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민주노총 공공운수 노조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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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섬마을 전기는 불법으로 흘렀다 지난 8월21일 충남 태안군 가의도에 번개가 쳤다. 하필 발전소 근처 전봇대 통신 계량기가 번개에 맞아 가의도 일대 전기가 끊겼다. 폭우가 쏟아진 밤이었다. 섬마을 주민 75명은 높은 습도와 더위로 고통받았다. 게다가 주민 대부분은 고령으로 의료기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정전은 주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했다. 전기는 10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복구됐다. 가의도의 한 주민은 8월27일 서울의 섬 여의도 국회 앞으로 와 이날의 참상을 알리고, 한국전력(이하 한전)에 책임을 물었다. “한전은 숙련된 노동자들을 해고함으로써, 우리 전력시스템의 안정성을 스스로 무너뜨렸습니다.” 바다를 건너온 전국의 섬마을 주민 150여명도 그의 옆에 있었다. 한전 위탁업체 JBC에서 일하다 집단해고된 노동자들이다. 한전은 지난 30여년간 전국 66개 섬마을 전기 공급과 관리를 JBC라는 기업에 임의로 맡겼다. 한전 퇴직자들이 ‘OB들의 친목과 소통의 커뮤니티’라는 구호를 내걸고 만든 조직 한국전력전우회가 100% 출자한 회사다. JBC 직원에 대한 실질적인 업무지시는 한전이 했고 JBC는 사실상 인력 공급 관리 역할만 했다. 그러나 전력업무는 파견허용 업종이 아니다. JBC가 파견업체인 것도 아니다. 불법파견이었다. 이에 법원은 JBC에 소속된 노동자가 한전 소속 근로자라는 판결을 내렸다. 섬마을 전기가 불법으로 흘렀다는 것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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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택시손님을 ‘사람’으로 보려면 대법원이 타다 드라이버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클래식을 틀고, 불평 없이 골목길까지 안전하고 친절하게 운행해주는 택시는 앱이 아니라 노동자가 만들었다. 타다의 모회사인 쏘카는 자신의 말을 잘 듣는 충직한 택시기사를 원하면서도 노동법상 책임과 비용은 회피하기 위해 세 가지 꼼수를 썼다. 타다를 관리 운영할 자회사 VCNC를 만들어 노동법에서 한 걸음 도망쳤다. 타다를 운전할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지 않고 중간 협력업체를 끼워 두 걸음, 협력업체에 타다 노동자와 근로계약서가 아니라 위탁계약서를 쓰게 해 세 걸음 달아났다. 그러나 타다는 근태관리를 하고 교육 면담을 진행하는 등 타다 드라이버를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처럼 통제했다. 지휘감독의 대가는 월급제였다. 타다 월급제가 타다를 시민들의 지지를 받는 택시로 만든 비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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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누굴 위한 ‘지하철 해고 질주?’ 여름철 락스로 화장실 청소를 하다 보면 머리가 어지럽다. 몸에 안 좋을 걸 알지만 편리함과 강력한 세척력 때문에 화학용품을 포기할 수 없다. 요즘 지하철을 타면 머리 위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데 지하철 에어컨은 어떻게 청소할지 궁금하다.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지하철 노동자들은 3년에 한 번씩 200m 길이의 지하철을 통째로 목욕시킨다. 거대한 차량기지에서 지하철 10칸을 하나하나 분리해 크레인으로 들어 옮기고 바퀴, 모터, 에어컨 등 부품을 떼어내 세척하고 정비한다. 부식을 막고 모양을 내기 위해 페인트칠을 하는 도장작업도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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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안전운임제 살려 노동자 살려야 대통령이 포항 영일만에 대량의 석유·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며 석유 탐사 시추를 승인했다. 탐사 시추에는 5번 뚫는 데 약 5000억원이 들어갈 것으로 관측됐다. 포항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2021년 9월3일 화물연대 포항지역본부 소속 화물노동자 권씨는 아내와 통화하면서 주말에 등산을 가자고 약속했다. 아내는 등산복 대신 수의를 입은 남편을 만나야 했다. 지게차가 하역작업을 하면서 권씨의 화물차에 쌓여 있던 목재 더미를 들어 올리는 순간 옆에 있던 다른 목재 더미가 쏟아져 권씨를 덮쳤기 때문이다. 지게차는 목재만을 바라볼 뿐 사람을 보지 못했다. 그해 7월 인천의 목재공장, 8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똑같은 사고로 화물노동자가 숨졌다. 그럼에도 작업은 중단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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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최저임금회의 TV 생중계하라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베트남 전쟁에 파병 갔다 온 얘기를 하며 자신의 인생사를 늘어놓는 위원이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2023년 최저임금위에서 실제 있었던 일이다. 가족 같은 직원들에게 30분 더 일 시킨 게 무슨 큰 죄냐며 하소연한 위원도 있다. TV로 생중계했다면 국민들은 최저임금위를 ‘봉숭아학당’으로 볼 것이다. 이를 보도해야 할 기자들은 회의장에서 쫓겨난다. 국회도 국회의원이 무슨 말을 했는지 회의록을 남기는데 최저임금위는 회의록도 없다.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노동계가 회의 정보를 공개하자 최저임금위는 휴대폰을 압수하겠다고 했다. 진솔한 이야기를 해야 긴밀한 협상이 가능하다는 명분인데, 최저임금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황당한 말들이 난무하는 게 더 큰 문제다. 최저임금 회의가 비밀에 싸여 있는 동안 회의장 밖에서는 검증되지 않은 말들이 쏟아진다. 다행히 공개 발언은 검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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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최저임금은 억울하다 장모님은 학교급식조리노동자였다. 20년 동안 새벽 5시에 일어나 학생들의 밥을 지었다. 자주 편도가 붓고 팔다리가 아팠는데, 신비하게도 일을 쉬니까 고통이 사라졌다. 노동의 고통과 일을 그만뒀을 때의 소득감소를 저울질해야 했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한계’와 ‘효용’이라 부르고, 노동자들은 ‘골병’과 ‘풀칠’이라 부른다. 한약으로 기운을 채우고, 침으로 아픈 몸을 깨우며 일을 하던 장모님은 딸이 결혼을 하자 사표를 냈다. 학교는 뒤늦게 장모님을 붙잡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이 경제학교과서에 그려진 수요와 공급 곡선에 따라 임금과 고용이 결정된다고 믿는다. 현실은 실험실이 아니다. 임금이 삭감돼도 노동공급을 거부할 수 있는 노동자는 많지 않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란 속담은 노동시장이 완전경쟁시장이 아님을 웅변한다. 최저임금이 노동시장의 수요-공급보다 낮게 설정되어 임금이 시장가격까지 오를 때까지 고용감소가 일어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급식실, 우체국집배원, 돌봄노동자가 대표적이다. 노동시장은 노동수요자가 노동공급자보다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어, 임금을 낮게 유지할 수 있는 수요독점시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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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전태일의 ‘얼굴’ “사장들한테 얻어먹지 말라 하셔서 제가 샀습니다.” 하헌수 라이더유니온 조합원이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옆에 있던 동료가 거들며, 하 조합원이 사장들을 만나러 다니며 쓴 밥값이 20만원이 넘는다고 했다. 1년 전 지역 배달대행사 사장들이 건당 임금을 1300원 삭감하자 하헌수 라이더는 동료들을 모아 노조를 만들고 지역의 모든 배달대행사에 단체교섭을 요청했다. 단체교섭이라는 말을 생전 처음 들어본 사장들은 하헌수를 무시했다. 설득이 안 되니 집회와 투쟁을 시작했고, 노동위원회에서 부당노동행위 판정까지 받고 나서야 교섭테이블이 열렸다. 꼬박 1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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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벤츠녀’가 말하지 않는 것 2월3일 새벽, 50대 배달노동자가 강남의 논현고개를 넘어가고 있었다. 뒤따르던 차량이 굉음을 내더니 배달노동자를 덮쳤다. 음주운전 사망사고였다. 다음날 현장을 찾았다. 노동자가 죽은 중대재해 현장이었지만 어떠한 표지도 없었다. 오늘도 생계를 위해 고개를 오르는 오토바이 바퀴들이 무심히 사고현장을 지나가고 있었다. 배달노동자의 선명한 핏자국만이 그날의 참변을 증언하고 있었다. 일부 언론이 가해자 신상을 공개하고 벤츠녀, 비숑녀 사건으로 명명했다. 음주운전은 시민뿐 아니라 배달/대리/택시 등 운수노동자와 도로 위를 정비하고 청소하는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산업안전 문제다. 가해자 차량과 성별은 이목을 끌고 조회수 올리는 데 도움이 될지언정 우리의 생명안전을 지키고 사고를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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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우리, 고용보험료 내잖아요 “우리 고용보험료 꼬박꼬박 내잖아요. 그러면 육아휴직도 되지 않나요?” 광주에서 일하는 배달노동자의 상담전화에 식은땀이 났다. 부끄럽게도 배달하는 아빠가 육아휴직을 할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배달, 화물, 학습지 교사 등 노무제공자를 위한 고용보험은 출산전후휴가만 보장한다. 혹시 제도가 개선됐을지 몰라 법률을 뒤지고 전문가 자문을 구했지만 육아휴직뿐만 아니라 배우자 출산휴가도 보장하지 않는다는 황당한 사실만 확인했다. 2020년 5월10일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3주년 연설에서 “전 국민 고용보험 시대의 기초를 놓겠다”고 했다. 같은 해 12월23일 고용노동부는 ‘전 국민 고용보험’ 로드맵을 발표했다. 윤석열 정부의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2023년 7월21일 인도에서 열린 G20 고용노동부 장관회의에서 대한민국이 플랫폼 종사자들을 위해 산재 고용보험 제도를 개선했다고 자랑했다. 정부와 정치인들은 ‘전 국민’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이고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현장 노동자들은 구멍이 뻥뻥 뚫린 사회안전망의 그물 사이로 추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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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라이더 함부로 차지 마라 라이더는 음식과 소주를 건네기 전, 본인확인을 위한 전자서명 화면을 손님에게 보여줬다. 손님은 라이더의 휴대폰 위로 손가락을 갖다 대더니 가로로 찌익 그었다. 신분증은 보여주지 않았다. 배민 약관에는 주류배달 시 손님이 신분증과 본인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업주에게 반환하라고 되어 있고, 이를 위반해 발생한 책임은 라이더에게 있다고 적혀 있다. 약관이 없더라도 대부분의 라이더들은 자영업자에게 손님 신분증이 없어 주문을 취소하고 돌아가겠다고 말하지 못한다, 다음 배달 때문에 최대한 신속하게 분쟁을 해결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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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여전히 택시엔 ‘방영환들’이 있다 택시 미터기에서 힘차게 달리는 말과 치솟는 숫자를 보면 가슴이 쫄깃해진다. 혹시나 기사님이 길을 돌아가실까 내비게이션 앱을 켜고 예상택시요금과 최적경로도 확인한다. 그러나 택시 미터기에는 손님이 앱으로도 확인할 수 없는 마이너스 금액이 있다. 하루 19만3000원, 택시회사 해성운수가 노동자에게 ‘기준운송수입금’이라는 이름으로 걷는 돈이다. 택시노동자가 총알처럼 달리는 이유, 좁은 골목길 안까지 태워달라는 손님을 싫어하는 이유다. 정부와 국회도 사납금제의 문제에 공감해 2021년 서울에서부터 사납금제를 폐지하고 택시노동자에게 주 40시간 기준으로 월급을 지급하는 법을 만들었다. 그러나 택시회사들은 사납금제를 계속 유지했고, 노동자에게 하루 3시간30분 주 20시간 일한 것으로 근로계약서를 쓰게 했다. 불법이었지만 노동자가 정부에 회사를 신고하면, 노동자도 사납금을 회사에 지급한 잘못이 있다며 합의를 종용했다. 참다못한 일부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자, 회사는 손님이 구토한 차나, 에어컨이 고장난 차를 노동자에게 배정했다. 회사는 노조를 결성한 노동자를 해고하기까지 했는데 대법원 판결로 재고용했지만, 반성은커녕 불법적인 관행을 계속 강요했다. 복직한 노동자는 200일이 넘게 회사 앞에서 법을 준수하라며 1인 시위를 벌였는데, 해성운수 대표는 쇠꼬챙이를 휘두르며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협박은 필요 없었다. 9월26일 친절한 택시노동자가 되고 싶었던 방영환은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고, 10월6일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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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이제 절실한 건 ‘동료 시민’ “장애인 교육차별 철폐, 장애인 교육예산 증액’이 새겨진 조끼를 입은 발달장애 청소년과 대학생 자원활동가들이 부산~경주 간 국토대장정을 떠났다. 발달장애인 청소년들은 길을 걷다 지쳐 주저앉았고, 대학생 활동가들의 발가락에는 커다란 물집이 잡혔지만 포기하지 않고 3박4일간 90㎞의 거리를 걷고 또 걸었다. 청소년과의 대화를 어려워하던 활동가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언어적·비언어적 소통을 익히며 함께 걷는 법을 배웠다. 마지막 날 종착지인 해운대역에서 장애 청소년-대학생-학부모들은 한자리에 모였고,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장애인을 집에 격리시킬 게 아니라 동네와 거리에서 자연스럽게 만나고 부딪칠 수 있게 한다면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확신을 얻는 순간이었다. 지난 여름방학에 떠났다고 해도 이상할 것 없는 이 국토대장정은 2007년 겨울방학에 진행된 행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