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여전히 선거 중

박구용 전남대·광주시민자유대학 교수

지금은 합류의 시점인 것 같은데
대통령·여당은 아직도 권력투쟁
뿌리 뽑힌 당대표는 편 모으고
국정동력 상실한 대통령은 대구로

가야 할 길서 점점 멀어지는 대통령

두 번의 선거로 권력을 독점한 대통령. 그만큼 생활세계의 가치를 키워야 할 무서운 책무가 뒤따른다. 그런데 그를 선택했던 시민들조차 그의 업무수행에 싸늘해졌다. 국정지지가 곤두박질친다. 국정 방향이 없으니 지지할 국정도 없는 셈이다. 더구나 겪어야 하는 재난보다 재난을 처리하는 대통령의 능력과 태도가 더 큰 재난처럼 보인다.

박구용 전남대·광주시민자유대학 교수

박구용 전남대·광주시민자유대학 교수

늪에서 빠져나올 출구는 하나다. 국정 방향을 뚜렷하게 제시하고, 작용과 부작용을 점검한 정책을 수행하고, 정책의도와 상관없이 결과에 대해 무한책임을 감수하는 정치를 하면 된다. 이런 정치가 지속되면 적어도 그에게 투표했던 수보다 많은 시민들이 태도를 바꿀 것이다.

태도와 선택은 다를 수 있다. 한 사람의 정치적 태도는 의제와 분위기에 따라 수시로 변한다. 반면 대부분의 사람은 평생 한쪽에 투표를 한다.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우리 편의 승리가 우선이다. 편 바꾸기는 요단강 건너기만큼 어렵다. 편 가르기는 처음 한두 번의 투표행위 전후로 이루어진다. 편 가르기의 핵심 기준은 사회·경제적 이해관계보다 문화·윤리적 지향성이다. 정치적 선택에 따른 손익계산에 능숙한 사람은 비교적 큰 부자들뿐이다.

사회·경제적 약자 계층이 왜 부자와 자본 친화적 정당에 투표하는지 묻는 이들이 많다. 답은 간단하다. 사회·경제적 약자일수록 경제적 손익관계에 따라 투표하지 않아서다. 지켜야 할 돈, 불려야 할 돈이 많지 않은 사람에겐 돈이 선택의 기준이 아니다. 약자일수록 지켜야 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도덕적 자존심이다.

돈은 조금 잃더라도 자존심까지 잃으면 안 된다. 자존심을 잃으면 다 잃는다. 자존심은 스스로 자기를 존중하는 감정이다. 자존심은 우선 내면의 심리적 보호 장치이다. 하지만 자존심은 타인으로부터 세심한 인정을 받아야만 유지된다. 독일 철학자 헤겔의 말처럼 나는 타인을 자기 자신이 인정되기 바라는 바대로 인정해야 한다. 자존심이 조금이라도 무시되면 약자일수록 심한 상처를 받는다.

이상 국가에서 모든 시민은 서로를 자유로운 인격체로 인정해야만 한다. 하지만 이런 이상은 진공상태에서만 가능하다. 현실 국가에서 우리는 각자에게 익숙한 문화·윤리적 가치체계를 가지고 다른 가치체계를 가진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굴복시키려고 든다. 특히 사회가 다원화되면 될수록 무시의 욕망과 이를 실현하거나 극복하려는 인정투쟁은 격화된다. 최근 들어 우리 정치도 인정투쟁의 한복판으로 깊숙이 뛰어들었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근간으로 시작된 현대사회의 정치는 사회와 경제체계를 둘러싼 프레임 전쟁으로 진영을 갈랐다. 시장과 자본의 자유 경쟁을 우선시하는 진영과 사회복지와 시민연대를 우선시하는 진영, 한마디로 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 진영 사이의 대결이 정치의 골격이었다. 겉으로 보면 두 진영은 여전히 견고한 것처럼 보인다. 특히 대통령제를 택한 나라들의 경우 두 진영의 선거 프레임은 경제 중심으로 구성된다. 하지만 유권자의 관심은 이미 다른 곳에 있다.

정치적 투쟁은 더 이상 경제적 손익관계 싸움이 아니라 자존심을 건 인정투쟁이다. 자존심을 건 인정투쟁은 자신에게 피해가 더 크더라도 상대 측에 복수를 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런 인정투쟁은 주류 경제학에서 보면 매우 비합리적 행동이다. 하지만 합리성은 도구적 이성이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과 감성, 정신과 신체가 중첩적으로 교차하며 축적한다. 선거 중인 정치인은 자존심을 건 인정투쟁을 자기편에 유리하도록 이끌기 위해 심리전을 펼칠 수 있다. 하지만 선거가 끝났고 더구나 자기편이 승리했다면 정치인은 인정투쟁을 심리에서 권리의 지평으로 옮겨야 한다. ‘어차피 자기편’의 정치가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보편적 권리의 확장에 온 힘을 쏟아야 한다.

문명의 뿌리인 강의 흐름을 따라가 보자. 모든 강은 흩어졌다 합류하길 반복한다. 어딜 봐도 바로 선 혹은 뒤집어진 y자 모형이다. 흩어진 강 사이에서 도시 문명이 시작되었고 다시 합류한 강에서 도시의 하수가 정화되어왔다. 지금은 합류의 시점이다. 그런데 대통령과 여당은 아직도 당 안팎의 권력투쟁에 혈안이다. 당에서 뿌리가 뽑힌 당대표는 전국을 배회하며 편 모으기를 한다. 국정동력을 상실한 대통령은 서문시장으로 달려간다. “대구의 아들 윤석열”이라고 적힌 팻말을 보며 환하게 웃는다. 대통령이 가야 할 길에서 점점 더 멀어지는 대통령, 그는 아직도 선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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