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구용 전남대·광주시민자유대학 교수

“탑이 무너졌다,/ 붉은 마음의 탑이-// 손톱으로 새긴 대리석 탑이-/ 하룻저녁 폭풍에 여지없이도, …꿈은 깨어졌다/ 탑은 무너졌다.” 인왕산 둘레길에 표류하고 있는 윤동주의 시를 읽는다. 긴 어둠의 터널에서 견딜 수 있는 하나의 빛이다.

박구용 전남대·광주시민자유대학 교수

박구용 전남대·광주시민자유대학 교수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 놀랍다. ‘王’의 놀이일까? ‘王’에의 의지야 손바닥 문신에서 확인했다. 그 의지는 실현된 것 아닌가? 이제 더 큰 권력을 향한 의지가 생긴 것일까? 왕보다 높은 황제? 황제가 될까봐 단 하루도 안 된다는 말에 진정성이 있다. 하나의 의문이 남는다. 누가 알려주었을까? 어떻게 알았을까? 이 명제를 구성하는 세 개념, ‘공간’ ‘의식’ ‘지배’ 모두 어려운 말이다. 제대로 알려면 폭넓은 독서와 토론이 필요하다. 공간부터 살펴보자.

학문의 역사 전체를 관통하는 두 개의 가장 중요한 개념은 시간과 공간이다. 두 개념은 사물에 이름을 붙이고 분류하는 일을 가능하게 해주는 범주의 핵심이다. 특히 두 개념의 관계는 각 시대의 패러다임을 결정한다. 베르그송의 <창조적 진화>에 따르면 현대과학은 시간을 독립변수로 삼으려는 열망의 산물이다. 함수 y=f(x)에서 독립변수인 x가 시간이 되면, y인 종속변수는 공간이 된다. 대표적으로 갈릴레오의 자유 낙하 법칙에서 낙하 물체가 통과한 거리는 소요된 시간의 제곱이다. 시간이 공간을 결정한다. 고대과학에서는 반대다.

고대과학을 대표하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공간과 장소를 구별한다. 장소가 너비를 가진 이차원이라면 공간은 깊이를 가진 삼차원이다. 플라톤의 말부터 들어보자. “있는 모든 것은 어딘가 반드시 어떤 장소 안에 있으며 어떤 공간을 점유하는 게 필연적이다.” 감각적으로 지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장소를 갖는다. 존재하는 모든 것의 생성과 소멸은 장소의 생성과 소멸을 동반한다. 이처럼 장소가 생겨나려면 그 전에 빈자리가 있어야 한다. 이 빈자리가 공간이며, 이 공간에서 장소가 태어난다. 이 맥락에서 플라톤은 공간을 ‘생성의 유모’라 불렀다. 그렇지만 생명의 역사는 공간이 아니라 장소가 품는다고 말한다.

지금 우리 의식 강남의 지배 받아

장소 교체는 그 장소의 가치를 드러낸다. 장소는 사람과 사물의 소유가 아니다. 장소는 언제든 다른 사람과 사물을 품을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장소는 그릇’이라는 은유를 쓰는 이유다. 장소는 그릇처럼 그것이 품고 있는 물이나 밥, 커피의 일부가 아니다. 장소는 모든 것을 교체하면서 스스로의 가치도 교체할 수 있다. 다만 장소 자체는 옮길 수 없다. 그래서 장소는 ‘옮길 수 없는 그릇’이다. 장소는 그 자리에서 교체된 모든 존재의 역사를 품고 있는 대체 불가능한 가치다.

현대과학은 장소의 가치를 제거한다. 시간을 독립변수로 삼기 위해 유일무이한 가치를 품고 있는 장소를 언제나 대체 가능한 공간으로 환원시킨다. 현대과학의 철학적 틀을 제공한 데카르트는 공간을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내재하는 지배적 질서로 격상시켰다. 더욱이 칸트에 이르러 공간은 존재나 경험과 완전히 분리된 주체 의식의 형식적 틀이 된다. 공간은 경험에 앞서서, 경험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초월적 직관의 형식이라는 의식의 왕관이 된다.

공간의 득세는 장소의 파괴를 동반했다. 수많은 존재의 역사를 품고 있는 장소를 대패로 밀 듯 깎아서 상품으로 교환될 수 있는 추상공간으로 만드는 사업이 부흥한다. 이 산업의 꽃은 아파트 단지다. 아파트 단지는 내부의 차이를 제거하면서 외부로는 신분적 차이를 확대 재생산한다. 강남의 아파트 단지 주변으로는 강남에 복종하는 서열화된 공간들이 퍼져나간다. 강남에서 멀어질수록 강남에 의한 착취의 강도는 높아지지만 이에 대한 의식은 줄어든다. 일본제국의 식민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의 독재에서 벗어난 지 오래지만 우리의 의식은 강남이라는 신제국이자 신독재의 지배를 받는다.

국민 바람은 새 공간 아닌 새 길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당선인의 말은 강남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적 사고의 출발점일까? 아니면 사물(건축물)을 정령화했던 애니미즘으로 나라를 다스리려는 통치의 전략일까? 그의 주변에 추상적 공간이 아니라 구체적 장소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이가 단 한 명이라도 있길 바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정치인의 삶은 명예가 그 가치를 결정한다. 그와 그 주변인들이 명예롭길 바라며 덧붙인다. 명예는 그것을 얻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이 만든다. 당신의 명예는 당신이 아니라 국민이 결정한다. 국민은 지금 새로운 공간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원한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윤동주의 ‘새로운 길’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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