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를 지우는 교실

“학교에서부터 장애인을 분리하면, 사회에서는요?

박하얀 기자
자폐성 장애인 김찬혁(왼쪽), 지적장애인 박초현(가운데), 문진희씨가 지난 11일 인터뷰에 앞서 서울 성북구의 한 계단에서 포즈를 취했다. 이들은 학창시절에 특수학급과 일반학급을 오가며 통합교육을 받았다. 성인이 되고 발달장애인 당사자 운동단체인 피플퍼스트 성북센터에서 활동가로 일하며 서로를 알게 됐다. 문재원 기자

자폐성 장애인 김찬혁(왼쪽), 지적장애인 박초현(가운데), 문진희씨가 지난 11일 인터뷰에 앞서 서울 성북구의 한 계단에서 포즈를 취했다. 이들은 학창시절에 특수학급과 일반학급을 오가며 통합교육을 받았다. 성인이 되고 발달장애인 당사자 운동단체인 피플퍼스트 성북센터에서 활동가로 일하며 서로를 알게 됐다. 문재원 기자

지난해 주호민 작가가 자녀를 담당한 특수교사를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한 사건이 알려지자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그런데 정작 장애인 학생의 목소리는 별로 들리지 않았다. 발달장애인 당사자 운동 단체인 피플퍼스트센터들의 장애인 활동가들은 그들의 목소리를 담은 성명서 발표를 고민하다가 접었다. 발달장애인 학생에게 쏟아지는 혐오와 비난이 공포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지난 11일 발달장애인 박초현(26), 김찬혁(26), 문진희씨(21)를 만났다. 이들은 이 사건이 꾹꾹 눌러둔 학창시절의 괴로웠던 경험을 떠올리게 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각자 겪은 학교생활, ‘특수’라는 이름으로 장애 학생을 분리하는 교육제도에 대한 생각을 말했다.

장애인 따돌림은 불변의 법칙일까

폭력과 배제, 혐오에 노출된 경험은 공통적이었다. 지적장애가 있는 박씨는 중학교 때 일반학급에 수업을 들으러 가면 책상이 사라진 경우가 많았다. 비장애 학생들이 일부러 빼놓은 것이다. 박씨 사물함에 쓰레기를 잔뜩 채워둔다거나 가방에 우유를 붓는 일도 있었다. 가방에 장애인 혐오 낙서가 적혀있기도 했다. 학생들이 그에게 한 말은 아직도 생생하다. “너는 장애인이니까 우리가 이렇게 한다고 억울해하지 말고. 고등학교 가서도 왕따 당할 거야, 너는.”

시설에 거주했던 박씨는 교사, 사회복지사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말할 수 없었다. 가해 학생들을 피해 운동장 한구석에 혼자 앉아 있는 날이 많았다. ‘도전적 행동’이라 불리는 행동도 이 시절 심했다. 박씨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잡아뜯으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자폐성 장애인인 김씨는 고1 때 장애 등록을 했지만 학창시절 내내 특수학급이 없는 학교에 다녔다. 중학교 때 경험한 욕설, 구타 등 괴롭힘은 고등학교에서도 이어졌다. 당시 김씨에게 장애는 숨겨야 하는 것이었다.

자폐성 장애인 김찬혁씨(왼쪽), 지적장애인 문진희(가운데)·박초현씨가 지난 11일 서울 성북구의 피플퍼스트 성북센터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김씨는 장애 정도가 심하면 특수학교나 특수학급에만 있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당사자의 의견을 물어보고 결정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문씨는 장애학생들에게 “‘똑같은 사람이니까 기죽지 말고 학교생활을 잘했으면 좋겠다’고, ‘네가 잘못한 게 아니다’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문재원 기자 사진 크게보기

자폐성 장애인 김찬혁씨(왼쪽), 지적장애인 문진희(가운데)·박초현씨가 지난 11일 서울 성북구의 피플퍼스트 성북센터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김씨는 장애 정도가 심하면 특수학교나 특수학급에만 있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당사자의 의견을 물어보고 결정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문씨는 장애학생들에게 “‘똑같은 사람이니까 기죽지 말고 학교생활을 잘했으면 좋겠다’고, ‘네가 잘못한 게 아니다’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문재원 기자

통합 아닌 ‘통합’, 그럼에도 일반학교를 다닌 이유

물리적으로 통합은 됐지만 교실에서는 분리가 우선했다. 장애 학생의 관심과 특성을 반영한 교육은 좀처럼 이뤄지지 않았다. 박씨는 “일반학급 수업 내용이 이해가 가는 때도 많았는데, 별다른 이유 없이 특수학급에 가야된다고 했다”고 회고했다. 문씨도 국어·영어·수학 등 주요 과목은 무조건 특수반에서 수업을 들었다. 입시가 중요시되는 중·고등학교로 갈수록 장애 학생이 일반학급이 아닌 특수반에서 수업을 듣는 시간은 길어진다.

이들이 ‘특별 대우’를 바란 건 아니었다. 수업과 외부 체험활동에 참여할 권리가 보장되고, 학생 간 갈등이 생기면 서로를 이해하고 풀어나갈 수 있는 기회를 학교가 마련해주길 바랐다. 문씨는 “일반학급 친구들과 싸우면 일반학급에 아예 못 가게 했다”면서 “같이 싸운 건데 저만 분리하니 속상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비장애 학생들과 친해지고 싶어 수학여행에 갔지만 특수반 학생들끼리만 있어야 했던 아쉬움을 이야기했다.

인력이 부족한 탓에 장애 학생이 다른 학생을 돌봐야 하는 상황이 빚어지기도 했다. 고등학교 특수반에서 장애 정도가 비교적 심하지 않은 편이었던 박씨는 특수교사의 부탁을 받고 뇌전증이 있는 친구를 2년간 챙겨야 했다. 그는 “특수교사는 3명인데 학생은 13명이고 장애 유형도 다 달랐다”면서 “사람이 없으니 안 챙길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런 열악한 상황을 견디며 일반학교를 고집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장애 학생에게 학교는 시설이나 집에만 있어서는 경험할 수 없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문씨는 중학교 때 학교 생활을 살뜰히 챙겨준 비장애인 친구를 기억한다. 박씨는 고2 때 분수를 배우고 싶다고 하니 쉬운 문제집을 건네준 일반학급 교사를 떠올렸다. 그는 “비장애인과 같이 있으면서 어떻게 지내고 공부하는지 보는 것으로도 학습이 된다”며 “사회에서 다 같이 살아야 하는데, 학교에서부터 이런 기회조차 박탈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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