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물 경제의 시대가 돌아오는가

우석훈 성결대 교수·경제학자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여전히 국민의 정부 초대 경제수석이었던 김태동일 것이다. 정말 세상 바뀌는 줄 알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전격적으로 교체되었다. 그의 동생이 지금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 후보로 청문회를 거친 김헌동이다. 김태동이 경제수석에서 밀려난 후, 국민의 정부 경제정책은 급격하게 보수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누가 경제수석인가, 이걸 보면 그 정권의 경제정책의 기본 방향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알 수 있다. 대통령 임기 초에는 주로 교수 등 개혁성 인사가 들어왔다가 정권의 힘이 빠지면 기획재정부 출신의 공무원이 파견되어서 그 자리를 채운다. 그때부터는 대통령의 경제개혁은 끝이 났고, 사고나 나지 않게 마무리하는 수순으로 간다고 보면 거의 맞다.

우석훈 성결대 교수·경제학자

우석훈 성결대 교수·경제학자

박근혜 정권의 마지막 경제수석인 강석훈도 상당히 인상적인 인사였다. 국회의원에 출마하며 대학교에 휴직이 아니라 사표 내고 사직을 하면서, 적당히 하다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겠다는 많은 학자들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어서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그랬던 그도 촛불집회와 함께 비운의 경제수석이 되었다.

임기 6개월을 남긴 문재인 정부에서 전 특허청장인 박원주를 경제수석으로 임명하였다. 이미 여야 대선 주자 경선까지 끝나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는 그쪽으로 옮겨간 상황이다. 청와대 현실은 윤석열 캠프의 본부장을 몇명이 하느냐, 누가 할 거냐, 이런 것에 비하면 정말 아무 뉴스도 아니다. 굳이 의미를 두자면, 산업통상 라인에서 경제수석을 맡게 된 것이고, 이게 처음이라는 사실이다. 이건 분명히 미묘하지만 분명한 변화다.

박정희 시절에는 흔히 이피비(EPB)라고 불렀던 경제기획원과 금융을 담당한 재정라인이 서로를 견제했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과 함께 한국식 계획경제의 유물인 경제기획원이 사라지면서, 나름 실물을 챙기던 소위 ‘기획라인’이 사라지게 되었다. 여기에 또 하나 생겨난 변화가 국제통화기금(IMF) 경제 위기 등을 거치면서 통상산업부의 산업정책이 대거 약화되게 된 것이다. 신자유주의 시각에서 시장 패러다임이 강화되고 정부가 자의 반 타의 반, 산업정책을 포기했다.

외환위기 이후 재정·금융만 중시
실물 경제 경시 풍조는 강해져
산업라인 경제수석 취임 계기로
실물 경제 중요성 새롭게 인식해
패러다임 전환 생겨나길 기대

세계화가 강화되면서 ‘글로벌 가치 체인(GVC)’이 강화되고, 한 푼이라도 싸게 만들 수 있게 하기 위해서 공장이 전 세계로 흩어지고, 부품 시장도 세계적으로 연결되게 되었다. 이렇게 하면 최종 제품의 가격이 낮아지는 장점이 있기는 하지만, 일본 반도체 사태나 이번에 벌어진 요소수 사태와 같은 특수 상황에서는 꼼짝 못하게 된다. 좀 더 위로 올라가면 해운 운송에서도 유사한 일이 벌어졌고, 코로나19 국면에서 수출에 막대한 타격을 받았다. 금융경제나 거시경제만 보던 사람들은 장부에 수치가 드러나는 순간에만 관심을 갖는데, 수치가 눈에 보이는 순간에는 이미 파산하고 법정 절차로 갈 것인지, 외부의 인수자를 찾을지, 막상 정책적으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더 위로 올라가면 조선 산업이 과잉 생산으로 들어가고,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 해외 플랜트로 몰려 나갈 때에도 사실 정부는 민간이 하는 일이라고 그냥 수수방관했었다.

외환위기 이후로 경제는 재정 아니면 금융이라고 하는 시각이 강해졌고, 실물은 그냥 알아서 돌아갈 것이라는 실물 경시 풍조가 강했다. “공장 얘기는 그만”, 그렇게 폄하하는 분위기였다. 그렇지만 실물도 그냥 내버려 둔다고 알아서 조정되는 그런 것은 아니다. 개별 기업이 예측하기 어려운 구조적 위기가 존재하고, 협회 차원에서 자율적으로 하기에는 투자 금액 등 벅찬 것들이 많다.

한국 경제가 이미 거둔 성과를 바탕으로 한 단계 더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역시 한국의 강점이었던 각종 산업 등 실물경제의 성과가 더욱 높아져야 한다. 지난 20년 동안 금융을 포함한 거시경제와 복지 두 가지가 경제의 거의 대부분인 것처럼 얘기했지만, 국민 경제에서 이 밑을 받치는 디딤발 같은 것은 산업으로 대표되는 실물경제다. 게다가 한국 산업은 많은 분야가 독과점 형태라서 누군가 조율을 하느냐 마느냐, 어떻게 하느냐가 장기적 성과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실물경제에는 정형화되지 않는 많은 상황 변수들이 개입하고, 세계 소비자들의 복잡한 취향 변화의 영향도 많이 받는다. 재정 변수나 주가 다루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지식과 경험이 필요하다.

임기 6개월 남은 산업라인의 경제수석이 무슨 엄청난 일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아마 요소수 사태가 아니었다면, 이런 파격은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정부가 산업정책을 비롯한 실물경제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는 패러다임 전환이 생겨났으면 한다. 우리는 너무 오래 실물경제를 방기하고 무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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