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은 억울하다

박정훈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

장모님은 학교급식조리노동자였다. 20년 동안 새벽 5시에 일어나 학생들의 밥을 지었다. 자주 편도가 붓고 팔다리가 아팠는데, 신비하게도 일을 쉬니까 고통이 사라졌다. 노동의 고통과 일을 그만뒀을 때의 소득감소를 저울질해야 했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한계’와 ‘효용’이라 부르고, 노동자들은 ‘골병’과 ‘풀칠’이라 부른다. 한약으로 기운을 채우고, 침으로 아픈 몸을 깨우며 일을 하던 장모님은 딸이 결혼을 하자 사표를 냈다. 학교는 뒤늦게 장모님을 붙잡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이 경제학교과서에 그려진 수요와 공급 곡선에 따라 임금과 고용이 결정된다고 믿는다. 현실은 실험실이 아니다. 임금이 삭감돼도 노동공급을 거부할 수 있는 노동자는 많지 않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란 속담은 노동시장이 완전경쟁시장이 아님을 웅변한다. 최저임금이 노동시장의 수요-공급보다 낮게 설정되어 임금이 시장가격까지 오를 때까지 고용감소가 일어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급식실, 우체국집배원, 돌봄노동자가 대표적이다. 노동시장은 노동수요자가 노동공급자보다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어, 임금을 낮게 유지할 수 있는 수요독점시장이기 때문이다.

물가도 마찬가지다. 최저임금은 물가인상의 주범이라는 수배전단이 매년 봄에 뿌려진다. 그러나 소비자물가 그래프와 최저임금 인상률 그래프는 상관관계가 없다. 최저임금이 가장 많이 올랐던 2018~2019년은 물가 상승률이 안정적이었고 최저임금을 사실상 동결, 삭감한 2023~2024년은 물가가 급등했다. 기후위기로 인한 농산물가격 상승과 전쟁으로 인한 원자재가격 상승이 물가를 견인했다. 정책실패다. 최저임금위원회가 2월 작성한 프랑스-벨기에 출장보고서를 보면 OECD는 최저임금이 물가인상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최저임금 근로자는 물가상승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그들의 구매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최저임금을 정기적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했다. 최저임금이 자영업자를 망하게 한다는 주장도 거짓이다. 2021년 통계청의 소상공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경영상 애로사항으로 경쟁심화, 원재료비 인상, 상권쇠퇴, 임차료가 꼽혔다.

최저임금을 경제파탄의 주범으로 몰아 취조하던 이들은 진실이 밝혀졌음에도 최저임금을 풀어주지 않고 있다. 혹시 모를 경제위기와 물가상승을 대비해 계속 갇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통령은 한술 더 떠 이주민에게 최저임금을 삭감할 방법을 찾아내라 닦달하고, 국민의힘 서울시의원들은 노인들에겐 최저임금을 삭감하자는 건의안을 냈다. 헌법과 법률을 우회하는 방안을 기업컨설팅업체가 아니라 국가가 제시한다. 기업은 이미 최저임금을 회피하고 있다. 서울대는 자살방지 상담원과 프리랜서 계약을 맺어 시급 8333원을 주겠다고 해 논란이 됐고, 최저임금을 보장받지 못하는 특고 플랫폼노동자들은 급격히 늘고 있다. 최저임금 영향을 받는 노동자는 지난해 109만명에서 올해 65만명으로 줄었다.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논할 때가 아니다. 올해 최저임금위원회에서는 헌법 밖으로 추방당한 노동자 보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틀어 막혔던 입을 열고 진실을 말할 때다. ‘최저임금에 자유를. 모든 노동자에게 존엄을. 최저임금을 석방하라!’

박정훈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

박정훈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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