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를 지우는 교실

장애학생 부모가 수업보조해야 했던 20년 전···“달라진 게 있나요?”

박하얀 기자    오동욱 기자

“1986년에서 1988년 사이에 특수학급이 폭발적으로 팽창했어요. 이때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이 있었거든요. 올림픽엔 패럴림픽이 따라오잖아요. 장애인 올림픽이 열리는 나라인데 장애인들은 다들 시설이나 집에 있다? 말이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장애 학생 교육 수혜율을 높이려고 특수학급이 양적으로 팽창한 거예요.”

김수연 경인교육대 교수는 “통합교육의 첫단추가 잘못 끼워졌다”며 이같이 말했다. 1977년 제정된 특수교육진흥법은 1994년 3차 개정안에서 ‘통합교육 도입 및 확대’를 포함시켰다. 이후 통합교육은 몇번의 수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그동안 장애 학생 교육은 어떻게 이뤄졌을까. 무엇이 달라졌고, 무엇이 그대로일까. ‘장애를 지우는 교실’ 2회는 발달장애인 통합교육 관련 제도의 변천에 발맞춰 장애 학생 교육 현실이 얼마나 변화했는지 살펴봤다.

발달장애인 이정찬씨가 22일 서울의 한 대안학교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사진 크게보기

발달장애인 이정찬씨가 22일 서울의 한 대안학교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1990년대생 정찬씨의 교실: 기반조차 없었던

최경화씨는 발달장애인인 아들 이정찬씨가 동네에서 학교를 다니길 바라는 마음으로 인근 초등학교에 보냈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는 통합교육을 하는 유치원이 없어 집에서 아들을 돌볼 수밖에 없었다.

통합교육은 시행되고 있었지만 특수교육실무사(2004년 도입)도, 활동지원사(2010년 도입)도 없던 시절이었다. 통합교육은 특수교육 기회를 보장하는 데 머물러 있었을 뿐 실질적인 환경은 구축되지 못했다. 학교에 특수교사는 한 명뿐이었고 보조인력이 없어 최씨가 교사의 수업을 보조해야 했다. 보호자가 생업을 포기해야 장애인이 공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최씨는 교실에서 장애 학생뿐 아니라 학습이 더디다는 이유로 배제되는 비장애 학생들을 자주 목격했다. 그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학생들이 수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거들었다. “지식을 주입하는 일반적인 수업에서는 장애 학생뿐 아니라 많은 학생들이 배제돼요. 이걸 뒤엎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발달장애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발달장애청년허브 사회적협동조합 ‘사부작’ 대표인 최경화씨(오른쪽)가 22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 사무실에서 아들 이정찬씨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씨는 서울 도봉구의 한 공립초등학교를 다닐 때 수업이 끝나고 비장애학생들과 놀이터에서 자연스레 놀게 됐다. 학생들은 이를 ‘별 학교’라 이름붙였다. 서성일 선임기자 사진 크게보기

발달장애청년허브 사회적협동조합 ‘사부작’ 대표인 최경화씨(오른쪽)가 22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 사무실에서 아들 이정찬씨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씨는 서울 도봉구의 한 공립초등학교를 다닐 때 수업이 끝나고 비장애학생들과 놀이터에서 자연스레 놀게 됐다. 학생들은 이를 ‘별 학교’라 이름붙였다. 서성일 선임기자

초등학교 졸업이 다가오면서 남은 선택지는 둘이었다. 특수학교에 진학하거나, 진학을 포기하거나였다. 최씨가 찾아간 특수학교 설명회에서 교장은 “(학생이) 이름을 불러서 올 수 있을 정도면 특수학교에 오지 말라”고 했다. 먼 통학 거리도 문제였다. 고심 끝에 대안학교 근처로 이사했다.

대안학교에선 평가 중심 경쟁체제인 정규 학교와 달리 학생의 관심사와 특징 등을 고려한 프로젝트 수업이 진행됐다. 장애 학생도 역할을 부여받았고 비장애 학생과 함께 활동하는 과정에서 ‘협력관계’가 만들어졌다. 지역 주민들과의 접점도 형성됐다. 이웃에게 베이킹을 배웠고, 직접 만든 쿠키를 지역 카페에 납품하면서 연결고리가 하나둘 만들어졌다.

이씨가 졸업하고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일반학교는 장애 학생에게 열린 공간이 됐을까. 최씨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 짐작했다. “교육의 목적은 시민을 만들어내기 위함인데, 장애인이 어떻게 시민으로 살아갈 것인지를 염두에 두고 교육해야 하지 않을까요? 일방적으로 가르치고 ‘너 외웠니?’ 하고 다그치는 방식으로는 배제되는 학생들이 계속 나올 거예요.”

발달장애인 이정찬씨가 대안학교에 다닐 당시 제과 수업에 참여한 기록을 담은 자료. 당시 학교에 있던 통합지원 교사의 역할은 장애학생 전담이 아닌, 장애·비장애학생의 통합을 지원하는 것이었다. 서성일 선임기자 사진 크게보기

발달장애인 이정찬씨가 대안학교에 다닐 당시 제과 수업에 참여한 기록을 담은 자료. 당시 학교에 있던 통합지원 교사의 역할은 장애학생 전담이 아닌, 장애·비장애학생의 통합을 지원하는 것이었다. 서성일 선임기자

2000년대생 정재군의 교실: 선택지를 주지 않는

2007년 특수교육진흥법이 폐지되고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이 제정됐다. 통합교육에 대한 규정은 ‘물리적 통합’ 위주에서 ‘실질적 통합’으로 나아갔다. 특수교육 대상자가 일반학교에서 장애 유형과 정도에 따라 차별받지 않고 또래와 함께 개개인의 교육적 요구에 적합한 교육을 받는 것을 ‘통합교육’으로 정의했다.

고등학교 2학년인 자폐성 장애인 김정재군(17·가명)은 학교폭력을 겪은 사실이 치료센터 진술 등을 통해 드러났다. 김군 부모가 학교에 문제를 제기하자 개입한 교육청 장학사가 ‘해법’이라며 건넨 말은 뜻밖이었다. “장애가 있는 애들은 대학 가봐야 소용없어요. 기술 가르치는 게 낫지 않아요?” 김군은 수학·물리에 관심이 많아 희망하는 전공이 정해져 있다. 장애 특성을 고려한 학습자료가 주어지지 않고 평가 역시 비장애인과 똑같은 방식으로 진행되는 학교에서 품어온 꿈이다.

특수반과 일반반을 오가며 교육받는 서울의 한 중학생의 ‘개별화 교육계획서’. 학기 초마다 장애학생의 부모, 특수교사, 원학급의 담임교사 등은 개별화교육계획 회의(IEP)를 열고 장애학생의 학습 계획을 짠다. 회의에서 다뤄지는 내용은 교사마다 다르며, 학부모가 계획서 양식을 구비하는 경우도 있다. 한수빈 기자 사진 크게보기

특수반과 일반반을 오가며 교육받는 서울의 한 중학생의 ‘개별화 교육계획서’. 학기 초마다 장애학생의 부모, 특수교사, 원학급의 담임교사 등은 개별화교육계획 회의(IEP)를 열고 장애학생의 학습 계획을 짠다. 회의에서 다뤄지는 내용은 교사마다 다르며, 학부모가 계획서 양식을 구비하는 경우도 있다. 한수빈 기자

그는 1년 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떤 경로를 걷게 될까. 장애 학생의 대학 진학률은 낮다. 2022년 교육부 자료를 보면 일반고등학교를 졸업한 장애 학생의 17%, 특수고등학교를 졸업한 장애 학생의 3%가 전문대나 일반대에 진학한다. 상당수는 장애인복지관 프로그램이나 주간보호시설, 사설 센터 등을 이용한다.

초·중·고교 모두 통합교육을 받고 지난해 졸업한 지적장애인 최민정씨(22·가명)는 장애인복지관이 운영하는 2년짜리 프로그램에 한 달에 20만원을 내고 다닌다. ‘대학’이라 이름 붙은 프로그램이지만 하루 6시간이나마 가정의 돌봄 부담을 경감하려는 목적이 강하다. 최씨 어머니는 “운이 좋아서” 이곳에 다닐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고3 때 특수반 교사는 여러 복지관 연락처를 알려주며 졸업 후 다닐 만한 곳에 “빨리 대기시켜 놓으라”고 재촉했다. 최씨는 졸업하자마자 발달재활 서비스 바우처 지원이 끊겨 자비로 치료센터에 다니고 있다. 주간활동 서비스는 신청마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동주민센터를 찾았지만 “정부가 바뀌면서 주간활동 서비스 예산이 줄어 신청자 대기를 해야 한다”는 답을 들었다. 올해 복지관 프로그램이 끝나면 갈 곳을 다시 찾아야 한다.

특수반과 일반반을 오가며 교육받는 중학생이 지난 17일 부모가 준비해준 학습 자료를 책상 위에 펼쳐 보였다. 일반학교들에서 의무적으로 시행되는 ‘장애 이해 교육’은 학생들에게 영상을 보여주고 끝나는 등 졸속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한 번의 교육으로는 장애인을 대하는 방식에 변화가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한수빈 기자

특수반과 일반반을 오가며 교육받는 중학생이 지난 17일 부모가 준비해준 학습 자료를 책상 위에 펼쳐 보였다. 일반학교들에서 의무적으로 시행되는 ‘장애 이해 교육’은 학생들에게 영상을 보여주고 끝나는 등 졸속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한 번의 교육으로는 장애인을 대하는 방식에 변화가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한수빈 기자

2010년대생 은수양의 교실: 구호뿐인 통합교육

2016년 개정 초등교육법은 ‘학습 부진’ 학생에 경계선 지능장애 학생까지 포함했고, 2022년 기초학력보장법이 통과됐다. 다양한 학생을 아우르는 ‘보편적 학습 설계’가 주요 내용이다. 하지만 통합교육은 여전히 분리교육처럼 운용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새 학기 공개수업이 한창인 교실. 초등학교 5학년 서은수양(가명)은 20분 동안 교과서도 펴지 못한 채 가만히 앉아 있기만 했다. 결국 실무사가 지원하러 왔지만 교사의 판서를 받아쓰는 게 전부였다. 실무사는 지루해하는 서양을 교실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들어오기를 반복했다. 담임교사, 특수교사, 부모 등이 참여한 개별화교육계획(IEP) 회의에서 논의한 내용은 무용지물이었다.

경계선 지능장애인 조성훈군(13)은 집에서 도보 10분 이내에 초·중·고교가 있지만 모두 갈 수 없었다. 특수학급 학생 정원이 다 찼기 때문이다. 결국 버스로 30분 거리에 있는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조군이 고학년에 접어들 무렵에야 집 앞 초등학교에 특수학급이 생겼다. “출생률 감소 등으로 학생 수가 2~3년 사이 300명이 줄어든 거예요. ‘학교에 공간이 없어서 못 만든다’는 핑계가 더는 안 통하고 특수교육 대상자도 많아지니까 어쩔 수 없이 만든 거죠.” 조군 어머니가 말했다.

특수반과 일반반을 오가며 교육받는 중학생이 지난 17일 학교 앞에 서있다. 한수빈 기자

특수반과 일반반을 오가며 교육받는 중학생이 지난 17일 학교 앞에 서있다. 한수빈 기자

일반학교에서 특수학급을 설치할 권한은 관리자인 교장에게 있다. 장애인은 유치원에서 고등학교까지 무상 의무교육 대상이다. 특수교육 대상 학생 수는 2021년 9만8154명, 2022년 10만3695명, 2023년 10만9703명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특수학급이 설치되는 속도는 더디다. 특히 중·고등학교와 사립학교가 소극적이다.

최근 3년간 특수학급이 설치된 일반학교 수(매년 4월1일 기준)를 보면 초등학교는 2021년 4625곳, 2022년 4736곳, 2023년 4841곳이었다. 이 중 사립은 4~5곳에 불과하다. 중학교의 경우 2021년 1946곳, 2022년 2009곳, 2023년 2068곳이었다. 사립은 100곳 이하다. 고등학교는 2021년 1102곳, 2022년 1115곳, 2023년 1131곳이었다. 특수학교는 2021년 182곳, 2022년 187곳, 2023년 189곳이었다. 절반가량인 90곳이 사립학교다. 종교재단, 복지기관 등에서 운영하는 영향이 크다.

강종구 대구대 초등특수교육과 교수는 “학생들이 실무사에게 의존하지 않고도 학교에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고려해야 하는데 (교원 간) 협력이 단절돼 학교에서는 장애 학생에게서 문제의 원인을 찾는다”고 진단했다. 강 교수는 “교장급을 ‘특수교육 지원 코디네이터’로 지정하는 영국처럼 관리자에게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면서 “특수교사는 일반교사, 관련 서비스 전문가를 연결하며 교수 방식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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