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을 바라보며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송혁기의 책상물림]낙엽을 바라보며

비 내린 뒤 우수수 떨어진 낙엽이 거리에 쌓인다. 가을이 가는 풍경은 쓸쓸하면서 아름답다. 서거정은 뜨락 가득 떨어진 오동잎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에 차마 쓸지 못하겠다고 하였다. 스러져 가는 노년, 고운 가을 국화보다 떨어져 뒹구는 낙엽에 더 정이 가게 된 탓이다. 스님을 배웅하며 쓴 시에서는 “단풍잎 뜨락에 가득하더니 가을바람이 다 쓸어갔네. 가벼이 떨어지는 이파리처럼 스님은 어디로 떠나시는가”라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바람에 쓸려 날아가거나 흙과 섞여 돌아가면 그만이던 낙엽이, 아스팔트로 포장된 오늘의 도심에서는 누군가 쓸어 담아서 처리해야 하는 쓰레기로 전락했다. 낙엽의 낭만을 휴대폰 카메라에 담다가, 그 낙엽을 치우는 분들의 모습이 눈에 밟힌다. 낙엽으로 업무량이 폭증해서 질병이 악화된 환경미화원에 대해 재판부가 업무상 재해 인정 판결을 내렸다는 보도를 접하니 막연한 우려가 현실로 다가온다.

가을 정취도 느낄 겸 낙엽을 굳이 치우지 않는 건 어떨까? 하지만 도심의 낙엽은 보행을 불편하게 할 뿐 아니라 낙상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배수구를 막아 범람을 야기하기도 하고 오래 방치하면 유해물질이 낙엽에 붙어 환경 문제를 유발한다. 산성비 때문에 미생물이 사라져 흙에 떨어진 낙엽마저 해를 넘기도록 썩지 않는 것도 문제다. 낙엽 쓸어 모아 아궁이 불 지피던 시절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면, 낙엽을 처리하는 것은 우리가 공동으로 부담해야 할 숙제다.

낙엽을 치우는 수고도 크지만 수거된 낙엽을 소각하거나 매립하는 데에 드는 비용과 환경오염도 문제다. 그런 가운데 몇몇 지자체의 재활용 시도가 눈에 띈다. 부천시는 이천의 협동조합과 협약을 맺고 인삼농장에 낙엽 퇴비를 공급하고 있으며, 거제 자연휴양림에서는 청정낙엽을 지역 농가에 무상 제공하고 있다. 송파구 은행잎을 남이섬으로 옮겨 은행나무길을 조성한 것도 좋은 사례다. 제천시는 한 걸음 나아가 낙엽을 친환경 퇴비로 만들어 상품화에 나섰을 뿐 아니라, 시민들이 수거해 온 낙엽을 괜찮은 가격에 수매함으로써 거리 정화와 일자리 창출의 두 가지 효과를 동시에 내고 있다. 낙엽과 함께 살아갈 길을 찾아야 낙엽의 낭만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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