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절실한 건 ‘동료 시민’

박정훈 배달노동자

“장애인 교육차별 철폐, 장애인 교육예산 증액’이 새겨진 조끼를 입은 발달장애 청소년과 대학생 자원활동가들이 부산~경주 간 국토대장정을 떠났다. 발달장애인 청소년들은 길을 걷다 지쳐 주저앉았고, 대학생 활동가들의 발가락에는 커다란 물집이 잡혔지만 포기하지 않고 3박4일간 90㎞의 거리를 걷고 또 걸었다. 청소년과의 대화를 어려워하던 활동가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언어적·비언어적 소통을 익히며 함께 걷는 법을 배웠다. 마지막 날 종착지인 해운대역에서 장애 청소년-대학생-학부모들은 한자리에 모였고,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장애인을 집에 격리시킬 게 아니라 동네와 거리에서 자연스럽게 만나고 부딪칠 수 있게 한다면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확신을 얻는 순간이었다. 지난 여름방학에 떠났다고 해도 이상할 것 없는 이 국토대장정은 2007년 겨울방학에 진행된 행사다.

16년이 지난 2023년 9월18일, 발달장애인 9명과 조력자 16명이 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사를 점거했다가 경찰에 연행됐다. 장애인이 다른 장애인에게 취업상담을 해주는 ‘동료지원가’ 사업 예산을 정부가 전액 삭감해 187명의 장애인 일자리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장애인들은 동료지원가가 되어 출근을 하고 다른 장애인의 일자리를 찾아주면서 삶에 활력을 얻고 자립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예산이 0원이 되면서 평범한 일상도 사라졌다. 국토대장정을 함께했던 장애 청소년들과 부모님이 떠올랐다. 당시 부모님들과 10년 뒤에는 장애 아동이 비장애인들과 통합 교육도 받고, 취직해서 일도 하고, 가족들도 마음 편히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거라고 희망찬 이야기를 나누었다.

불행하게도 통합교육은커녕 장애인을 격리시켜야 한다는 여론과 장애 학부모에 대한 비난이 늘고 있다. 몇몇 자극적이고 단편적인 사건만을 보고 장애인에 대한 가시 돋친 말들이 난무한다. 정작 수십년 동안 교사들의 근무환경 개선과 교육예산 증액을 요구하며 삭발과 단식, 집회를 개최하며 투쟁했던 수많은 장애 아동 부모들과 장애인의 목소리는 삭제됐다. 국토대장정을 진행할 당시 장애 아동 1명당 1명의 대학생 짝꿍 교사를 배정했다. 의사소통이 어려운 청소년에게는 두 명의 짝꿍 선생님을 배정했다. 국토대장정 전에는 1주일에 한 번씩 주말학교를 열어 참여 학생의 특성을 파악하고 문제가 있을 때는 짝꿍 선생님, 학부모와 해결책을 고민했다. 한 명의 교사가 발달장애 아동 다수를 돌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람과 예산의 문제, 우리 사회가 공적 자원과 시간을 투여해 함께 문제를 해결할지 아니면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길지의 문제다. 불행하게도 공적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장애의 문제는 영화 <말아톤>을 보고 눈물 흘리거나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장애인의 문제 행동을 보고 부모를 비난하는 차원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평소엔 보지 못했던 장애인이 뉴스와 시위할 때만 나타난다면, 사회로부터 장애인을 격리시킨 투명한 차별의 벽을 찾아내는 게 시민의 역할일 것이다. 어렵고 귀찮은 일이지만, 평생을 차별받고 고립된 삶을 견디는 것보다는 쉬운 일이다. 16년 전 청소년이었던 발달장애인들은 30대가 되었을 거다. 이제 함께 걸을 짝꿍 선생님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동료 시민이 필요하다.

박정훈 배달노동자

박정훈 배달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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