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의 일기 (1)

박구용 전남대·광주시민자유대학 교수

능력보다 승부욕만 큰 꾼들에겐
자기편 대장을 태양으로 섬기며
자기 먹을 것을 챙기는 게 정치

태양 나폴레옹에 축전을 보낸다
“태양은 아침에 뜨는 별일 뿐이다”

동물농장이다. 들어가고 싶지 않다. 바깥에서 서성인다. 바깥이 없다. 바깥엔 또 다른 동물농장이다. 벌써 동물농장 안이다. 비극이다. 야생의 뻔뻔함이 판쳐서가 아니다. 싸움을 피할 수 없어서다.

박구용 전남대·광주시민자유대학 교수

박구용 전남대·광주시민자유대학 교수

동물농장의 이념은 ‘동물주의’다.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나쁘다!’ (반)혁명을 이끈 동물들의 자랑이다. 인간은 적이다. 고통의 뿌리란다. 몰아내면 고통이 사라질 거란다. 발가벗은 공정과 상식으로 농장을 통치할 것이다.

“그것이 일어나도록 내버려 두지 마라. 그것은 당신에게 달려 있다.” 오웰의 말이다. ‘지금 여기’에 그것이 일어났다. 무능했고 무기력했다. 비장하게 반성하는 이, 철저하게 계산하는 자들 천지다. 나는 그냥 멈춘다. 그래! 다시 한 번, 싸워보자!

악을 줄이면 선이 늘어날까? 그렇다. 아주 조금. 그리고 곧바로 다른 악이 자란다. 자연스레 선악의 저편을 향한 욕망이 생긴다. 물론 동물농장에서 누릴 만한 선악의 저편 세계는 좁고 얇다. 저편은 아주 잠깐, 깜짝 순간에만 경험할 수 있다. 놀이의 세계, 예술의 세계에서.

무능에 대한 반성은 무의미하다. 멈춰서 ‘할 수 있다’를 되뇌며 잠시 딴짓으로 열을 식히면 족하다. 마침 여기저기서 열리는 테니스 동호인 생활체육대회에 참여한다. 적게는 100팀에서 많게는 200팀이 겨루는 경기는 하루 종일 이어진다. 동호인은 복식 경기를 하니 파트너가 중요하다.

파트너는 일방적으로 선택할 수 없다. 서로 통해야 한다. 선택과 결의의 기준은 두 가지다. ①서로 힘을 모아 승리할 수 있는 경기력, ②서로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친밀성이다. 둘 다 가능한 파트너가 최상이다. 만약 하나만 가능하다면 무엇이 우선일까?

테니스 대회에 참여하는 태도에 따라 우선성은 달라진다. 테니스 경기가 다른 수단과 방법으로 하는 일종의 전쟁이고 이기는 것이 목적이라면 ①이 우선이다. 반면 경기가 유희와 놀이에 극적 긴장감을 곁들인 게임이라면 ②가 먼저다. 어떤 것이 먼저든 빛과 그림자가 있다.

①에 우선성을 두면 대체로 좋은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도 높아진다. 다만 잘못될 경우 경기를 하는 동안 상대편만이 아니라 파트너와도 싸워야 한다. 파트너 눈치를 보거나 그의 핀잔이 걱정되는 순간 경기는 엉망이 된다. ①에 배타적 우선성을 부여한 선수에게 가장 테니스 실력이 모자란 사람은 언제나 파트너다. 파트너를 패배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떠벌린다. 적과 동지 사이는 종이 한 장의 간격보다 좁아진다. 이들에게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다. “친구들이여, 친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네!”

②에 우선성을 두면 빠르게 높은 성적을 올리기 어렵다. 파트너와의 동행이 다음, 그다음 경기로 이어지기 어렵다. 좋은 친구는 늘지만 잘나가는 친구는 멀어지기 쉽다. <호모 루덴스>의 요한 하위징아에 따르면 놀이로서 경기는 경쟁의 재현이거나 재현의 경쟁이다. 경쟁 없는 놀이는 재미조차 없다. “적들이여, 적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네!” 동물농장의 돼지 친구들에게 니체의 말을 전한다.

사냥을 함께하는 친구, 전쟁을 함께하는 친구는 생명의 동지다. 그만큼 끈끈하고 절절하다. 사냥과 전쟁은 이제 흔치 않다. 그 자리에 스포츠 게임과 정치적 경쟁이 들어선다. 그런데 실제로 스포츠마저 놀이와 게임이 아닌 사냥과 전쟁이 되면 친구는 줄다가 사라진다. 파트너조차 적으로 만들어 동물농장에서 추방한다.

정치는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는 전쟁이 된 지 오래다. 정의와 사랑이 부딪칠 때는 그래도 사랑을 선택하라던 <돈키호테>의 한 조각 낭만도 남아 있지 않다. 선거가 끝난 후에도 상대편에게 상대할 능력을 잘라 내려고 기를 쓴다. 경기력은 부족한데 이기고 싶은 욕망만 큰 선수(꾼)들의 특성이다. 이들에게 정치란 자기편 대장을 태양으로 섬기며 자기 먹을 것을 챙기는 행위다.

동물농장의 지배자 계급인 돼지들은 어느 순간 인간처럼 옷을 입고, 인간처럼 걸으며, 인간처럼 신문을 읽을 것이다. 동물주의는 빠르게 악질 인간주의로 되돌아간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는 돼지들의 강령은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로 이미 변했다. 돼지 나폴레옹이 자기를 태양처럼 섬기는 돼지들을 파트너로 선택한 동물농장에서 곧 파티가 열린다. 저들의 태양 나폴레옹, 육즙이 흘러나오는 그에게 <월든>에서 나오는 소로의 말로 축전을 보낸다. “태양은 아침에 뜨는 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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