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하얀
경향신문 기자
최신기사
-
내 몸과 잘 살고 있습니다④ 매일 10년 넘게 약 챙겨 먹지만…괜찮다 말하는 아픈 몸들 흔히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이고, 건강을 잃으면 모든 걸 잃는 것이라 이야기한다. 건강은 최선을 다해 추구해야 하는 절대 가치이자 선인 것이다. 반면 질병은 비극의 시작으로 예방이나 치료를 통해 극복해야 하는 악으로 여긴다. 질병이 없는, 아프지 않은 몸을 가진 이들이라면 이같은 명제를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완치가 힘들거나 불가능한 질병을 가진 이들은 다르다. 국내에서는 매해 5만여명의 희귀 난치질환자가 새로 등록된다. ‘건강이 최고’라는 프레임은 물리적 통증에 더해 사회적 통증을 가중한다. ‘몸 관리를 어떻게 했길래’ ‘천벌 받은 것’ 등 가족이나 지인, 주변의 반응은 아픈 몸을 가진 이들의 자책에 무게를 더한다.
-
내 몸과 잘 살고 있습니다 ① 노인이라서 뭉뚱그려지는 몸…나이 드는 데도 준비가 필요해 “‘100세 시대’ 준비를 돕는다는 수많은 자기계발서가 있지만, 모두 ‘어떻게 해야 한다’는 지침이나 교훈만 있을 뿐, 뭘 하면서 어떻게 늙어가야 한다는 게 없어요. 노년은 저마다 경험에 따라 다른 삶을 살고, 각자 노화를 경험하는 방식이 다른데도 모두 하나로 뭉뚱그려지죠. 노년이 직접 느끼고 감각하는 변화에 대한 경험의 말을 더 경청하고, 여러 조건에 따른 교차적인 분석과 이해가 필요합니다.”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김영옥 상임대표의 말이다. 옥희살롱은 나이듦과 젠더, 몸 정체성, 노년 인권 등을 연구하는 곳이다. 스스로 노년들을 만나며 몸과 마음이 늙어가는 현상에 대해 고민하는 그는 “단순히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몸’이 가치를 지니는 우리 사회에선 내가 70세, 75세에 어떤 존재이고 싶은지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면서 “사람이 나이 드는 데에도 선행학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꼬다리 귀여운 강아지만 보인다면 의심해 보세요 8년 전 6월, 귀갓길에 아파트단지로 이어지는 작은 공원을 통과하는데 웬 택배상자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별생각 없이 지나가려는데 상자가 마구 흔들렸다. 미지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하지만 이내 ‘존재’에 대해서만 생각하게 됐다. 상자를 여니 팬더마우스 새끼 5마리가 엉겨 붙어 있었다. 자세히 보니 5마리 모두 피부질환을 앓고 있었다. 버려진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여름밤 온도에 무사할지, 길고양이들과 소란이 있지는 않을지 걱정됐다. 보호자를 찾지 못해 나와 친구가 나눠 키우게 됐다. 동물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받고 톱밥을 푹신하게 깐 집을 마련해 며칠 돌보니 차츰 나았다. 한 마리는 상태가 나빠져 죽었고, 나머지 네 마리는 회복해 입양됐다.
-
꼬다리 ‘당사자 정치’로 균열 내기 “What’s your pronoun?”(“어떤 대명사를 쓰시나요?”) 지난 10월 출장차 찾은 미국에서 만난 이들에게 어렵지 않게 들은 질문이다. 지정 성별이 여성인 이는 자신을 ‘he/him(그)’으로 지칭했다. ‘여성’과 ‘남성’으로 나뉜 성별 이분법이 자신의 정체성을 오롯이 담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they/them(그들)’을 썼다. 이는 정의‘되기’에서 정의‘하기’로, 당사자를 객체에서 주체로 옮겨놓는 작업으로 다가왔다. 당사자가 주체가 되어 말하기는 차별에 대항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공화당 우세인 텍사스 주의회는 성소수자 차별 법안을 연이어 통과시키고 있다. 트랜스젠더 청소년의 호르몬 치료 등 성확정 의료서비스를 금지하는 법안부터 학교에서 성소수자 인권 교육을 없애고 대학 운동선수가 지정 성별로만 경기에 참여하도록 하며, 드랙쇼를 사실상 제한하는 법안 등이다.
-
‘보수 정부’에서 ‘성소수자 정치’?···“할 수 있죠” 미국 텍사스에서 보는 가능성 ‘성소수자 권리’는 선거에서 핵심 의제가 될 수 있을까. 국내에서는 2016년 20대 총선에서 ‘레인보우 보트(RAINBOW VOTE)’ 캠페인이 진행됐다. 정치에 성소수자의 목소리를 반영하자는 취지였지만 조직적인 운동으로 성장하지는 못했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선 차해영 마포구 의원이 ‘한국 최초 성소수자 의원’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여전히 선거에 나선 주요 후보들은 성소수자 현안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내세우며 언급을 회피한다. 대표적인 공화당 지지주인 텍사스에 속해 있지만 진보 성향이 강한 휴스턴에선 성소수자 정치 활동이 활발하다. 시장에게 성소수자 정책을 직접 자문하는 기구가 있고, 후보의 당선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힘을 가진 정치단체도 활동 중이다. 경향신문은 주한미국대사관이 후원한 ‘LGBTQI+(성소수자) 인권 스터디 투어’에 참여해 지난달 24일(현지시간)부터 사흘간 휴스턴의 활동가들을 만났다.
-
“밀어내도 나아간다”···‘성소수자 권리’ 분투하는 미국 텍사스 시민들 미국에서 인구가 두 번째로 많은 텍사스주는 정치적·문화적으로 보수 성향이 강한 지역이지만 대도시인 휴스턴은 진보 성향이 우세하다. 휴스턴이 텍사스주 내 다른 지역에 비해 성소수자를 포용하는 문화와 제도가 앞서 있는 배경이다. 하지만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와 주의회를 장악한 공화당 의원들이 성소수자 권리를 후퇴시키는 법안을 속속 통과시키면서 휴스턴 성소수자 사회의 위기감도 고조되고 있다. 미국 전역의 주의회에 제출된 성소수자 억압 법안 500여건 가운데 20%에 해당하는 100여건이 텍사스에서 발의됐고, 이 중 최소 25건이 통과된 상태다.
-
“성소수자 축제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등재하자”···국제적 움직임 시동 성소수자 축제인 ‘프라이드(Pride)’를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무형유산 목록에 등재시키자는 국제적인 제안이 나왔다. 프라이드가 유엔 기구인 유네스코가 인정한 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 성소수자에게 억압적인 정부의 방해 시도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는 취지에서다. 한국 역시 한국판 프라이드인 퀴어문화축제가 정부 성향에 따라 허용되거나 억압을 받고 있어 주목된다. 네덜란드 출신인 마리예 코르넬리센 전 유럽 의회 의원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인터프라이드 연례총회 및 세계회의’ 연설에서 “문화적 실천으로서 프라이드의 중요성이 앞으로도 오랫동안 인식될 수 있기를 바란다”면서 프라이드를 2026년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에 등재시키자고 제안했다.
-
미 국무부 당국자 “한국은 성소수자에게 쉽지 않은 곳···차별금지법 통과돼야” 미국 국무부 민주주의인권노동국(DRL) 성소수자 인권특사실 브라이언 데이비스 수석고문은 지난달 20일(현지시간) 주한미국대사관이 후원한 LGBTQI+(성소수자) 인권 스터디 투어에 참여한 취재진과 만나 “한국에서 성소수자들이 여러 곳에서 학대당하는 것을 알고 있다”고 밝혔다. 데이비스 수석고문은 “한국에서 2019년에 동성애자 군인 문제(해군의 성소수자 군인 색출)가 불거지지 않았나”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한국 교도소에서 성소수자가 요구하는 조건을 들어주지 않았다는 사실도 보고받았다”고 덧붙였다. 독거수용을 요청하고 혼거입실을 거부한 성소수 수용자에게 징벌이 부과된 사건을 말한다.
-
쏠림 사회 한국, 강남 리포트 ‘제2의 강남’ 송도의 역설…“강남 쏠림 강화할 베드타운 우려” 서울 강남이 한국 사회 쏠림의 중심에 설 수 있었던 주요 요인은 부동산과 교육으로 압축된다. 도로가 직선으로 뻗어있고, 주거와 상업지구가 사각형으로 구획된 신도시는 대표적인 부동산 투자 상품으로 고공 행진했다. 강북에 있던 ‘명문고’들이 이전하자 자녀의 ‘명문대’ 입학을 노리는 학부모들이 뒤따랐고 이들의 수요에 맞춰 새로운 사교육 시장이 열렸다. 부동산과 교육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강남의 인기를 끌어올리면서 사람과 일자리, 인프라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시세차익을 노린 투기의 장으로서 강남의 ‘성공’은 대한민국 도시 발전 모델로 자리 잡았다. 전국 곳곳에서 ‘제2의 강남 만들기’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경기 분당과 광교, 인천 송도, 부산 해운대, 대구 수성, 대전 유성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곳들은 인근 지역보다 부동산 가격이 월등히 높고, 학원 등 사교육 업체가 집중돼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
꼬다리 오지선다에 갇힌 ‘가능성들’ “대치동 친구들은 ‘몬스터’ 마시면서 엄청 조금 자요. 적게 자는 애들은 2~3시간쯤, 저는 4~5시간 자요.” 지난 9월 5일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서 만난 중학교 1학년 권모양(13)은 중학교 입학 전 살았던 송파 잠실과 현 거주지인 강남 대치를 비교하며 에너지 음료를 언급했다. 학생들이 오랜 시간 공부하려고 각성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졸음을 쫓으려 고3 때 마시던 게 에너지 음료인데 5년이나 앞당겨졌구나 싶었다. 외고 입시를 준비한다는 권양은 수학·과학·국어·영어학원에 다니고 수학은 과외도 받는다. 초등학교 1·2학년 때는 방학마다 필리핀으로 어학 캠프를 갔다. 언니와 세 차례 캠프를 다녀오는 데 든 비용만 2억원에 달한다고 했다. 입시를 치르며 대치동과 별다른 접점이 없었기에 그날 학원가에서 만난 학생들을 통해 접한 세계가 생경하게 다가왔다. 초등학교 때부터 의대 입시를 준비하는 ‘초등 의대반’이 성행하는 등 사교육 진입 시기가 빨라졌고, 공부 계획을 관리해주는 과외 등이 생겨났다는 사실을 이번 취재 과정에서 확인했다.
-
쏠림 사회 한국, 강남 리포트 대치동으로, 유명학원으로, 의대로···‘몰빵’ 사회 김형원씨(19·가명)는 지난 2월 경남 통영에서 서울행 버스에 홀로 몸을 실었다. 버스는 4시간여를 달려 서울 서초 반포동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김씨는 다시 한 시간가량 지하철을 타고 경기 성남으로 이동했다. 김씨의 최종 목적지는 비좁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방 20개가 마주 보고 있는 고시원이었다. 두세 평 남짓한 방에는 1인용 침대와 책상, 냉장고와 전자레인지가 비치됐고, 샤워기와 변기가 설치된 화장실이 딸려 있었다. 김씨는 월세 90만~100만원짜리 서울 대치동 학사의 차선책으로 월세 50만원에 이 방을 구했다. 강남과 분당 사이에 있어 이동이 수월할 거란 계산도 작용했다. 재수생 김씨가 상경한 건 인터넷으로만 접한 학원 강사의 현장 강의를 듣기 위해서다. 하지만 인기 강사의 수업 정원이 차는 속도는 생각보다 빨랐다. 대치동과 분당의 대형학원에 각각 대기를 걸어야 했다. 대기표를 받아 들고 꼬박 3개월을 기다린 뒤에야 대치동 학원에 자리가 났다.
-
쏠림 사회 한국, 강남 리포트 강남 교사들의 고민···“문제풀이 기계를 만드는 것 같아요” 서울 강남은 학생·학부모의 교육에 대한 열의와 관심이 남다른 만큼 경쟁도 치열한 곳이다. 강남 지역 공교육 현장의 교사들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 “교육청 연수에서는 ‘활동 중심 교육을 하라’ ‘창의성과 상상력을 발전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하라’는 요구를 많이 받거든요. 최근 10년간 배출된 교사들은 그런 수업을 꽤 하는데, 그나마 중학교는 먹혀요. 근데 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도 반발하고 학부모 이의제기도 이어지죠. 중학생들도 ‘진도는 언제 빼냐’고 해요. 이런 수업에서 배우는 게 없다고 생각하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