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석훈
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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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의 경제수다방 난방비 문제와 에너지 대수선 겨울철 혹한이 계속되면서 집집마다 난방비 때문에 난리다. 우리 집도 10만원 정도 올라간 것 같다. 12월 난방비 고지서가 마침 정치적 논의가 폭발하는 설과 겹치면서 정치권 한가운데 논의가 되었다. 아주 정밀하게 내가 못했냐, 네가 못했냐, 그야말로 현미경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몇 원 아니 몇 전 단위까지 들여다보는 정치 논쟁이 되었다. 만약 총선이 1월이나 2월에 있었다면 이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이 벌써 나왔겠지만, 우리의 총선은 늘 4월이다. 조상들의 절기는 기가 막혀서, 2월4일 입춘이 지나면 봄의 기운이 시작된다. 꽃이 피기 시작하면 난방비 얘기는 다 잊혀져 간다. 수많은 총선을 보았지만, 난방비가 총선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못 봤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12월에 있던 대선에서도 난방비가 논란이 된 적이 없었고, 5월 대선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여름의 냉방도 마찬가지다. 만약 총선이 더운 8월이었다면 아마 지역 난방이 아니라 지역 ‘냉난방’ 개념이 벌써 자리 잡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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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의 경제수다방 안녕, 고마워, 인사와 감사 누군가를 만났을 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게 된다. 고마운 일이 생겼을 때에는 “고맙습니다”라고 감사를 하게 된다. 이 두 가지만 잘해도 일상생활에서 기본은 하게 된다. 간단하지만, 이걸 잘하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감정이 생기고,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생기면 인사를 피하게 된다. 싫어도 인사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고맙다고 말하는 것은 더더군다나 어렵다. 뭔가 잘되었을 때, 마치 내가 똑똑하고 잘나서 잘된 걸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인사와 감사, 내 삶에서 지키려고 하는 내 삶의 기본이다. 그거만 잘해도 큰 욕은 안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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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의 경제수다방 윤석열 정부, 밥그릇 걷어차기 문화 정책에서 가장 빈번하게 인용되는 단어는 ‘팔길이 원칙’이다. 너무 멀리 하지 않고, 너무 가깝게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지원은 하지만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한다. 그 반댓말은 ‘손바닥 원칙’이다. 문화를 자기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할 때 이렇게 표현한다. 힘을 가지면 모든 것을 장악하고 싶어지는 게 힘의 속성이기는 하지만, 그건 힘의 속성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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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의 경제수다방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치킨 500개를 까야 한다. 난 죽었다.” 이틀 후에 남자친구와 부산에 놀러가기로 되어 있던 어느 20대 여성이 너무 힘들다고 남긴 메시지를 읽고 나서 나는 가슴이 너무 아팠다. 올해 돌아가신 아버님에게는 죄송한 얘기지만, 아버님의 장례식장에서도 나는 이렇게 가슴이 아프지 않았다. 상주로서 행정적 일들을 처리하는 데 정신이 없어서, 감정이 생길 겨를이 없었다. 그렇지만 빵을 만들다가 사망한 어느 여성의 얘기는 경제학자로 살아온 나의 감정선에 ‘훅’ 들어왔다. 이게 뭐란 말인가? 그 사망 현장에서 다음날도 빵을 만들었다는 사실도 놀랐고, 빵 만들다가 죽은 노동자에게 빵을 가져다준 어처구니없을 정도의 무신경함에도 놀랐다. ‘어이 상실’이 아니라 ‘예의 상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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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의 경제수다방 대학 급식에 대하여 어렴풋한 1980년대 기억으로 처음 대학에 갔을 때 국밥이 450원 정도였던 것 같다. 그리고 몇 달 되지 않아서 500원으로 올랐다. 그것도 부담스러웠다. 당시 자판기 커피값이 100원이었는데, 두 끼 먹으면 커피값 한 잔만큼 더 내야 했었다. 우연히 갔던 고려대학교 학교식당의 장국밥은 400원이라서 뭔가 열심히 계산을 했던 기억이 있다. 1990년대에는 파리에서 학생 식당에서 두 끼를 먹었는데, 대략 500원 정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10장씩 학생증을 보여주고 샀었다. 그 비용에는 국가 보조가 있었다. 점심, 저녁 두 끼씩 먹으니까 나중에는 너무 지겨워졌지만, 그 돈으로 다른 데서 먹으려면 빅맥 외에는 대안이 없었다. 런던의 대학 식당에도 몇 번 갔었는데, 확실히 양은 프랑스보다 많기는 했지만, 채소도 적고, 맛도 그닥이었다. 영국 학생들은 프랑스 대학 식사가 아주 맛있는 거라고 했지만, 쉽게 수긍이 가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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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의 경제수다방 감시자는 누가 감시할 것인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책을 쓸 준비를 하던 시절, 교육방송의 ‘장학퀴즈’용 문제를 만드는 알바를 했다. 경제와 환경에 대한 문제들을 주로 냈다. 그러다 영화 <퀴즈쇼>를 보게 되었다. 영화는 NBC 방송국에서 1958년 발생한 퀴즈 스캔들을 다루고 있다. 연승을 하던 젊은 컬럼비아 대학의 찰스 반 도렌은 사실 방송국으로부터 질문을 미리 받았다. 이 사건을 파헤쳐서 결국 부정을 저지른 방송국과 출연진을 잡아낸 조사관인 리처드 굿윈은 나중에 케네디의 연설 담당관이 된다. 미국을 뒤흔든 이 스캔들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내가 놀랐던 것은 그게 감사원이나 정보기관이 아니라 미국 국회 소속 조사관이었다는 사실이었다. 국회가? 미국에서는 감사원, 정확히는 회계감사원이 국회 소속이라는 것을 영화를 보고 나서야 처음 알았다. 국가별로 감사원의 법률적 위상이 조금씩 다른데, 영국·미국이 국회 소속이고, 프랑스는 별도의 독립 기관이다. 한국은 헌법상 대통령 산하로 감사원이 설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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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의 경제수다방 반환경 시대와 환경 포기 지역 내가 직업적으로 환경 문제를 다루기 시작한 것은 1996년부터다. 정몽구가 한때 환경에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었고, 마침 그 시절에 생태경제학으로 학위를 마쳤다. 좌파로 살면서 과연 밥이나 먹고 살까, 걱정을 많이 했었다. 현대그룹이 잠시 환경에 관심을 가지면서 밥이나 먹고 사는 인생이 시작되었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 한국에 환경에 관심이 가장 높던 때가 그 시절이었던 것 같다. 다른 이유가 아니다. 1991년 낙동강 페놀 사건 당시, 환경에 대한 국민적 경각심이 지금보다 오히려 더 높았다. 두산그룹 회장이 그 사건으로 물러났고, 두산의 많은 임직원들이 책임을 지고 옷을 벗었다. 사실 따져보면 지금의 4대강에서 발생하는 식수원의 녹조 사건은 페놀 오염보다 몇 배는 더 위중하고, 여름마다 주기적으로 벌어지는 일이다. 만약 지금 낙동강 페놀 사건이 벌어졌다면? 4대강 사업이 그렇듯이, 대충 덮고 넘어갔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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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의 경제수다방 경제 ‘올드 보이’와 환경친화적 경제 나도 어느덧 50대 중반이 되었다. 김영삼 시절부터 사회활동을 시작하면서 여러 번의 정권교체를 보았다. 아주 개인적인 단상이라면, 환경에 관해 가장 적극적인 대통령은 김영삼이었던 것 같다. 21세기를 맞으면서 ‘비전 21’을 정부 차원에서 마련했는데, 20세기 후반인 시대상을 감안하면 상당히 적극적이었다. 삼성도 지구환경연구소라는 환경 관련 연구기관을 운영했고, 이건 현대나 LG도 마찬가지였다. 1991년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은 아마 한국 사회가 환경에 대해 가장 민감하게 반응했던 단일 사안일 것이다. 사회적 분위기도 공해 문제에 대해 아주 적극적이었다. 기억할 만한 사건은 1997년 수질이 급격히 악화된 시화호에 해수 유통을 결정한 순간이 아닐까 싶다. 지난 세기의 얘기지만, 김영삼은 나름대로 환경 문제를 풀려고 고민하기는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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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의 경제수다방 정의당의 재창당을 위하여 매번 투표할 때면 누구를 찍을지, 어느 당을 찍을지 고민을 하게 된다. 나는 오랫동안 녹색당원이었다.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선택지가 거의 없다. 한동안 권영길에게 투표했고, 문재인에게는 두 번 투표했다. 지난번 대선은 고민을 많이 했는데, 결국 심상정에게 투표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서울시장은 권수정에, 정당은 녹색당에, 그리고 나머지는 전부 민주당을 찍었다. 국제 기준으로 나의 사상적 지향점은 생태 좌파로 비교적 단순하다. 녹색당이 힘을 못 쓰는 한국에서만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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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의 경제수다방 권위적 신자유주의? MB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때 고위직 경제관료들인 ‘모피아’가 너무 강해지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자기들이 잘 관리할 수 있다”는 대답을 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총리실 소속으로 있던 기획예산처를 경제부처에 합치는 방식의 정부개편안을 만들던 시절의 일이다. 그 후 정권이 세 번이 지나가면서 “이 나라가 기재부의 나라냐”라는 얘기를 현직 총리가 언급할 정도로 경제부처의 권한이 강해졌다. 경제에 대해 나름 이해를 하고 있다는 MB도 경제 관료들을 통제하지 못했고, 이건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다. 한때 청와대 정책실장이 기재부 관료들을 견제하는 역할을 하려 했지만, 결국은 정책실장들이 먼저 뒤로 물러서게 되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공공연하게 ‘경제 원톱’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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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의 경제수다방 한덕수 총리 지명을 반대하는 이유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김기춘이 전격적으로 돌아왔다. 그때 박근혜의 시대라는 것을 절감했다. 한덕수가 총리 지명을 받게 될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딱 박근혜가 김기춘을 불러오던 순간이 머리에서 떠올랐다. 보수 정권은 과거 회귀적 인사를 하고는 했다. 요즘 공감 능력과 관련해서 한국 톱뉴스 1번을 연일 장식하는 이준석은 청년 보수를 대표하는 사람이다. 만약 낡고 낡은 우리의 헌법이 그에게 피선거권의 기여를 제약하지 않았다면 좋든 싫든, 윤석열의 시대는 없고, 그가 당선인의 자리에 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가 당 대표로 갈 때 그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분명히 국민의힘은 젊은 세대의 새로운 기운으로 대선을 치렀다. 그렇다면 첫 총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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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의 경제수다방 항산이야 항심이라 맹자가 “항산이야 항심이라”,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항상 산물, 즉 소득이 있어야 항상 같은 마음을 유지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소득이 항상 있지 않아도 마음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선비라고도 했다. 결국은 깨달음의 중요성을 얘기하는 구절이다. 경제가 중요하다고 할 때, 종종 이 구절이 인용된다. 문재인 정부의 시대는 가고, 이제 윤석열의 시대가 온다. 문재인 정부가 뭘 잘못했을까? 1인당 국민총생산을 살펴보니 2020년 기준으로 일본은 4만364달러, 한국은 4만1370달러, 한국이 추월했다. 2019년까지는 일본이 더 높았다. 우리가 흔히 쓰는 국민소득과 다른 점은, 해외 거주 한국인과 국내 외국인의 생산액을 넣을 것이냐, 뺄 것이냐, 그런 송금액에 대한 처리 방식이다. 생산 지표로는 문재인 시대, 한국이 일본을 넘어섰다. 한국 경제는 여전히 잘 나간다. 경제사에서는 한국 경제가 일본 경제를 추월하기 시작한 때로 문재인 정부를 기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