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우도 댕댕이덩굴에 걸려 넘어진다

김승용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항우는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힘은 산을 뽑을 듯하고 기개는 세상을 뒤덮을 만하다)로 유명합니다. 천하장사의 대명사입니다. 하지만 항우는 제 힘만 믿고 고집부리다 망합니다. 스스로 똑똑하고 강하다 자부하는 이들이 대개 남의 말을 안 듣지요. 학문도 검술도 병법도 지루하다고 시시해합니다. 제 힘과 빠른 두뇌회전을 과신합니다. 결국 항우는 덜 세고 덜 똑똑하지만 더 노력하고 더 머리 맞댄 이들에게 모든 걸 잃고 스스로 강물에 몸 던져 목숨을 끊습니다.

속담에 ‘항우도 댕댕이덩굴에 걸려 넘어진다’가 있습니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와 같은 속담입니다. 댕댕이덩굴은 햇볕 잘 드는 산자락에 많습니다. 나무 감아 올라가기도 하고 바위 타 넘기도 하며 땅바닥 질러 자라기도 합니다. 이 댕댕이덩굴은 등나무처럼 덩굴나무입니다. 그래서 덩굴이 참 질깁니다. 2년쯤 자란 댕댕이덩굴은 속 빈 가는 덩굴이지만 웬만한 장사 아니면 못 끊습니다. 그래서 튼튼한 댕댕이바구니도 짤 수 있지요. 산에 나무하러 갈 땐 몇 명씩 무리 짓습니다. 맹수가 나타날 수도 있고 누군가 다치면 부축해 내려와야 하니까요. 땔거리 자르고 모아 감당할 만큼 지게에 쌓습니다. 이때 힘세다고 으쓱하는 사람 꼭 있습니다. 남들 곱으로 잔뜩 올려선 끙차 짊어집니다. “아, 이 사람아. 그러다 허리 나가.” “뭐, 이까짓 거 갖고!” 씩씩 척척 산길 내려갑니다. “바닥 잘 보고 가.” “걱정은. 내가 한두 번 왔어? 눈 감고도….” 바로 그때, 덤불길 가로지른 댕댕이덩굴에 발목 탁! 산더미 지게째 와르르 엎어집니다.

벌써 사뭇 단풍철입니다. 단풍에 홀려 낙엽 밑 못 보면 미끄러지고 고꾸라집니다. 아차하다 온몸에 어혈 단풍 듭니다. 발밑에 눈 달린 등산 베테랑 없습니다. 괜히 으쓱대다 머쓱해지지 말자고요. 진짜 전문가는 조심 전문가입니다. 질긴 사람은 참 조심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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