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고풍 신자유주의, 윤석열

우석훈 성결대 교수·경제학자

김영삼이 집권하면서 ‘문민 정부’라는 이름을 썼고, 김대중은 ‘국민의 정부’라고 했다. 노무현은 ‘참여 정부’라고 불렀다. 짧은 두 단어지만, 자신들이 지향하는 시대적 가치를 담았던 이런 명명은 좋은 전통이라고 생각했다. 이 전통은 이명박의 집권과 함께 깨졌다. 박근혜도 자신의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촛불집회와 함께 집권에 성공한 문재인 역시 자신의 가치를 내걸지는 않았다.

우석훈 성결대 교수·경제학자

우석훈 성결대 교수·경제학자

안 그래도 너무 대통령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청와대의 힘이 지나치게 센 나라다. 언제부터인가 대선에서 이기면 그냥 자기 이름으로도 충분히 통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가치? 그런 것의 의미를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은 중시여겼고, 그 뒤의 대통령은 아닌 것 같다. 정권 말기, 청와대 수석이나 비서관들이 자기 전공분야도 아닌 곳에서 기관장 한다고 이력서를 내밀고, 청와대의 후임들의 전관예우로 이래저래 챙겨주는 것을 보면서, 문재인 정부는 좀 다를까 했던 약간의 환상마저 산산이 깨어져 나간다. 앞의 사람들은 문민, 국민, 참여, 이런 단어들을 남겼다.

‘문재인’ 정부는 과연 무엇을 남길 것인가? 세상 인심은 냉혹하다. ‘공정’, 이 한 단어가 남을 것 같다. “공정하지 못했던 정부”, 그런 의미다. 안타깝다. 뭐라도 좀 방어를 해주고 싶지만, 전직 청와대 직원들이 임기 말에 사방으로 자기 자리 챙기러 다니는 걸 눈앞에서 보면, 공정하지 못한 정권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통령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집권이 결국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이라는 인상을 그를 따랐던 사람들이 온몸으로 세상에 보여준다. 위에서 뭐라고 얘기하든, 한국의 많은 청년들은 ‘불공정’으로 문재인 시대를 기억할 것 같다. 전직 청와대 간부들의 ‘한 자리’ 행렬을 보면서 아래에서도 불공정, 위에서도 불공정, 그렇게 평가받아도 나중에 할 말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석열 경제는 일본 패권주의와
월가식 효율주의 적당히 섞어놔
이 시대에 그게 맞을지는 의문시
선거 뒤 복고풍 역사논쟁만 남고
결국 퇴행의 길 걷게 될 것이다

지나간 시대는 그렇다고 하자. 지금 유력 대선 후보 두 사람이 만들고 싶은 세상은 어떤 것일까. 비주류를 별로 반겨하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 이재명의 세상은 아주 거친 도전에 부딪힐 것이다. 이회창이 대선에서 ‘메인 스트림’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특정 학교와 지배 계급의 위치, 이런 걸 포괄하는 한국식 자본주의의 주류라는 의미였던 걸로 이해한다. 그 대선에서는 비주류 중의 비주류인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었다. 어떻게 보면 이번 대선 역시 그때랑 비슷하게 전형적인 주류와 전형적인 비주류의 충돌이 될 것 같다. 거칠고 종잡기 어렵지만능력 하나로 살아남은 사람과 직선적이고 남성적인 주류 중의 주류, ‘칼잡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메인 스트림의 대결이다.

이재명은 주류 중심의 한국에서는 보기 어려운 스타일이다. 그렇다면 윤석열은? 당사자는 본 적이 없지만, 그 부친에게 수업을 들었던 적이 있다. 매우 보수적인 사람이지만 “니들이 데모하는 게 이해는 간다”는 따스한 얘기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따뜻한 보수’라는 단어를 볼 때마다 나는 늘 그분을 떠올렸다. 그렇다면 윤석열도 따뜻한가? 다른 건 모르겠는데, 그가 단편적으로 보여준 경제에 대한 인식만을 보면 따뜻하다고 느끼기는 어렵다. 열심히 일하고, 최선을 다 해서 성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그런 세상을 이상형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노동시간을 억지로 단축할 필요는 없고, 최저임금제는 없앨 수 있으면 없애고 싶은 비효율적인 제도라는 게 그가 한 얘기 아니겠나 싶다. 종부세는 그가 만약 집권하면 많이 수정되고, 변화하게 될 것 같다.

대선이 패러다임 사이의 충돌이라고 보면, 윤석열의 경제는 ‘복고풍 신자유주의’ 정도의 이름으로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신자유주의야 워낙 뻔한 개념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로 많은 나라의 경제는 이념 통합형으로 전개되는 중이라서 신자유주의라고 편하게 분석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윤석열의 경제는 복고풍이다. 이 시대에 과연 그게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가 단편적으로 보여준 경제관을 보면서 복고풍 신자유주의라는 개념이 떠올랐다. 마침 그의 캠프발 이승만, 김구 논쟁이 터져나왔다. 아마 김종인이 독일식 사민주의를 꿈꾼다면 윤석열은 일본식 패권정치와 월가식 효율주의가 적당히 섞인 복고풍 신자유주의를 꿈꾸는 것 같다.

작은 소망이 있다면, 유력한 후보들이 우리도 알아먹을 수 있는 짧은 단어로 자신들이 집권하면 만들고 싶은 정부의 이름을 제시하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 혹은 ‘이재명 정부’, 이런 이름은 안 보고 싶다. 변증법이라는 오래된 단어를 꺼낸다면, 서로 다른 가치가 충돌하면서도 서로 조금씩 조절해서 더 나은 가치를 만드는 것, 그게 발전하는 길 아닌가 싶다. 지금처럼 뉴라이트도 아닌 극우파들과 선거를 치르면 복고풍 역사논쟁만 남고, 결국 퇴행의 길을 걷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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