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의 일기(2):개들이 판치는 통치

박구용 전남대·광주시민자유대학 교수

헌법·법률 위협하는 건 경찰이 아닌
시행령과 개들을 앞세워
초법적 위력 행사하는 정권 아닐까

개들의 으르렁 소리와 함께
동물농장의 비극이 탄생한다

5월9일자 칼럼 ‘동물농장의 일기(1)’에서 나는 농장의 권력을 장악한 돼지들이 어떻게 변질되는지 알아봤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는 명제가 정권을 잡자마자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로 바뀐 과정이다.

박구용 전남대·광주시민자유대학 교수

박구용 전남대·광주시민자유대학 교수

가혹하고 성급한 평가라는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딱 두 달이 지난 7월9일 교수인 친구에게 다음과 같은 문자가 왔다. “동물들의 정부라 하셔서 처음부터 너무 격한 게 아닌가 했는데 짐승들의 정부 맞네요.” 대통령과 원내대표가 주고받은 문자를 보면 짐승이라기보다 날짐승들의 정권인 듯하다.

“우리 당도 잘하네요. 계속 이렇게 해야.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대표가 바뀌니 달라졌습니다.” 대통령 말이라고는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표현에 원내대표가 화답한다. “대통령님의 뜻을 받들어 당정이 하나 되는 모습을 보이겠습니다.” 몇 번을 봐도 한 나라를 이끄는 사람들의 말이라기엔 너무 저급하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다시 펼쳐본다. 나폴레옹, 스노볼, 스퀼러. 이 세 마리의 돼지들은 정권교체의 주역들이었다. 나폴레옹과 스노볼은 원래 주인이 밖에다 팔려고 기른 수퇘지였다. 반면 스퀼러는 식용으로 길러진 살찐 토박이 돼지였다. 대통령, 당대표, 원내대표가 묘하게 중첩된다. “나폴레옹은 덩치가 크고 꽤 사납게 생긴, 이 농장에서 유일한 버크셔종 수퇘지로 말수는 적지만 하고 싶은 것은 반드시 해내고야 마는, 강한 의지의 소유자라는 평판을 얻고 있었다. 스노볼은 나폴레옹보다 활발하고 언변도 더 뛰어나고 더 창의적이지만 속은 덜 깊다는 평을 들었다.”

집권 초기 동물농장에서 두 가지 사건이 일어난다. 하나는 우유와 사과를 돼지들이 독식한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나폴레옹이 스노볼을 제거하고 권력을 독점하는 과정이다. 먼저 우유와 사과가 암암리에 돼지들에게만 공급되자 다른 동물들의 불만이 쌓였다. 이때 원내대표라 할 스퀼러가 연설을 한다.

“동지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 돼지들이 이기심과 특권 의식으로 이런 일을 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겠지요? 실제로 우리 중 상당수가 우유와 사과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 자신도 그렇습니다. … 이 농장의 전반적인 경영과 조직은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우유와 사과를 먹는 것도 다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9급까지 독식하는 사람들이 뻔뻔할 수 있는 논리와 매우 유사하다.

나폴레옹과 스퀼러는 호흡이 잘 맞았다. 하지만 스노볼은 달랐다. 영민한 데다 다른 동물을 설득하는 능력이 탁월했던 스노볼은 노동을 줄일 수 있는 풍차를 개발하자고 제안한다. 솔깃했지만 반대를 위한 반대로 성장한 나폴레옹은 풍차 건설에 자본을 낭비하면 생계가 위험하다고 반대한다. 두 돼지는 이전 정권과 싸우는 방식에서도 의견이 달랐다. 스노볼은 더 많은 동물들을 설득하여 정권을 강화하자는 입장인 반면 나폴레옹은 총기로 대적하자는 쪽이었다.

어느 날 스노볼이 풍차개발계획을 완성한다. 이제 시간이 가면 스노볼이 나폴레옹을 능가할 것이 뻔했다. 위협을 느낀 나폴레옹은 무시무시한 세 마리 개들을 동원해서 스노볼을 물어뜯게 한다. 스노볼은 결국 범죄자로 지목되어 동물농장에서 추방된다. 스노볼이 밖으로 떠도는 동안 원내대표 격이었던 스퀼러가 당대표 역까지 맡는다. 동물농장에서 토론은 사라지고 스퀼러의 인터뷰만 늘어난다. 그의 말끝은 항상 똑같았다. “나폴레옹 동지는 언제나 옳다.”

스노볼을 물어뜯었던 세 마리 개는 나폴레옹과 스퀼러를 따랐다. 개들이 워낙 위협적이어서 다른 동물들은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 세 마리 개들은 나폴레옹이 새끼 때부터 개인적으로 길러온 놈들이다. 대통령과 오랫동안 동고동락해온 검찰들과 겹치는 구석이 없지 않다.

헌법과 법률이 아니라 시행령으로 나라를 다스리려니 으르렁대는 개들이 필요하다. 국정원, 검찰, 그리고 경찰까지 내세울 참이다. 그런데 권력의 개가 되지 않겠다는 경찰들이 회의를 연다. 권력자의 명령이 아니라 법의 명령에 따르겠다는 의견이 모이고 있다.

경찰들의 민주적 의사형성 과정을 두고 국가의 최고 권력자들이 쿠데타와 국기문란이라고 윽박을 지른다. 그러나 실제로 국가의 근간인 헌법과 법률을 위협하는 것은 경찰이 아니라 시행령과 개들을 앞세워 초법적 위력을 행사하는 정권이 아닐까? 개들의 으르렁 소리와 함께 동물농장의 비극이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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