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의 여유분이 없는 사회

장대익 가천대학교 창업대학 석좌교수(학장)
[장대익의 에볼루션] 안전의 여유분이 없는 사회

과잉이라고 비판받을지 몰라도, 반복적 붕괴를 경험하는 사회에서 탈출하려면 ‘안전의 여유분’부터 만들어 놓아야 한다
따라서 이태원의 좁은 공간에 수백 명이 운집할 수 있다는 신호를 받았다면, 그곳에 ‘안전의 여유분’을 만들었어야 했다
안전의 여유분 없는 사회에서 고통스럽게 희생된 청년들과 그 가족들에게 깊은 애도의 마음을 전한다

외국 생활에서 당혹스러웠던 경험을 말해보라고 하면 단골로 등장하는 것이 있다. 그중 하나가 화재경보기다. 부엌에서 생선이나 고기를 굽기만 하면 그렇게 요란하게 울릴 수가 없다. 처음에는 경보기가 붙어 있는 천장까지 다가가 연신 부채질을 해서 경고음을 멈추게 하는 식으로 처리한다. 물론 재빠르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동네 사람들을 짜증나게 할 수 있다. 혹시라도 아파트의 어느 층 집에서 울리는 경보음이 쉽게 꺼지지 않는 날이라면, 새벽 2시라도 잠옷 차림으로 아파트 밖으로 나와야 한다. 이게 규칙이다.

장대익 가천대학교 창업대학 석좌교수(학장)

장대익 가천대학교 창업대학 석좌교수(학장)

경보음이 울리면 화재가 난 것일까? 대체로 그렇지 않다. 프라이팬에 올려놓은 버터가 좀 타거나 고기 구울 때 나오는 연기들이 올라와서 그러는 게 대부분이다. 그 완고한 경보기는 그만한 연기에도 너무 민감하게 울려댄다. 감도가 낮은 제품이 나올 만도 한데 이 부분에 대한 타협은 없어 보인다. ‘어떤 연기라도 감지되면 곧바로 경보를 울릴 것’이라는 명령을 성실히 구현하고 있는 장치일 뿐이다. 그래서 화재경보기의 배터리를 아예 빼놓거나 부품을 하나 빼서 작동을 못하게 하는 편법이 전수되곤 한다. 대개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니까. 그러나 정작 그 연기가 진짜 화재 연기라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화재경보기의 감도를 낮췄다가 받게 될 엄청난 손실과 피해에 비하면, 차라리 온갖 연기에도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 우리를 귀찮게 하는 편이 낫다. 이처럼 ‘거짓 양성(false positive)’ 오류는 더 큰 피해를 막는 기능을 담당하기도 한다.

인간의 마음에도 화재경보기 같은 게 많이 존재한다. 우리는 그중 한 가지를 최근 3년 동안 이미 활용해왔다. 전염병이 돌고 있을 때, 아니 전염병이 돈다는 힌트만 있어도, 우리의 행동면역계의 스위치는 켜진다. 외부인들에게 경계심을 느끼며 회피하려는 마음이 생긴다. 즉 우리의 행동면역계가 ‘나와는 다름’이라는 신호를 전염병의 위험 신호로 착각하기 시작한다. 화재경보기처럼 과잉 감지를 하고 있는 것이다. 감염자일 수도 있는 사람들을 감지하지 못했을 때 받는 피해가 훨씬 크기 때문이다.

특정 음식에 대한 혐오도 마음의 화재경보기의 또 다른 예다. 누구에게나 냄새도 맡기 싫은 음식이 하나쯤은 있다. 가령 우리 주변에 순대나 회라면 질색을 하는 지인들이 있다. 그 맛있는 것을 왜 먹지 않느냐고 물으면 딱히 합리적 이유를 대지 못한다. 대개 “어렸을 때 먹었다가 크게 탈이 나서 그다음부터는 겁이 나서 못 먹겠다”는 식의 부정적 경험을 이야기한다. 먹는 행위는 단 한 번의 시행으로도 치명적일 수 있다. 독성이 있거나 특정 개인에게 맞지 않은 음식은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에다. 따라서 어떤 음식이 그 사람의 건강을 해치는 특성을 가졌다면, 그 음식을 혐오하는 행동은 마음의 단순 오작동이라고 볼 수 없다.

‘거짓양성’ 오류는 더 큰 피해 막아

마음의 화재경보기는 공간 지각을 할 때에도 작동한다. 사람들은 수직면의 높이를 가늠할 때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경우보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볼 때 더 높다고 판단한다. 이것도 오류라고 하기엔 꽤 쓸모가 있는 편향이다. 절벽의 높이를 실제보다 과소평가해서 아래로 뛰어내려도 되겠다고 의사결정을 하는 것은, 그 높이를 과대평가해서 뛰어내리지 않겠다고 판단하는 것보다 훨씬 더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언덕의 경사도를 가늠하는 경우에도 똑같은 시스템이 작동한다. 사람들에게 실제 언덕을 보여주거나 컴퓨터 화면으로 이미지를 보여주면 하나같이 언덕의 경사도를 과대평가한다.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는 것보다는, 올라갔다가 내려오지 못했을 때의 비용이 훨씬 더 크므로 경사도를 실제보다 더 높게 지각하는 것은 생존에 이득이 된다.

청각 장치에도 화재경보기 같은 것이 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음원과의 거리를 실제보다 더 가깝다고 지각하는 성향을 보인다. 가령 나에게 접근하는 음원과 멀어지는 음원이 나와 동일한 거리에 떨어져 있어도 접근하는 음원을 더 가까운 곳에 있다고 지각한다. 접근하는 물체가 나와 떨어져 있는 거리를 실제보다 더 가깝게 잘못 인식함으로써 그 물체에 일찍 대비하는 편이 생존에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화재경보기는 정서 작동 시스템 내에도 들어있다. 신경과학자들은 우리의 두려움이 두 가지 경로를 통해 발현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가령 우리 신체에 큰 위협이 되는 뱀이나 독거미 같은 동물들이 접근하면 그 신호가 정서적 공포를 유발하는 데 관여하는 편도체로 바로 전달되어 우리는 일단 놀라고 도망갈 준비를 한다. 이것은 아주 빠르게 일어나는 과정이다. 대신 값싼 과정이기 때문에 오류(‘뱀이 아니라 긴 파이프였음’)가 생길 수 있다. 반면 이 위협 신호가 결국 시각 피질에까지 전달되어 정확한 판단이 일어나는 또 다른 경로도 있다. 이 경로에서 의사결정은 느리게 일어나는데, 거기서는 ‘아 이것은 정말 뱀이구나’와 같은 정확한 판단이 발생하므로 더 많은 정보와 에너지가 소비된다.

그런데 이 느린 경로만 진화했다고 해보자. 컴컴한 밤에 풀숲에서 미끈한 긴 물체를 보고 ‘이게 과연 무엇일까’를 고민했던 사람은 우리 조상이 못 되었을 것이다. 뱀에 물려 죽었을 가능성이 꽤 높기 때문이다. 그런 물체를 보았을 때는 정확한 판단보다는 틀리더라도 일단 놀라고보는 편이 생존에 훨씬 큰 이익이다. 뱀 비슷한 것도 뱀이라고 지각하게 만드는 시스템, 이것도 화재경보기처럼 거짓 양성 시스템이긴 하지만 매우 쓸모 있는 인지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자연은 여유분을 통해 위기를 관리

대인 관계에 있어서도 화재경보기가 작동한다. 20년 전쯤, 당시 미국의 대형마켓 세이프웨이의 여성 점원들이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낸 적이 있었다. 세이프웨이는 점원들에게 친절교육을 한답시고 소비자가 계산대에서 카드를 줄 때, 카드에 새겨진 이름을 재빨리 보고 “스미스씨, 오늘도 행복하게 보내세요”라는 식으로 대응하게 시켰다. 그러자 점원들의 그런 친절 행동을, 자신에게 관심이 있어서 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남성 소비자들이 나타났고, 그런 남성들이 여성 점원들에게 추근대기 시작하자 점원들이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건 것이었다. 이 회사의 대표는 남성이 자신을 향한 여성의 신호를 과대평가하는 성향을 갖고 태어났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을 것이다. 회사 방침 때문에 친절하게 보인 것뿐인데 그것을 자신에 대한 애정으로 착각하는 것은 화재경보기의 거짓 양성 작동 원리와 동일하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 선조들은 여성의 수많은 신호를 무덤덤하게 받아들였던 남성들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여성의 작은 신호라도 과대평가하며 용감하게 데이트를 신청했던 것이다. 착각했던 남성이 더 성공적이었던 셈이다.

이렇게 우리 마음의 행동면역계, 특정 음식 혐오, 지각 편향 시스템, 정서 발현 시스템, 남성의 성적 과잉 지각 성향에는 화재경보기가 들어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 마음에는 생존과 번식을 위해 무언가를 과대평가하거나 과잉감지하는 편향 장치가 장착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일종의 ‘진화를 위한 여유분’ 생성 전략이라고도 할 수 있다. ‘틀려도 좋아.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여유롭게 판단하자고!’ 이런 맥락에서 거짓 양성은 쓸모 있는 편향이다.

만일 여러분이 조물주라고 한다면 인간의 의사결정 시스템을 어떻게 설계하겠는가? 모든 정보들을 정확히 파악해서 합리적 결정을 내리는 슈퍼컴퓨터를 떠올린다면, 그것은 자연이 해온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자연은 한 치의 오류도 없는 최적 장치를 진화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현실 세계에 상존하는 불확실성 속에서도 생존과 번식을 잘하도록 유연한 장치를 진화시켰다. 그것은 거짓 양성을 만드는 인지 편향 시스템이어서 진실 탐색기로서는 불량품이지만, 시스템의 붕괴를 막는 ‘여유분’을 만드는 적응 실행기로서는 합격품이다. 이렇게 자연은 여유분을 통해 위기를 관리해왔다.

이태원 참사가 벌어진 골목의 폭은 3.2m 정도였다. 이 좁은 공간에 수백 명이 운집할 수 있다는 신호를 받았다면, 우리는 모든 행정력을 동원하여 그곳에 ‘안전의 여유분’을 만들었어야 한다. 시스템의 붕괴를 막기 위해 마치 화재경보기처럼 거짓 경고음이라도 계속 울렸어야 한다. 불확실한 현실 세계에서 정확한 예측은 불가능하다. 집단의 역학이 생길 수 있는 공간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렇다. 무슨 뾰족한 예측 시스템이 있는 것처럼, 그런 것을 만들면 이런 참사를 막을 수 있는 것처럼 말하지 말자. 250만년의 인류 진화사가 말해주는 바, 안전에 관해 살아남은 성향은 가장 보수적 전략이다. 과잉 감지 편향! 이게 기본이다.

반복적 붕괴를 경험하는 사회에서 탈출하려면 안전의 여유분부터 만들어 놓아야 한다. 과잉이라고 비판받아도 좋다. 거짓 양성을 감수하고 화재경보기부터 제대로 달아야 한다. 안전의 여유분이 없는 사회에서 고통스럽게 희생된 청년들과 그 가족들에게 깊은 애도의 마음을 전한다.

■장대익

진화학자이며 과학철학자. 인간 본성과 기술의 진화를 연결시키는 연구와 개발을 병행하고 있다. 과학과 인문의 경계를 오가며 인간, 기술, 사회의 진화를 이야기해왔다.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를 거쳐 현재 가천대학교 창업대학 석좌교수(학장) 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다윈의 식탁> <다윈의 정원> <울트라 소셜>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종의 기원> <통섭>(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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