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자기부죄거부특권은 범죄의 혐의를 받거나 기소된 사람이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을 권리다. 미국법에는 경찰관 자신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는 비리와 관련하여 조사를 받으면서 ‘만약 자기부죄거부특권을 행사하면 면직될 것’이라는 압박을 받아 비리에 관해 진술할 경우, 그 진술은 유죄의 증거로 쓸 수 없다는 법리가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1967년의 개리티 사건에서 판시한 것이어서 개리티 원칙(Garrity Rule)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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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해 가드너 사건에서 나온 판결은 ‘대배심에서 위의 특권 포기를 거절하면 면직된다’고 규정한 주법을 무효로 보았다. 그런데 1968년의 통합위생직원연합회 사건에서는 위의 특권을 행사하여 진술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면직되면 그 면직은 위헌이라고 했다가, 1970년에는 피조사자들에게 다시 ‘형사사건에서 유죄증거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부여했는데도 진술을 거부하면 면직할 수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개리티 원칙은 공무원이 직위를 지키고 처벌을 받느냐 아니면 실직하고 처벌을 면할 것이냐는 딜레마에서 진술거부권을 보장하려던 것인데, 이처럼 관련 법리는 당초의 개리티 판결에서와는 조금씩 달라져 왔다. 그래서 후속 사건들에서는 이 원칙의 적용 범위와 관련해서 하급심 판결이 엇갈렸고 해석론도 분분하다.

이 개리티 원칙을 놓고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공직후보자로 출석했던 인사청문회에서 설전이 벌어졌다. 이 원칙을 아느냐는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한 후보자는 “징계를 통해서 겁줘서 진술을 이끌어냈을 때 그 진술이 증거능력이 없다는 원칙”이라고 답했다. 그러자 김 의원은 그렇지 않다면서 이를 “헌법상 진술을 거부할 권리를 통해서 법 집행을 방해했다면 국민이 그 법집행관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이것을 이유로 직무에서 배제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것으로 풀이했다. 청문회가 있기 며칠 전 한겨레에는 박용현 논설위원이 개리티 원칙과 관련하여 한 후보자의 공직 적격에 의문을 표하는 내용으로 쓴 칼럼이 실렸다. 여기엔 연방대법원이 제시한 대안적 원칙이라면서 ‘불리한 진술을 해도 형사처벌의 근거로 사용되지 않는다는 면책 조건을 부여한 뒤 진술을 요구했는데도 진술을 거부하면 파면 등 징계에 처해도 위헌이 아니다’라는 요지의 설명이 붙어 있었다.

누구 말이 옳은가? 한 후보자의 답변은 단순하지만 개리티 판결 자체에서 판시된 내용과 일치한다. 반면 김 의원이나 박 논설위원의 주장은 그 후에 나온 다른 사건의 판결에서 판시된 법리와 대략 일치한다.

실상 김 의원의 질문은 한 후보자가 검사 재직 중 자기에 대한 범죄혐의와 관련하여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수사기관에 말하지 않은 행위를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해서 그 행위의 정당성 여부를 개리티 원칙만으로 따져보기는 적당치 않다. 법체계 전체에 비추어 보면 어떨까? 비밀번호를 말하지 않은 것은 개인적으로는 헌법상 보장된 권리의 행사란 점에서 용인되어야 하지만, 검사의 직위에 있으면서 수사에 협조하지 않은 것을 공무원으로서 적절한 행위로 보기는 어렵다.

여기까지는 법률론이다. 그런데 청문회장은 법정이 아니고, 청문절차는 재판이 아니다. 또 장관으로서의 적격성을 법률론만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도 물론 아니다. 그날 청문회 중 보기에 가장 딱한 장면은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지금이라도 제공할 의사가 있느냐는 김영배 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대해 한 후보자가 탄압 운운하며 헌법상 기본권을 무력화해서는 안 된다는 요지의 답변을 내놓은 것이었다. 청문회는 그런 대답을 들으려고 여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표현을 빌리면 “일국의 법무부 장관”이라는 직위, 법률직으로는 행정부 내 최고직에 지명된 이가 그런 초보적 법률지식에 기대어 자기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인정할 상식인은 없었을 게다. 자기의 행위가 불가피한 선택이었음을 양해시킬 만한 사정에 대한 설명, 최소한의 책임이라도 인정하고 사과하는 자세를 기대했을 터이기 때문이다. 한동훈식 화법이 가지는 위험은 바로 이 지점이다. 법률가의 한계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 시비와 승부에 집착하는 것이다. 장관 취임 후에도 국정감사에서 이태원 참사까지 그가 국회에서 한 발언의 내용과 태도는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작은 승리가 큰 패배로 이어지거나 반대로 작은 것을 내주고 큰 것을 얻은 예는 역사상 많다. 말싸움에서 이긴다고 능사는 아니다. 작게 지고 크게 이기는 게 상지상책이다. 법률가들이 국민의 신뢰를 잃은 지 이미 오래다. 국회에서 진중하고 겸손한 태도로 때론 좀 어눌하게 발언하는 법무부 장관을 볼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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