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를 계속 춤추게 하려면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장대익의 에볼루션] 고래를 계속 춤추게 하려면

인지적 공감은 개입, 교육, 체험, 훈련을 통해 배울 수 있으며 더 커질 수 있다
따라서 인류는 이제라도 전 생애에 걸쳐 공감을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을 개발하고 실행할 필요가 있다
동세대와의 공존과 다음 세대와의 지속을 위한 최대 변수가 공감 반경을 넓히는 일이라면, 공감을 가르칠 새로운 교육을 상상해야 한다

“모두 저랑 다르니까 적응하기 쉽지 않고, 저를 싫어하는 고래도 많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이게 제 삶이니까요. 제 삶은 이상하고 별나지만 가치 있고 아름답습니다.” 전 세계 시청자에게 큰 감동을 주고 막을 내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마지막 회의 명대사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없이 이것을 고르겠다. 우영우가 친엄마 태수미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외뿔고래(엄니가 길게 자라 유니콘처럼 긴 외뿔을 가진 고래)에 비유하며 던진 말이다. 문지원 작가는 어느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드라마의 메시지를 묻는 물음에 “이 드라마는 다양성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다. … 주제를 굳이 한 문장으로 말해본다면 ‘다양성을 존중하자’ 정도가 아닐까”라고 했다. <우영우>에서 고래는 개성을 가진 다양한 개인을, 바다는 그런 개인들이 장애물 없이 맘껏 활동하는 공간을 상징한다.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콜로라도 주립대학교의 동물행동학자 템플 그랜딘 교수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에게 영웅이다. 실제로 드라마 제작진이 우영우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모델로 삼은 대상이기도 하다. 그녀는 네 살 때까지 말을 못해 시설에 맡겨질 뻔한 아이였지만, 엄마의 헌신적 돌봄과 고등학교 과학 선생님의 특별한 격려에 힘입어 그토록 원했던 동물행동학자가 되었다.

그랜딘 박사는 2010년 테드(TED) 강연회에서 ‘세상은 모든 종류의 마음을 필요로 한다’라는 멋진 강연을 했다. 거기서 그녀는 자신이 어떻게 일반인들과 달리, 그림으로 생각을 하는 특별한 능력을 지녔는지, 그리고 그 능력을 발휘하여 어떻게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디테일을 잡아낼 수 있었는지를 이야기했다. 그녀는 자폐는 능력이 ‘다른’ 것이지 ‘모자란’ 것은 아니며, 자신처럼 남다른 사람들이 세상을 더 좋은 공간으로 만들 수 있다고 역설했다. 소위 정상적인 사람들로만 가득 찬 세상에서는 발현되기 어려운 새로운 시각과 해법을 그들이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녀가 집필한 책에는 이런 문구도 있다. “어떤 마술사가 지구에서 자폐증을 모두 없애버렸다고 한다면, 인간은 여전히 동굴에 지핀 모닥불 앞에서 노닥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모든 자폐인이 우영우 같지는 않다’라는 비판은 이 드라마가 우리 사회에 던진 화두와 관련이 없다. <우영우>가 던진 화두는, 사회를 병들게 하는 원인이 그런 다양성에 있는 게 아니라 그런 다름을 수용하지 못하는 옹졸한 마음과 경직된 제도에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와 다른 능력을 가진 존재들은 우리 사회에 새로운 시각과 창의성, 그리고 따뜻함을 던져주는 고마운 존재들이다. <우영우>의 연출을 맡은 유인식 감독은 다음과 같은 시청자의 소감에 여러 번 울었다고 한다. “자폐 스펙트럼을 자세히 그려도 속상하고 아니어도 속상할 것 같아서 안 보려고 했다가 박은빈 배우가 연기하는 우영우를 귀엽고 매력있게 봐줘서 내가 내 아이에게서 나만 느끼고 있다 생각한 귀여움, 빛나는 부분들이 사회적으로도 사랑받을 수 있다는 느낌 때문에 좋았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라는 시가 생각나지 않는가?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인간은 교육 통해서 공감력 향상

하지만 이런 드라마의 엄청난 흥행에도 불구하고 ‘다름을 못함(모자람)으로 인식’하는 인간의 고질적 편견은 자동적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그저 정서적 교감이 강렬하게 폭발하다가도 이내 사라질 개연성이 높다. 다양성이 풍부한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서적 교감뿐만 아니라 교육, 훈련, 체험을 통해 인지적 측면에서까지 다양함을 수용하게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다. 인지적 공감(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힘), 즉 역지사지 능력이야말로 다양성을 만들고 지속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어떻게 하면 다름이 인정받는 성숙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사회심리학자 갈린스키와 모스코위츠는 미국 대학생들에게 젊은 흑인 남성의 사진을 보여준 다음에 이 남성의 하루가 전형적으로 어떤 식일 것인지 간략하게 서술해보라고 했다. 거기서 그들을 세 집단으로 나눠 실험을 해보았는데, 첫 번째 집단(대조군)에는 위 지시 외에 다른 지시는 주지 않았다. 두 번째 집단에는 그 흑인 남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적극적으로 억제하라는 지시를 주었고, 마지막 세 번째 집단에는 다음과 같이 역지사지를 해보라고 주문했다. “당신이 그 남성이라 가정해보고 그의 하루를 상상해보라. 그의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그의 관점에서 세상을 걸어 다녀보라.” 실험 결과, 그 흑인 남성에 대해 가장 긍정적인 태도를 보인 집단은 역지사지를 주문받은 집단이었고, 그다음으로는 고정관념 억제를 지시받은 집단이었으며, 최하위는 대조군이었다. 백인 노인 사진을 가지고 한 실험에서도 동일한 결과가 나왔다.

일평생을 인간의 친사회적 행동에 대해 연구한 대니얼 뱃슨도 역지사지 능력이 교육이나 개입을 통해 향상될 수 있음을 입증했다. 한 실험에서 그는 최근 비극적 교통사고를 당해 고아가 된 젊은 여성의 사연을 녹음하여 두 집단에 들려주었다. 첫 번째 집단에는 이 사연을 객관적으로 들어보라고 주문한 반면, 두 번째 집단에는 그 여성의 가족과 그녀가 당한 경험을 상상해보라(역지사지)는 주문을 했다. 그런 후에 두 집단이 그 여성에 대해 얼마나 더 공감하는지를 측정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그냥 들어보라고 한 집단보다 역지사지를 해보라고 한 집단이 그 여성에 대한 공감력을 더 크게 발휘했다. 이것은 단지 설문을 통해 얻은 결과만이 아니다. 설문이 다 끝난 후, 어린 동생들을 돌봐야 할 그 여성을 위해 모금을 하자고 했을 때 가장 크게 호응한 집단은 역지사지 집단이었다.

이런 결과들은 인지적 공감이 교육과 훈련을 통해 커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이런 반론도 가능하다. ‘정상적인 성인의 경우라야 역지사지 같은 인지적 능력을 더 키울 수 있지, 아이들에게는 공감 교육이나 훈련이 적용될 수 없는 것 아닌가?’ 아니다. 아이들도 공감을 배울 수 있고 타고난 공감력을 더 크게 키울 수 있다. 캐나다의 교육혁신가 매리 고든이 창안한 <공감의 뿌리>는 경험과 교육을 통해 어린이의 공감력을 향상시킬 수 있음을 증명한 교육 프로그램이다.

수학·과학은 물론 공감도 가르쳐야

가령 공감의 뿌리 수업이 진행되는 어떤 교실에서는 생후 5개월 된 아기와 엄마가 교실 한복판 매트 위에 앉아 있고 일곱 살짜리 학생들이 바닥에 앉아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 학생들은 아기가 현재 어떤 감정 상태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엄마에게 왜 칭얼대는지 등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런 관찰의 시간이 끝나면 학생들은 집단 따돌림에 대한 역할극을 하거나 아기의 감정 상태를 표현하는 그림 그리기 등을 한다. 그리고 이런 수업은 한 학년 동안 정기적으로 반복된다. 학생들은 아기가 교실에 올 때마다 아기의 정서적·인지적 발달, 엄마(아빠)와의 애착 관계 변화, 호기심과 소통 능력에 대해 관찰하게 되고, 엄마가 아기의 행동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고 그런 반응에 아기는 또 어떤 행동을 하는지를 경험하게 된다. 즉, 공감의 뿌리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엄마와 아기의 상호작용을 꾸준히 관찰하고 경험함으로써 상대방의 입장에서 느끼고 생각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훈련하는 것이다.

결과는 매우 극적이었다. 2010년 스코틀랜드에서 진행된 한 실험에서는 공감의 뿌리 프로그램으로 인해 아이들의 도움과 나눔 행동이 55%나 증가했다. 그리고 이런 프로그램을 진행한 결과, 학교 폭력이 상당 수준으로 감소되었다는 보고들이 많았다. 이 프로그램은 5세에서 13세 아이들을 대상으로 개발되었으며 현재 캐나다는 물론 뉴질랜드, 미국, 아일랜드, 영국, 웨일스, 북아일랜드, 스코틀랜드, 노르웨이, 독일, 스위스, 네덜란드, 코스타리카,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2005년에는 유치원 아동을 위한 공감의 씨앗 프로그램으로도 확장되었다.

사실, 아이들은 교실에서의 이런 체험 프로그램이 아니더라도 놀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역지사지 능력을 발전시킬 수 있다. 모든 포유류는 기본적인 공감 능력을 갖고 태어난다. 왜냐하면 집단생활을 하는 포유류에게는 자식과 동료의 느낌과 의도를 잘 읽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때 놀이는 애착, 신뢰, 배려, 유대를 촉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가령, 어렸을 때 동료들과 놀이를 하지 못했던 말들은 나중에 무리에 잘 끼지 못한다. 인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병원 놀이를 하는 아이들은 자신이 마치 간호사나 의사인 양 환자인 척하는 또 다른 아이에게 장난감 청진기와 주사기를 들이댄다. 이때 놀이를 재미있게 하려면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핵심이 바로 역지사지 능력이다. 따라서 잘 놀아본 친구일수록 높은 수준의 인지 공감력을 발휘할 확률이 높다. 만일 우리 사회의 과도한 입시경쟁이 평범한 학생들의 노는 시간을 빼앗는다면, 우리 사회는 공감력이 부족한 아이들로 채워질 것이다.

이렇게 인지적 공감은 개입, 교육, 체험, 훈련을 통해 배울 수 있으며 더 커질 수 있다. 인지적 공감은 사회를 다양하고 건강하게 만드는 핵심 역량이다. 따라서 인류는 이제라도 전 생애에 걸쳐 공감을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을 개발하고 실행할 필요가 있다. 수학과 과학만이 아닌 공감도 가르쳐야 한다. 동세대와의 공존, 그리고 다음 세대와의 지속을 위한 최대 변수가 공감의 반경을 넓히는 일이라면, 우리는 이런 공감을 가르칠 새로운 교육을 상상해야 한다. “이상하고 별나지만 가치 있고 아름다운 인생들”을 위하여!

■장대익

진화학자이며 과학철학자. 인간 본성과 기술의 진화를 연결시키는 연구와 개발을 병행하고 있다. 과학과 인문의 경계를 오가며 인간, 기술, 사회의 진화를 이야기해왔다. 현재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인지과학회 회장을 지냈다. 작년부터 서울대학교 초학제 교육AI연구센터 소장으로 있으며 에듀테크 벤처기업 트랜스버스의 대표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다윈의 식탁> <다윈의 정원> <울트라 소셜>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종의 기원> <통섭>(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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