 비현실적인 것이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한 임윤찬씨는 대회 출전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한국 나이로 성인이 되기 전에 제 음악이 얼마나 성숙했는지 확인해보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우승을 위해서가 아니라고 했다. 그는 강조했다. “음악 앞에서는 모두가 학생이고, 제가 어느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번 콩쿠르 출전을 통해 더 배우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고등학생들에 자율성을 허하라

손흥민 선수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대활약을 펼친 날, 아버지 손웅정씨가 아들이 인터넷에 올라온 칭찬 릴레이에 도취될까봐 손 선수의 노트북을 압수했다는 일화는 꽤 유명하다. 외재 동기가 뇌를 지배하게 놔 두는 것이 문제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손웅정씨는 이미 알고 있었던 셈이다.

큰 상을 받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니까 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우리 같은 일반인들에게는 해당되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보자. 이들은 우리 일반인들에 비해 평생 수많은 상들을 받아온 사람들이다. 우리보다 외재 동기의 유혹에 더 많이 노출되었던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이 하는 이야기다. 진정한 기쁨은 내면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상을 타거나 누군가로부터 칭찬을 듣거나 남과의 경쟁에서 승리했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심리학의 ‘자기 결정성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의 행동을 자율적으로 결정하려는 욕구(자기 결정성)에 의해 내적 동기가 발생한다. 그리고 인간은 누구나 세 가지 기본 욕구를 가지며 이것이 충족되었을 때 만족스러운 인생을 살 수 있다. 주변 환경을 잘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자 하는 욕구(유능감 욕구), 타인과 좋은 관계를 맺고 싶은 욕구(관계성 욕구), 그리고 인생의 과정을 자기 스스로 통제하고 싶은 욕구(자율성 욕구)가 그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욕구는 바로 자율성이며 이것이 훼손되거나 충족되지 않을 때 인간은 누구나 불행하다. 외적 보상이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믿는 사람들은 자율성 욕구가 없다기보다는 그것을 억누르고 유능감에 집착하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더 큰 상에 끝없이 집착한다.

대기업에서 잘나가는 삼십대 직원들과 친해지면 꼭 듣는 말이 있다. “회사에서 능력도 인정받고 동료들과의 관계도 원만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출근하기 싫어졌어요. 아무래도 번아웃이 온 거 같아요.” 그래서 이유를 물어보면 대체로 “열심히 일은 하지만 그게 모두 부장님이 시키는 일이에요”라고 조심스럽게 대답한다. 고등학생들은 절규한다. 제발 좀 내가 하고 싶은 것 좀 하게 해달라고.

자율성 욕구가 만족되지 않으면 내재 동기가 생기지 않는다. 이게 없으면 휩쓸리는 인생을 살게 되고 불행해진다. 우승하고 심란하다는 임윤찬씨는 산에서 피아노만 치고 싶다고 했다. 당신이 진짜로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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