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 공공후견은 아동 관점에서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동화 <소공녀>의 세라는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내다 아버지를 갑자기 여의고 큰 고난을 겪지만, 우여곡절 끝에 아버지의 동업자를 만나 행복한 삶을 되찾는다. 동업자는 어린 세라의 후견인이 되어 함께 새 삶을 위해 떠나는데,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보호가 필요한 아동과 함께 살며 직접 돌보는 사람을 ‘후견인’이라 생각하는 듯하다. 실상 후견인 제도는 그 기대와는 다소 다르다.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민법상 후견 제도는 미성년자, 정신적 장애인, 치매 노인과 같이 판단·결정 능력이 없거나 제한되어 스스로 자기의 이익을 보호하기 어려운 사람(피후견인)을 보호·감독하고 그 재산을 관리하며 대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즉 후견인은 피후견인을 돌보는 사람이라기보다는 피후견인에 대한 각종 ‘결정’을 하는 사람에 가깝다. 이에 후견인이 피후견인의 이익에 반하여 재산을 매각하거나, 후견 상황과 무관한 권한까지 대리해 정작 당사자의 법적 권리가 배제되는 등의 문제가 적잖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후견 제도의 허점을 보완하고자 보건복지부는 ‘공공후견인’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먼저 시작된 발달장애인 공공후견사업은 발달장애인지원센터에서, 최근 시작된 치매 노인 공공후견사업은 치매(안심)센터에서 수행하고 있다. 후견이 필요한 발달장애인이나 치매 노인을 위한 공공후견인 신청을 해주고 비용을 지원해준다. 이 신청을 받은 가정법원이 심판을 통해 공공후견인을 지정해주고, 그 후견인은 재산 관리와 법정대리, 신상보호 등의 지원을 하며 국가로부터 건당 월 몇 십만원의 활동비를 받는다.

제도의 틀만 보면 나쁘지 않지만 이 공공후견 제도 역시 피후견인의 의사결정과 행위의 범위를 제한하는 ‘대체 의사결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14년에 이어 올해에도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는 이러한 우리나라 후견 제도의 한계를 지적했다. 피후견인의 의사를 후견인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의 의사결정 과정을 돕고 지원하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제 도입을 준비하고 있는 미성년 공공후견인 제도는 앞선 지적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피후견인인 아동의 특성을 잘 반영하여 설계되어야 한다. 단순한 사업 정도로 보아 성과 중심의 서비스 전달체계 마련에만 치중하거나, 현재 절차만 간이화하는 방식으로 생색낼 일이 아니다. 아동은 자기 인생을 결정할 권리가 있고, 후견인은 이를 돕는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후견인 개인에게 일을 떠넘기는 방식은 곤란하다. 아동에게 친권자가 있을 경우 후견인이 활동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고, 미성년 후견인은 피후견인이 가한 손해에 대하여 민법상 배상 책임이 있기도 하다. 봉사 차원으로 활동하는 개인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며 의사결정을 대리하도록 하는 제도는 발전할 수 없다.

혹여 부득이하게 개인을 후견인으로 지정할 수밖에 없더라도, 후견인이 아동과 함께 살며 삶의 영역 전반에서 아동의 의사를 그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 상황인지 고려해야 한다. 아동을 실제 돌보지 않은 채 가끔 안부나 확인하는 관계에서 아동에게 최상의 이익을 결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후견인이 아동을 대신하여 의사결정을 해도 이를 제지할 방안이 없으면, 극단적으로는 아동이 시설을 벗어나 자립하고 싶다 해도 후견인이 아동 대신 시설 계속 거주 결정을 하는 상황도 생길 수 있다.

그래서 단기적으로 보호 대상 아동을 위한 공공후견인 제도에 지역 시·군·구 단위의 아동보호체계를 적극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보호 대상 아동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간섭하고 잔소리하면서 대신 결정하는 낯선 성인이 아니다. 궁극적으로는 아동이 안정적으로 뿌리내리고 살 수 있는 가정과 비슷한 환경을 국가가 어떻게 제공할지가 장기적 정책 결정의 핵심적 의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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