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적 신자유주의?

우석훈 성결대 교수·경제학자

MB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때 고위직 경제관료들인 ‘모피아’가 너무 강해지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자기들이 잘 관리할 수 있다”는 대답을 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총리실 소속으로 있던 기획예산처를 경제부처에 합치는 방식의 정부개편안을 만들던 시절의 일이다. 그 후 정권이 세 번이 지나가면서 “이 나라가 기재부의 나라냐”라는 얘기를 현직 총리가 언급할 정도로 경제부처의 권한이 강해졌다. 경제에 대해 나름 이해를 하고 있다는 MB도 경제 관료들을 통제하지 못했고, 이건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다. 한때 청와대 정책실장이 기재부 관료들을 견제하는 역할을 하려 했지만, 결국은 정책실장들이 먼저 뒤로 물러서게 되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공공연하게 ‘경제 원톱’이라고 했다.

재정준칙으로 경제부총리 큰 힘

우석훈 성결대 교수·경제학자

우석훈 성결대 교수·경제학자

부동산 가격 폭등 등 경제실정이 빌미가 되어 정권이 바뀌었고, 새로운 정권에서는 어떤 변화가 있을지 궁금해서 안철수가 위원장 역할을 한 인수위의 최종 보고서를 살펴봤다. 보통 인수위원장의 가장 큰 역할은 도저히 지킬 수 없는 공약을 없애는 부담을 대신 짊어지는 것이라고들 한다. 인수위 시절에 밑그림을 그리는 정부조직 개편이 이번에 빠진 것은 여성가족부 폐지의 정치적 부담을 뒤로 넘긴 것 아닌가 한다.

“아이고, 안 선생!”,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은 정보기술(IT)과 공직자 인력 삭감과 관련된 항목이 과도할 정도로 부각되어 있어서 그렇다. 산업통상자원부 정책은 물론이고 심지어 교육부의 ‘100만 디지털 인재 양성’과 초등 전일제 학교 운영이 연결되는 것은 과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교육격차 해소 등 각 부문에서 AI가 다 해준다는 얘기들을 보면서 “아이고, 안 선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공기업 등 공공부문에 대한 적대감도 굉장히 강한 보고서였다. 인력 감축을 성과로 평가해서 일단 사람을 줄이는 것을 기관 평가의 잣대로 삼겠다는 얘기다. 사업 기관은 예산과 인력을 줄이고, 규제 기관이 하는 일은 최소로 축소하겠다는 게 보고서에 면면히 흐르는 정신이다. “아이고, 안 선생!”, 이렇게 공무원과 공직자를 싫어하고, 공기업을 혐오하는데, 왜 굳이 그는 대통령이 되고 싶어 했을까? 그런 의문이 생겼다. 11번 항목에 디지털플랫폼정부는 결국은 데이터베이스(DB) 문제인데, 이걸 ‘소통’ 항목 1번에 넣은 것도 역시 안철수 영향이 아닐까 싶다. DB만 잘 만들면 소통은 알아서 되나? 산업 항목으로 갈 일이다.

총리와 함께 ‘밀실 경제행정’ 강화

안랩의 ‘안철수 선생’의 영향을 제외하면 원전과 경제부총리의 약진, 두 가지 특징이 보인다. 원전이야 윤석열을 지금의 윤석열로 만든 대표 사안이라, 좋든 싫든 윤석열 브랜드다. 최우선 3번 사업이다. 이건 청와대 아니 ‘용산’이 직접 챙길 것 같다. 5번 사업은 경제부총리 사업이다. 설명은 복잡한데 문재인 정권에서 논란이 되었던 ‘재정준칙’을 도입한다는 말이다. MB 이전이었다면 이 일은 기획예산처 일이라서 형식적으로는 총리가 주관하는 일이다. 지금은 경제부총리가 경제 사업도 하고, 예산 배분도 직접 하고, 무엇보다 예산과 성과 평가를 통해서 공기업 등 공공부문 관리를 직접 한다. 기재부 장관인 경제부총리가 예산 삭감과 인력관리를 무기로 공공부문을 감축한다는 말이다. 안 그래도 강한 경제부총리에게 더 많은 실권을 몰아주는 게 재정준칙의 행정적 효과다.

이렇게 놓고 보면 왜 한덕수가 총리가 되어야 했는지 좀 이해가 된다. 원전 말고는 그냥 경제부총리에게 맡기겠다는 것인데, 여기에 손발을 맞춰줄 모피아 총리가 꼭 필요했을 것이다. 작은 정부로의 전환과 맞춤형 복지를 통한 최소 복지, 민영화, 이런 게 전형적인 신자유주의다. 국회는 물론이고 복지와 교육 등 사회부처를 경제부처가 누르면서 ‘밀실 행정’으로 가게 되는 경제 패권주의, 과정은 필요 없고 결론만 도출하는 경제 운용, 그게 권위주의 방식의 경제 운용이다. 한때 박근혜도 얘기한 경제민주화는 안철수 보고서에서는 흔적도 찾아보기 어렵다. 인수위 보고서대로 간다면, 경제부총리가 재정준칙과 구조조정이라는 명목으로 국정을 총괄하고, 총리가 그걸 뒷받침하는 ‘권위적 신자유주의’로 가게 될 것이다. 대통령은 사법과 원전, 딱 두 가지만 챙길 것이다. 총리, 경제부총리와 함께 ‘밀실 경제 행정’이 강화될 것이다.

보고서 자체로서 인수위 보고서의 품질은 좀 낮다. 102번에 ‘2030 세계박람회 유치’가 들어가 있는데,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결국 부산 지역사업인데 이게 국정과제로 들어갈 일인가 싶었다. 77번의 ‘디지털경제 패권국가 실현’도 누가 좀 걸러냈어야 하는 낯뜨거운 표현이다. 외국인들도 볼 보고서인데 “내가 패권국가가 되겠다”, 이런 말은 국격에 안 맞는다.이런 품질 관리 실패가 수두룩하다.


Today`s HOT
UCLA 캠퍼스 쓰레기 치우는 인부들 호주 시드니 대학교 이-팔 맞불 시위 갱단 무법천지 아이티, 집 떠나는 주민들 폭우로 주민 대피령 내려진 텍사스주
불타는 해리포터 성 해리슨 튤립 축제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올림픽 앞둔 프랑스 노동절 시위
인도 카사라, 마른땅 위 우물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노동자의 날 집회 경찰과 충돌한 이스탄불 노동절 집회 시위대 케냐 유명 사파리 관광지 폭우로 침수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