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훈
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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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의 경제수다방 정의당의 재창당을 위하여 매번 투표할 때면 누구를 찍을지, 어느 당을 찍을지 고민을 하게 된다. 나는 오랫동안 녹색당원이었다.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선택지가 거의 없다. 한동안 권영길에게 투표했고, 문재인에게는 두 번 투표했다. 지난번 대선은 고민을 많이 했는데, 결국 심상정에게 투표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서울시장은 권수정에, 정당은 녹색당에, 그리고 나머지는 전부 민주당을 찍었다. 국제 기준으로 나의 사상적 지향점은 생태 좌파로 비교적 단순하다. 녹색당이 힘을 못 쓰는 한국에서만 복잡하다. 흔히 우리나라에서는 보수와 진보로 진영을 나누는데, 이렇게 나누는 나라는 현재로서는 한국이 유일하다. 미국에서는 보수와 ‘리버럴’, 유럽에서는 좌우로 나눈다. 진보당의 조봉암이 사형당한 후 진보라는 말도 자유롭게 쓰기 어려웠던 나라다. 좌파는 볼 것도 없이 ‘친북’ 낙인이라서 좌파라는 말을 공개적으로 쓰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렇지만 진보는 국제적으로 통용되지 않는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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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의 경제수다방 권위적 신자유주의? MB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때 고위직 경제관료들인 ‘모피아’가 너무 강해지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자기들이 잘 관리할 수 있다”는 대답을 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총리실 소속으로 있던 기획예산처를 경제부처에 합치는 방식의 정부개편안을 만들던 시절의 일이다. 그 후 정권이 세 번이 지나가면서 “이 나라가 기재부의 나라냐”라는 얘기를 현직 총리가 언급할 정도로 경제부처의 권한이 강해졌다. 경제에 대해 나름 이해를 하고 있다는 MB도 경제 관료들을 통제하지 못했고, 이건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다. 한때 청와대 정책실장이 기재부 관료들을 견제하는 역할을 하려 했지만, 결국은 정책실장들이 먼저 뒤로 물러서게 되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공공연하게 ‘경제 원톱’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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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의 경제수다방 한덕수 총리 지명을 반대하는 이유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김기춘이 전격적으로 돌아왔다. 그때 박근혜의 시대라는 것을 절감했다. 한덕수가 총리 지명을 받게 될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딱 박근혜가 김기춘을 불러오던 순간이 머리에서 떠올랐다. 보수 정권은 과거 회귀적 인사를 하고는 했다. 요즘 공감 능력과 관련해서 한국 톱뉴스 1번을 연일 장식하는 이준석은 청년 보수를 대표하는 사람이다. 만약 낡고 낡은 우리의 헌법이 그에게 피선거권의 기여를 제약하지 않았다면 좋든 싫든, 윤석열의 시대는 없고, 그가 당선인의 자리에 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가 당 대표로 갈 때 그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분명히 국민의힘은 젊은 세대의 새로운 기운으로 대선을 치렀다. 그렇다면 첫 총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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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의 경제수다방 항산이야 항심이라 맹자가 “항산이야 항심이라”,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항상 산물, 즉 소득이 있어야 항상 같은 마음을 유지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소득이 항상 있지 않아도 마음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선비라고도 했다. 결국은 깨달음의 중요성을 얘기하는 구절이다. 경제가 중요하다고 할 때, 종종 이 구절이 인용된다. 문재인 정부의 시대는 가고, 이제 윤석열의 시대가 온다. 문재인 정부가 뭘 잘못했을까? 1인당 국민총생산을 살펴보니 2020년 기준으로 일본은 4만364달러, 한국은 4만1370달러, 한국이 추월했다. 2019년까지는 일본이 더 높았다. 우리가 흔히 쓰는 국민소득과 다른 점은, 해외 거주 한국인과 국내 외국인의 생산액을 넣을 것이냐, 뺄 것이냐, 그런 송금액에 대한 처리 방식이다. 생산 지표로는 문재인 시대, 한국이 일본을 넘어섰다. 한국 경제는 여전히 잘 나간다. 경제사에서는 한국 경제가 일본 경제를 추월하기 시작한 때로 문재인 정부를 기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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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의 경제수다방 젊은 내각, 30~40대 공기업 사장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정권 때 한 달 정도 파리에 머물렀다. 문화경제학 책을 쓸 준비를 하면서 최신 자료들을 찾아보던 시절이었다. 파리 10대학 법대 출신인 사르코지의 당선은 대학과 에콜의 경쟁 속에서 흐름이 변하는 순간이기는 했지만, 그는 보수 중에서도 더 보수라서 그렇게 관심을 갖지는 않았다. 그때 인상적으로 본 게 30대 장관들이었다. 국토생태부, 우리 식으로 말하면 환경부와 국토부를 통합한 부처의 장관이 1973년생인 나탈리 코시위스코모리제였다. 37세에 처음 각료가 되었다. 우리 식으로 치면 법무부 장관 후에 스포츠부 장관이 된 1976년생 라마 야드를 둘러싼 수많은 격론이 진행되었다. 이들보다는 약간 나이가 많지만 40대 환경부 장관으로 정치 격론을 끌고 다닌 샹탈 주아노도 사르코지 내각의 주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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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의 경제수다방 16세 임미경씨가 행복한 나라 1977년 9월9일, 당시 16세였던 임미경씨는 봉제공장에서 같이 일하던 친구들과 후배들을 ‘꼬드겨’ 농성 중인 작은 건물로 우여곡절 끝에 들어갔다. 경찰들은 그 건물을 둘러싸고 있었고, 임미경씨 동료들은 그 건물 안에 있던 노동교실의 폐쇄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었다. 그날 이후 임미경씨는 같이 갔던 가장 친한 친구를 다시 만나지 못했다. “미경이가 가자고 했어요”, 그렇게 경찰에서 친구를 주동자로 몰았다고 생각한 친구는 미안함 때문인지, 아니면 공포 혹은 환멸감 때문인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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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의 경제수다방 복고풍 신자유주의, 윤석열 김영삼이 집권하면서 ‘문민 정부’라는 이름을 썼고, 김대중은 ‘국민의 정부’라고 했다. 노무현은 ‘참여 정부’라고 불렀다. 짧은 두 단어지만, 자신들이 지향하는 시대적 가치를 담았던 이런 명명은 좋은 전통이라고 생각했다. 이 전통은 이명박의 집권과 함께 깨졌다. 박근혜도 자신의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촛불집회와 함께 집권에 성공한 문재인 역시 자신의 가치를 내걸지는 않았다. 안 그래도 너무 대통령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청와대의 힘이 지나치게 센 나라다. 언제부터인가 대선에서 이기면 그냥 자기 이름으로도 충분히 통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가치? 그런 것의 의미를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은 중시여겼고, 그 뒤의 대통령은 아닌 것 같다. 정권 말기, 청와대 수석이나 비서관들이 자기 전공분야도 아닌 곳에서 기관장 한다고 이력서를 내밀고, 청와대의 후임들의 전관예우로 이래저래 챙겨주는 것을 보면서, 문재인 정부는 좀 다를까 했던 약간의 환상마저 산산이 깨어져 나간다. 앞의 사람들은 문민, 국민, 참여, 이런 단어들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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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의 경제수다방 실물 경제의 시대가 돌아오는가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여전히 국민의 정부 초대 경제수석이었던 김태동일 것이다. 정말 세상 바뀌는 줄 알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전격적으로 교체되었다. 그의 동생이 지금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 후보로 청문회를 거친 김헌동이다. 김태동이 경제수석에서 밀려난 후, 국민의 정부 경제정책은 급격하게 보수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누가 경제수석인가, 이걸 보면 그 정권의 경제정책의 기본 방향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알 수 있다. 대통령 임기 초에는 주로 교수 등 개혁성 인사가 들어왔다가 정권의 힘이 빠지면 기획재정부 출신의 공무원이 파견되어서 그 자리를 채운다. 그때부터는 대통령의 경제개혁은 끝이 났고, 사고나 나지 않게 마무리하는 수순으로 간다고 보면 거의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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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의 경제수다방 팬데믹 롱테일과 고금리 시대 길게 이어진 팬데믹의 방역 국면이 서서히 종료 시점을 보이기 시작한다. 마스크를 완전히 벗는 것은 모든 것이 잘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내년 봄에나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겨울은 코로나 바이러스를 비롯해서 기존의 독감 바이러스들이 활성화되는 시간이다. 재난으로서의 팬데믹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특징은 주요 이벤트들이 사건 초기에 집중되는 태풍이나 지진과는 달리 재난 전 기간에 분산된다는 점이다. 코로나19는 기간도 워낙 길었지만, 후유증도 아주 길게 나타날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공식적으로 종식을 선언할 수 있을지, 아니면 아프리카 등 제3세계 한쪽에서 계속해 맹위를 떨치게 될지 아직은 불투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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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의 경제수다방 제2의 농지개혁을 위하여 윤석열은 국민의힘 입당 이후 첫 행보로 청년들을 만나서 “오래전부터 농사를 지어왔던 분들이 경자유전 원칙에만 너무 집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관련 법 규정이 농업의 비즈니스화를 다 막고 있다”고 덧붙였다. 마침 윤석열 장모는 물론 윤희숙, 심지어는 이준석까지 가족의 농지 보유 문제로 시끌시끌하다. 해당 지역의 전농 등 농민회 중심으로 농지 불법 보유에 대한 전수조사와 ‘제2의 농지개혁’에 대한 요구가 생겨났다. 한국 경제가 비교적 순탄하게 발전 과정을 밟을 수 있었던 요소 중 하나로 농지개혁이 중요하게 거론된다. ‘카우디요’라고 불리는 대토호들이 강력하게 존재하는 중남미 경제와 한국 경제의 큰 차이점이 출발 시점에서의 평등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농사짓는 사람만 농지를 보유하게 되는 소위 ‘경자유전’ 조항이 헌법에 명시적으로 들어간 것은 1987년 9차 개정헌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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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의 경제수다방 여가부에서 양성평등부로 “동일임금의날인 오늘, 우리는 여성도 동일한 노동에 대해서는 동일한 임금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환기해야 합니다. … 저희 아버지와 함께 저는 여성과 가족을 위한 행정부의 책무를 지지합니다.” 2017년 4월4일, 도널드 트럼프 정부 시절에 이방카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메시지다. 미국 여성은 백인 남성에 비해서 82% 수준의 임금을 받는다. 흑인 여성은 68% 그리고 라틴 여성은 62%의 임금을 받는다. 이방카가 인스타그램에 같이 올린 그래프의 내용이다. 이 인스타그램이 격론의 대상이 된 것은 트럼프 행정부가 과연 여성 임금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느냐는 내용 때문이다. 올해 미국 동일임금의날은 3월24일로 약간 앞으로 왔다. 조 바이든은 백악관 성명을 통해서 더 많은 노력과 함께 특히 코로나19 이후로 힘들어진 여성들의 상황에 대한 언급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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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의 경제수다방 맨날 도 닦으면 뭐해 나는 개인적으로는 지금 지지율 1위를 달리는 대선 주자 윤석열에게 별 특별한 감정이 없었다. 사법개혁이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말에도 별로 감정이 가지 않았고, 그렇다고 검찰을 지키는 것이 엄청나게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소송사회가 된 미국에서 변호인들이 과잉대표되는 것처럼, 한국도 대통령부터 라디오 시사방송의 패널들까지 모두 법조인이 하면서 생겨난 불균형이라고 생각한다. 국민 경제 대신 변호사의 시선이 더 중요해진 나라, 우리가 갈 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최근 그에게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윤석열이 한발 물러선 위치에서 입당한다, 안 한다, 오락가락 행보를 하더니, 급기야 ‘큰 정치’라는 도저히 알아듣지 못할 얘기까지 했다. 2009년에 대흥행을 거둔 영화 <전우치>의 한 대사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