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 속 썩는 것은 밭 임자도 모른다

김승용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박과에 딸린 동아라는 식물이 있습니다. 겨울에 먹는 참외라 하여 다른 표준어로 동과(冬瓜)라고도 하죠. 서리 내리고 이맘때가 한창 수확할 때네요. 동아는 수박을 옆으로 곱절 남짓 늘린 듯 크고 길쭉하니 1m까지도 자랍니다. 무게는 50㎏까지 나가고요. 심심한 맛이라 나박나박 자르거나 채를 쳐서 양념 버무려 먹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순신 장군이 장거리 항해 때 식수 보조용으로 잔뜩 실었다고 할 만큼 전체의 90%가 물입니다. 이뇨효과도 있어서 요즘 다이어트 식품으로 떠오른다지요. 그래서 못 먹던 옛날에는 살 내린다며 외려 피하기도 했습니다.

이 동아가 등장하는 속담이 ‘동아 속 썩는 것은 밭 임자도 모른다’입니다. 아무리 친해도 마음속 깊은 근심까지 다 알 수는 없다는 뜻이 담겼습니다. 동아를 보기 귀해진 지금이니 ‘동아 속’을 ‘동아줄 속’으로 오해하고, 밭 경계로 두른 밧줄이 삭은 걸로 잘못 알기도 합니다. 동아는 반 가르면 참외와 비슷한 단면을 보입니다. 참외 쪼개 보면 태좌 곯은 것이 있듯, 동아 역시 겉은 투실하고 멀쩡한데 속이 썩어 있기도 합니다. 밭주인이 매일 들러 시시로 살펴봐도 늘 괜찮아 보일 뿐 그 속까진 모릅니다. 그렇다고 서걱서걱 속 갈라 다 확인할 수도 없지요.

우리가 맺는 관계 가운데는 척하면 알아듣고 눈빛만 봐도 통한다는 사이가 있습니다. 서로의 속사정까지 속속들이 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어느 때인가, 어떻게 나한테까지 말 안 했느냐며 서운해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하지만 서운함도 잠시, 그간 홀로 마음고생 얼마나 심했을까, 못내 안쓰럽습니다. 개중에는 서운한 마음을 끝내 거두지 못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상대 속 썩은 부분보다 자기 못 믿어 속상한 부분만 헤아립니다. 아무리 친해도 너와 나의 교집합 영역이 서로 다르단 걸, 아마 몰라서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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