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운동경기 중에 웃음을 보이면 정신상태가 해이하다는 말을 듣던 때가 있었다. 친구끼리 즐기자고 하는 경기에서도 실수가 멋쩍어 살짝 웃기라도 하면 핀잔을 받곤 했다. 비록 잘 못하더라도 비장한 표정으로 악착같이 뛰어다녀야 인정받았다. 운동은 체력이 아니라 정신력으로 하는 거라는 신화가 강요되던 시대, 국가대항 경기에서 웃음을 보이는 것이 금기시된 것은 당연하다.

1986년 아시안게임이 낳은 스포츠 영웅 중에 “라면만 먹고 뛰었다”고 알려진 임춘애 선수가 있다. 인터뷰 내용이 와전, 확대된 것으로 뒤늦게 밝혀지긴 했지만, 지독하게 어려운 여건을 딛고 일어나 헝그리 정신의 투혼으로 극적인 승리를 이루어내는 스토리에 열광한 당시 많은 이들의 욕망이 투영된 결과다. 모든 경기에는 배수의 진을 친 전쟁터 같은 비장감이 감돌았다. 웃음은 결과가 나온 뒤 메달 색깔에 따라 허락될 뿐이었다.

며칠 전 막을 내린 도쿄 올림픽에서 유독 눈에 들어온 것이 선수들의 밝은 웃음이었다. 태권도 이다빈 선수가 결승전에서 패한 뒤 승리한 세르비아 선수에게 활짝 웃어보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장면이 미담으로 회자되었다. 수영 황선우 선수와 높이뛰기 우상혁 선수가 메달권 진입과 상관없이 자기 기록과 싸우며 환호하는 장면이 참 보기 좋았고, 양궁 남자단체전 시상식 후 오진혁 선수가 은메달, 동메달을 딴 대만, 일본 선수들과 환하게 웃으며 함께 찍은 셀카 사진은 국제적으로 사랑받았다. 탁구, 배드민턴 등의 복식 경기에서 서로 실수를 격려하며 활짝 웃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그리고 여자배구.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너무나 밝게 웃으며 그 웃음의 에너지를 경기력으로 승화한 장면들을 잊지 못할 것이다.

4년, 아니 5년을 기다려 천신만고 끝에 참가한 올림픽 경기다. 전력을 쏟아도 부족한 마당에 웃으며 뛸 수는 없다. 하지만 전력을 쏟기 위해서라도 적절한 이완과 여유는 필요하다. 비등한 실력을 가진 선수들끼리 펼치는 박빙의 경쟁에서 승리하는 데에 정신력이 관건임은 물론이다. 다만 정말 필요한 것은 실력을 뛰어넘는 기괴한 정신력이 아니라 실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안정된 정신력이다. 선수들에게 당일의 투혼을 강요하기보다 평소의 투자를 아끼지 말 일이다. 그래야 뛰는 선수도, 보는 우리도 더 웃을 수 있을 것이다. 전 지구가 감염병으로 몸살을 앓는 가운데 어렵게 개최된 올림픽에서 소중한 웃음을 선사해준 선수들에게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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