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상도 사건의 판결을 보는 법

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곽상도 전 의원 때문이 아니라면
아들에게 50억 주었을까 싶은데
그가 죄책을 면한 것은
법감정에 어긋나지 않는가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곽상도 전 의원에 대한 판결이 선고되자 거의 모든 주요 일간지에 검찰이나 재판부를 비판하는 사설이 실렸다. 내용은 대략 두 가지인데, 하나는 검찰의 수사가 미진했다는 것, 다른 하나는 재판부의 판단이 비상식적이라는 것이다. 곽 전 의원에 대한 뇌물 관련 공소사실은 그의 아들이 받은 50억원의 퇴직금을 두고 법률적으로는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그가 국회의원의 직무에 관해 뇌물을 받았다는 수뢰죄이고 다른 하나는 금융기관 임직원의 직무사항 알선에 관하여 뇌물을 받았다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상의 알선수재죄이다.

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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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금 50억원(기소된 뇌물 액수는 세금 등을 뺀 나머지 25억여원)을 실제로 받은 사람은 곽 전 의원 자신이 아니라 그의 아들이다. 그런데 검찰은 곽 전 의원을 제3자 뇌물제공죄가 아닌 수뢰죄로 기소했다. 해석론상 공무원과 실수령자의 관계에 비추어 실수령자의 수령을 공무원의 직접 수령과 같다고 평가할 수 있으면 수뢰죄가 성립한다고 하는데, 이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관련 대법원 판례의 판시는 이렇다. “공무원이 직접 뇌물을 받지 아니하고 증뢰자로 하여금 다른 사람에게 뇌물을 공여하도록 한 경우, 그 다른 사람이 공무원의 사자 또는 대리인으로서 뇌물을 받은 경우나 그 밖에 예컨대 평소 공무원이 그 다른 사람의 생활비 등을 부담하고 있었다거나 혹은 그 다른 사람에 대하여 채무를 부담하고 있었다는 등의 사정이 있어서 그 다른 사람이 뇌물을 받음으로써 공무원은 그만큼 지출을 면하게 되는 경우 등 사회통념상 그 다른 사람이 뇌물을 받은 것을 공무원이 직접 받은 것과 같이 평가할 수 있는 관계가 있는 경우에는 형법 제130조의 제3자 뇌물제공죄가 아니라 형법 제129조 제1항의 뇌물수수죄가 성립한다.” 재판부는 207쪽의 판결문 중 16쪽을 할애하여 곽 전 의원과 아들이 뇌물죄의 공범관계에 있는 것도 아니며 아들은 결혼하여 독립적인 생계를 유지해 왔다고 인정하고, 따라서 퇴직금을 곽 전 의원 본인이 받은 것으로 평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판례를 그대로 따른 것이다.

일각에선 조국 전 장관의 딸이 장학금을 받은 것이나 김성태 의원의 딸이 KT에 취업할 기회를 얻은 것은 본인이 뇌물을 받은 것으로 인정되지 않았느냐며 이번 판결을 비난한다. 그러나 위 두 사건에서는 모두 딸들이 독립된 생계를 유지한 게 아니라고 하여 그런 판단이 나온 것이다. 가족관계가 있더라도 생계를 같이 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법률상 취급을 달리하는 예는 법의 여러 분야에서 종종 있다. 재판부의 법리 판단이 부당하다고 생각되면 법률을 개정하거나 대법원 판례를 바꾸는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생각해 볼 수 있는 다른 죄는 제3자 뇌물제공죄다. 이는 뇌물을 실제로 받는 사람이 공무원 자신이 아닌 제3자인 경우에도 공무원을 처벌하는 것인데, 여기엔 ‘부정한 청탁’이라는 요건이 더해져 있다. 하지만 수사기관의 입장에서는 이 점을 입증할 증거를 찾아내기가 어려울 수 있다. 이 사건에서 검찰은 수뢰죄로 기소할 때 유죄판결을 얻어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듯하다.

알선수재죄로 기소한 것을 보면, 이 죄의 구성요건은 “금융회사 등의 임직원의 직무에 속하는 사항의 알선에 관하여 금품이나 그 밖의 이익을 수수, 요구 또는 약속한 사람 또는 제3자에게 이를 공여하게 하거나 공여하게 할 것을 요구 또는 약속한 사람”이다. 그러나 법원은 곽 전 의원이 하나은행에 알선행위를 한 증거가 없다고 보았다. 이 대목에서는 진실이 그러했을 수도 있지만, 검찰의 수사가 미진해서 알선행위의 존재를 밝혀내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이 점에서 검찰을 비난할 소지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설령 그런 증거가 있었다고 해도, 검찰은 문제의 퇴직금 50억원을 곽 전 의원이 직접 받은 것과 같이 평가할 수 있다고 주장하여 기소한 것인데, 그러한 동일성 평가가 인정되지 않는 이상 이 죄에서도 어차피 무죄판결은 피할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검찰의 정공법은 부정한 청탁의 입증에 주력하여 곽 전 의원의 아들이 제3자로서 뇌물을 받은 것으로 기소하는 게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나저러나 곽 전 의원 때문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슨 이유로 50억원이라는 거액을 아들에게 주었을까 싶은데도 그가 죄책을 면한 것은 법감정에 어긋나지 않는가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제3자 뇌물제공죄가 별도로 있더라도 상식과 법감정을 존중해 수뢰죄에서의 동일성 평가를 확대하는 쪽으로 판례를 변경할지, 아니면 죄형법정주의를 고수하면서 현재와 같은 엄격해석론을 유지할지는 최종적으로 대법원이 결정할 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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