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없이 살 수 없다면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송혁기의 책상물림]말없이 살 수 없다면

공자가 주나라 태묘에 가서 쇠로 만든 동상을 보았는데, 그 입이 세 겹으로 꿰매어져 있었다. “경계할지어다. 말을 많이 하지 말라. 말이 많으면 실패가 많다.” 그 동상의 등에 새겨진 글귀다. 말 때문에 자신을 망치고 남을 그르치는 이들이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왔다. 묵재, 묵와, 묵헌, 묵암, 묵계, 묵옹…. 말없음을 뜻하는 묵(默)을 자신의 호로 삼은 이들이 그렇게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홍계희가 거실 이름을 ‘무언재(無言齋)’라 붙이고 오원에게 기문을 부탁했다. 오원은 오래 묵혀 두었다가 이렇게 권면했다. 사람에게 말은 매우 중요하다. 말하지 말아야 할 때 말하는 폐단뿐 아니라 말해야 할 때 말하지 않는 폐단도 크다. 공자가 민자건을 칭찬한 것은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적절한 때 이치에 맞는 말만 했기 때문이다. 말이 때와 이치에 늘 맞는 경지에 이르면 말없음을 굳이 지향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마음이다. 말은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것인데 마음은 다스리지 않은 채 말없음만 추구한다면 물의 근원은 넘치도록 놓아두고 지류만 틀어막는 꼴이다. 아무리 입을 막고 어금니를 깨물며 입을 꿰맨다 해도 결과는 허망할 수밖에 없다.

무언재는 공자가 “이제 나는 말이 없고자 한다”고 한 데에서 따온 이름이다. 보통 사람보다 오히려 많은 말을 했을 공자가 왜 이렇게 말했을까? 이미 자신의 모든 행동을 제자들에게 숨김없이 보여주고 있는 마당에 굳이 말까지 해서 가르칠 필요가 없다는 맥락에서 한 말이다. 한편으로 말을 하면 제자들이 말 자체에만 얽매여서 그 말이 흘러나오게 된 근원을 살피지 못할까 우려한 것이기도 하다.

말이 넘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지나치게 많은, 그러나 실은 매우 불완전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자신과 동떨어진 상황, 일면식도 없는 인물에 대해 우리는 참으로 성급하게 판단하고 쉽게 말을 쏟아내곤 한다. 왜 수천 년 동안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말없음을 지향하는 가치로 삼아 왔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늘 시의적절한 말만 하고 살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입을 틀어막고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내가 내뱉는 말이 어디에서 흘러나오는 것인지 살피려는 노력만큼은 멈추지 않겠다고 다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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