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공룡 선거구

구혜영 논설위원

“안 가본 데가 많아 ‘갈수록 내 지역구는 면적이 늘었다’라는 푸념이 저절로 나왔다.” 4개 시군이 한데 묶인 선거구에 출마했던 정치인이 한 말이다. 전직 광역단체장은 “지역구가 너무 넓어 장이 서는 날에만 겨우 얼굴을 비쳤다”며 복수의 접경지에서 치른 선거를 기억했다.

선거를 민주주의 꽃이라고 한다. 선거구는 꽃을 심고 가꿀 땅이다. 그 구역을 정하는 과정은 공정해야 한다. 그래서 선거구가 특정 정당에 유리하게 획정되는 ‘게리 멘더링’을 막기 위해 선거구 법정주의’가 채택되고, 표의 등가성과 지역 불균형 해소를 지향한다. 그러나 선거구 법정주의는 점점 격차가 벌어지는 지역 대표성 문제를 키웠다. 이 사각지대에서 등장한 괴물이 바로 ‘공룡 선거구’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가 지난 5일 국회에 제안한 내년 총선 선거구 획정안 초안에도 초대형 공룡 선거구가 있다. 강원도 속초시와 철원·화천·양구·인제·고성군이다. 이들 6개 시군 면적은 약 4900㎢로 서울의 8배가 넘는다. 땅 크기로 보면, 서울 지역 국회의원 48명의 역할을 이 지역 국회의원 한 명이 떠맡아야 한다는 소리다. 강원도에선 “지역 대표성과 생활권을 무시한 불합리한 획정”이라며 총선 보이콧 불사를 벼르는 시민들도 나오고 있다.

공룡 선거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회 차원의 입법 노력이 없진 않다. 인구소멸 지표·선거구 면적을 획정 과정에 반영하고 특례 선거구를 지정하는 식이다. 하지만 수도권·거대 정당 중심 논의에선 이 노력도 뒷전이었고, 이젠 근본적 개선책을 찾아야 할 때가 됐다. 당장 인구보다 생태적 관점이 녹아 있는 선거구 획정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동물·자연처럼 인간과 공존해야 할 자원은 도시보다 지역에 많다. 이를 돌보고 보존하기 위해서라도 지역 선거구가 줄면 안 된다”는 것이다. 굳이 현행 기준을 유지한다면, 지역 인구의 대표성을 넓히는 것도 검토할 만하다. 정주 인구뿐 아니라 ‘경제 인구’도 선거구 획정 기준에 포함하는 방법이다. 강원도는 관광객·군인들이 경제 인구에 해당한다. 최종 확정까지 아직 시간이 있다. 여야가 의석 유불리를 따질 시간에 시대 가치를 담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고 싶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가 국회에 제출한 내년 총선 선거구 획정안에는 강원도 속초시와 철원·화천·양구·인제·고성군이 한 지역구로 돼 있다. 강원특별자치도청 인터넷 홈페이지 지도 자료를 토대로 선거구 획정구역을 표시했다. 사진 크게보기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가 국회에 제출한 내년 총선 선거구 획정안에는 강원도 속초시와 철원·화천·양구·인제·고성군이 한 지역구로 돼 있다. 강원특별자치도청 인터넷 홈페이지 지도 자료를 토대로 선거구 획정구역을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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