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발인의 이의신청권 되살려야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몇 년 전, 60대 지적장애인 동생을 한 쓰레기장에 살게 하며 10여년간 급여와 장애수당 등 8000만원 상당 금액을 가로챈 친형이 세상에 드러난 사건이 있었다. 피해자는 쓰레기가 가득 찬 컨테이너 박스에서 한겨울에도 전기장판 하나로 추위를 견뎌야 했다. 피해자는 분명히 가해자 처벌의사를 밝혔고 별도로 고소장까지 제출했지만, 수사기관은 피해자가 지적장애인이라서 ‘고소 의사표시가 진정한 의사표시로 보기 어렵다’ 판단했다.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검경 수사권 조정이 있었고, 2021년부터 경찰이 수사종결권을 가지면서 검찰의 수사지휘권은 사라졌다. 경찰이 무혐의라고 본 사건은 검찰에 송치되지 않고 경찰의 ‘불송치결정’만으로 종결된다. 이로 인한 부작용을 줄이기 위하여 경찰이 고소·고발 사건을 무혐의 종결할 경우 처리 결과와 이유를 당사자와 피해자 등에게 통지하도록 했고, 통지를 받은 사람은 경찰에 이의를 신청할 수 있게 했다. 이의신청이 들어오면, 경찰은 지체 없이 검찰에 그 사건을 송치해야 하므로, 경찰의 무혐의 사건 종결을 다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 바로 이의신청인 것이다.

그런데 지난 5월3일, 국회는 형사소송법을 개정하여 경찰이 불송치결정에 대한 고발인의 이의신청권을 없앴다. 법안 초안에 있던 내용도 아니었다. 본회의 수정안에서 갑자기 추가된 조항이었다. 이 졸속 개정으로 ‘고발’제도가 사문화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스스로 고소장을 제출하기 어려운 장애인이 학대나 착취를 당하면, 장애인복지법에 따라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이 사건을 조사한 뒤, 범죄 피해가 확인되는 경우 가해자를 고발하고 있다. 고발은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 옹호 수단으로 자주 활용된다. 국가기관이나 사회적 강자들을 감시하는 시민단체도 고발을 통하여 비리와 범죄를 알린다. 그중에는 공익제보자, 조직적 범죄의 피해자 등 신원 노출이 어려운 당사자를 대리해 고발하는 사건도 적지 않다. 노동사건이나 선거사건, 인권 관련 사건은 공정위, 권익위, 선관위, 인권위가 고발하고 있다. 환경범죄나 마약범죄와 같이 피해자를 특정하기 어려운 사건에서 고발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것은 두말할 필요 없다.

그러나 9월부터 고발인만 있는 사건은 경찰이 종결하면 ‘그걸로 끝’이다. 당론으로 이 입법을 강행한 더불어민주당은 ‘고발 남용을 막기 위하여’ 개정했다 하나, 타당한 이유가 아니다. 고발에 대한 이의신청이 남용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올해 1분기 동안 이의신청으로 검찰에 송치된 고발사건은 900건 정도에 불과했다. 고발인이 이의신청을 할 수 있어야 경찰의 불송치결정을 재검토할 수 있고 제대로 된 수사도 촉구할 수 있는 것이다. 고발제도 자체의 남용을 해결하려면 고발의 유형과 원인을 분석하여 남용 방지책을 신중히 고민해야 마땅하다. 갑자기 입법으로 고발인의 이의신청권을 원천봉쇄하는 것은 지나친 행정편의주의일 뿐이다.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같은 대형 공익사건이나 장애인 노인과 같은 사회적 소수자 관련 공익사건 고발인의 이의신청권이 없어지면, 사회적 관심조차 허물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쓰레기장 지적장애인 착취 사건은 진퇴양난이다. 본인이 고소의사를 표시해도 장애인이라며 묵살당하고, 주변에서 피해자 대신 고발을 해도 경찰의 사건 종결을 불복할 방법조차 없어지기 때문이다. 국회도 법을 만들고 난 이후에서야 문제가 있다며 하반기 사법개혁특별위원회를 통해 이 문제를 재논의 하겠다고 하였지만, 현재 국회 상황을 보면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법 시행으로 더 큰 혼란이 초래되기 전에 이 개악을 추스를 수 있는 원포인트 개정을 위하여 여야가 힘을 합쳐야 한다. 스스로 눈물도 닦기 어려운 범죄 피해자의 고통을 짓밟고 모른 척하는 국가는 존재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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