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영우라는 사람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며칠 전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어느 신문사의 기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며 대뜸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시청하는지 물어왔다. 드라마에 대한 의견을 말해달라는 요청이었으나, 스스로 드라마를 평론할 깜냥이 못 되는 것을 잘 알기에 왜 그런 요청을 하는 건지 되물었다. “아무래도 장애인이시니까 좀 다르게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요.” 안타깝게도 질문자는 그 드라마를 잘못 보고 있었다.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사람은 그 존재 안에 수많은 다양성을 안고 살아간다. 드라마 속의 우영우도 나도 그러하다. 그런데 장애인은 종종 그 사람 안의 다양한 특성이 ‘장애’라는 한 단어로 납작해지는 경험을 한다. 장애는 질병과 다르기에 앓는 것도 아니며 단지 한 사람을 구성하는 여러 정체성 중 하나일 뿐이지만, 이렇게 장애라는 개념만으로 존재가 납작해지면 세상은 그 사람의 노력이나 성취 역시 장애라는 관점을 통해서만 이해하기 일쑤이다. 그러다 보니 거의 필연적으로 지겨운 장애 ‘극복’ 서사가 뒤따라오게 된다.

드라마 속의 우영우는 자폐성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설정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자폐성 장애는 사회적 관계를 맺는 기술 습득이 어렵고, 의사소통이나 언어습득에 장애가 있고, 감각적으로 특이하거나 상동행동을 보인다는 세 가지 기준 모두를 충족해야만 진단된다. 하지만 우영우라는 사람을 이 기준들에 욱여넣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자폐 스펙트럼 자체가 워낙 넓기에 세상에는 100만명에 한 명꼴로 나타난다는 초감각적 능력의 서번트 증후군도 있지만, 일상 전반의 질이 타인에 비하여 현저히 저하될 가능성이 있는 중증 자폐성 장애도 다수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정 유형 장애는 특정 영역이나 감각에 탁월한 능력이 있다’는 식으로 일반화하는 것은 장애인이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 존재하며 살아가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가 심심찮게 뱉어내는 ‘고기능성 자폐’ 따위의 어색한 말은 장애를 계급화하기도 한다. 장애 계급화가 능력주의와 연결되면 짐짓 더 잔인해진다. 같이 살아도 되는 장애와 격리되어 마땅한 장애를 감히 나누는 것이다.

인권침해 상담전화를 받다보면 “너도 장애인이냐”며 시비를 거는 사람을 더러 만난다. 맞다 하면 “몇급 장애인이냐”고 물어온다. 대답을 들은 후에는 “한쪽 눈은 보인다니 C급 장애인이네” 하고 킬킬거린다. 어릴 때부터 타고난 천재성으로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은 ‘어일우(어차피 일등은 우영우)’라는 캐릭터를 보며 ‘저 정도는 돼야 (장애인이라도) 길거리를 돌아다닐 수 있는 자격이 있지’라는 식의 위험한 생각과 같은 맥락이다.

나는 우영우가 좋다. 내가 우영우를 좋아하는 이유는 자폐가 있음에도 놀라운 실력과 천재성으로 이를 극복한 장애인이라서가 아니다. 변호사로서 사건과 의뢰인을 마주하고 고민하는 자세, 자신을 평범하지 않은 사람으로 규정짓는 세상에서 나름의 방식대로 적응하며 명랑한 직업인으로 고군분투하는 모습에 진심으로 공감되기 때문이다.

사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우영우가 만들어가는 삶은 대부분의 자폐인의 삶과는 별 상관이 없는 판타지에 가깝다. 뭐 어떤가. 이 드라마가 종종 자폐를 공들여 설명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자폐성 장애인을 최대한 현실적으로 정확하게 묘사할 의도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그저 우영우라는 ‘사람’의 매력에 빠져들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면서 ‘한국에는 저런 법리가 있구나’ ‘차갑게만 느껴지던 법이 사실은 마음을 중시하기도 하는구나’ 정도 생각하면 좋겠다. 그게 우영우 변호사가 존엄한 사람으로 재미있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가장 큰 응원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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