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현
서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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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현의 역린 토착왜구, 토착로구 폴란드 방송을 보다가 깜짝 놀랄 때가 있다. 태극기와 촛불로 갈라치는 한국의 여론몰이와 정치문화에 익숙해서 어지간해서는 놀라지 않을 것 같은데, 그래도 놀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한창이던 지난 4월 공영방송 TVP에서 만든 ‘바르샤바의 우리 사람’이라는 다큐 필름 앞에서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주인공은 리버럴 야당의 전임 총리 도날드 투스크이고, 조연은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다. 모스크바를 방문해 푸틴과 반갑게 악수를 나누는 투스크,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와의 관계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모두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투스크, 베를린에서 메르켈과 포옹하고 양국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투스크. 그래도 강조점은 푸틴과의 친선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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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현의 역린 기억 외교 카우나스는 리투아니아의 옛 수도이다. 리투아니아는 1차 세계대전 이후 베르사유조약으로 독립을 인정받았지만, 폴란드 군대가 역사적 영유권을 주장하며 빌니우스를 무력으로 점령하는 바람에 카우나스를 수도로 정했다. 2차 세계대전 초기 카우나스는 독특한 위상을 갖고 있었다. 1939년 9월 나치 독일과 스탈린의 소련이 폴란드를 분할 점령하고, 나치 군대가 파죽지세로 파리까지 점령하자 3만명이 넘는 유럽의 유대인들이 나치의 위협을 피해 리투아니아로 피란을 왔다. 1939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중립을 선언한 리투아니아 정부의 우호적인 난민정책 덕분에 카우나스는 갑자기 국제적 사교도시가 되었다. 1940년 6월 소련의 적군이 침공하기 전까지, 중립국 리투아니아의 수도 카우나스는 각국의 스파이들과 정체를 알 수 없는 다양한 국적의 난민들, 난리통에 한몫 잡으려는 국제 협잡꾼들이 몰려들어 그야말로 북새통이었다. 카우나스가 ‘발트해의 카사블랑카’로 불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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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현의 역린 예수가 폴란드 사람이었다고?! 그니에즈노는 폴란드 옛 왕국의 도읍이다. 피아스트 왕조 국가는 체코나 헝가리 등 동유럽 이웃 국가들과 비슷하게 10세기 말인 서기 963년 건립되었다. 폴란드 왕조가 가톨릭으로 개종한 것도 이곳이니, 유서 깊은 도시다. 이곳에는 ‘폴란드 국가 기원 박물관’이라는 독특한 박물관이 있다. 대체로 5세기부터 10세기에 걸쳐 권력자와 농민들이 사용했던 다양한 금동제품과 토기, 나무로 만든 머리빗, 걸쇠 등 다양한 물건들을 전시하고 있지만, 솔직히 인상적이지는 않다. 그런데 지난 8월 포즈난에서 열린 세계역사학대회를 마치고 이곳을 방문했을 때, 눈길을 끈 것은 폴란드 초기국가 시대 유품들을 전시한 상설전이 아니라 박물관 관람 동선의 맨 마지막에 배치된 특별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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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현의 역린 음모론은 누구의 음모인가? 폴란드 바르샤바에 도착해서 처음 장을 보았다. ‘할라 미로프스카’라는 전통시장이다. 선명한 색깔의 과일과 야채, 암탉의 종에 따라 분류해 놓은 계란, 러시아어로 시끌시끌한 그루지야 제빵소, 시골 치즈와 가정식 해장 수프 등은 보기만 해도 배부르다. 유적지보다는 시장 구경을 더 좋아하는 못난 역사가인 내게 이 시장은 딱 제격이다. 빈약한 상점마다 뱀처럼 구부러진 줄이 길게 서 있고, 연금생활자들이 수시간씩 걸리는 줄서기를 대신해주는 아르바이트를 하던 사회주의 시대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상전벽해다. 오스카 랑게 같은 개혁 사회주의자들이 시장의 소매업 등은 개인 경영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데에는 현장의 절박함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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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현의 역린 흑표의 맹수성과 모기의 상상력 세상은 이상하게 얽혀진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때문에 폴란드와 한국이 이렇게까지 깊이 얽힐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명색이 폴란드사 전공자인 나도 그랬다. 2015년 러시아가 크름반도(크림반도)를 점령하고 친러 민병대들이 도네츠크 지역을 장악했을 때의 일이다. 포즈난 등 민족주의 색채가 강한 폴란드 지역의 고등학교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군사훈련을 받는 사진과 기사를 접하고는 1970년대 우리 세대가 받았던 ‘교련’의 추억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폴란드는 동유럽 국가 중 러시아의 위협을 가장 피부로 느끼는 나라 중의 하나다. 교련 수업은 에피소드에 불과했다. 올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모든 난관을 무릅쓰고 275만명에 이르는 우크라이나 난민을 받아들이는가 하면, 전쟁이 지속되자 우크라이나 정부에 자신들이 운영하고 있는 구소련제 탱크와 미그기 등 주요 무기들을 무상으로 제공했다. 1795년 이후 120년 넘게 러시아의 속국이었고, 1918년 독립하자마자 볼셰비키 러시아와 국가의 존립을 건 일전을 벌였고, 1939년 2차대전이 발발하자 르부프, 그로드노, 빌니우스 등을 유서 깊은 동부 영토를 다시 러시아군에 점령당했으며, 2차대전 이후에는 다시 러시아의 막강한 영향력 아래 주권을 제한받았던 역사를 보면, 러시아에 대한 폴란드 조야의 위기의식은 충분히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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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현의 역린 ‘카셀 도쿠멘타’와 반유대주의 5년마다 열리는 ‘카셀 도쿠멘타’는 베니스비엔날레와 더불어 현대미술의 흐름을 보여주는 중요한 예술의 터이다. 나치가 ‘퇴폐미술’이라고 낙인찍은 현대미술의 전복적 상상력을 느낄 수 있어 카셀 도쿠멘타를 좋아한다. 8월의 방문을 잔뜩 기대하고 있는데, 독일 친구들이 개막일부터 불거진 ‘반유대주의’ 논란을 전해준다. 인도네시아의 집단 창작 예술가 그룹 ‘타링 파디’의 ‘민중의 정의’라는 대형 걸개그림이 개막일부터 반유대주의 논란에 휩싸여 결국 철거되었다. 길이만 18m에 이르는 이 대형 걸개그림에서 ‘반유대주의’ 혐의의 집중포화를 받은 부분은 두 가지였다. 다윗의 별이 그려진 스카프와 모사드라고 새겨진 헬멧을 쓰고 있는 돼지가 영국의 MI5나 러시아의 KGB 돼지와 나란히 있는 그림도 비판받았지만, 촘촘하게 땋은 귀밑머리의 정통파 유대인이 시가를 문 채 나치 SS 휘장이 새겨진 중산모자를 쓰고 있는 그림이 더 큰 문제였다. 유대인에 대한 정형화된 묘사라는 비판은 피해 가기 어려웠다. 비판이 거세지자 도쿠멘타 측은 처음에는 검은 천으로 그림을 덮어 표현의 자유 문제를 제기하고자 했지만, 정치권의 압력에 못이겨 결국 작품을 철거했다. 검은 천으로 그림을 덮는 행위 자체를 검열에 대한 저항이자 증인으로 읽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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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현의 역린 한·일관계와 과거사 문제 다케다 료타 ‘일한의원연맹’ 간사장의 마이니치 신문 인터뷰가 외교가의 화제다. 그가 전하는 말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일한의원연맹의 일본 대표들을 만난 자리에서 “과거사 문제를 비롯한 한·일관계의 현안을 한국의 내정에 이용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마땅히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독도에 대한 일본의 영유권 주장, 일본 제국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옹호하는 우익의 역사관과 교과서, 일본군 위안부와 징용 등 한·일 양국 사이에서 문제가 되는 과거사의 긴 목록을 보면, 숨이 턱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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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현의 역린 여의도에 출몰한 전체주의 유령 하나의 유령이 여의도 청문회장을 떠돌고 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지난 35년의 세월을 민망하게 만드는 이 유령의 정체는 뜻밖이다. 전체주의이다. 산업화 세력을 자처하며 시시때때로 독재자 박정희의 기억정치에 의존하는 국민의힘 이야기가 아니다. 민주화 세력임을 자부하는 더불어민주당의 최고위원을 지낸 법사위 소속 국회의원이 국회 청문회 자리에서 전체주의적 발언을 했다는 게 놀랍다. 발언 당사자의 이력을 찾아보니 건실한 정치인인 것 같아 또 놀랐다. 더 놀라운 것은 코미디 청문회가 몰고온 웃음 폭풍에 김영배 의원의 전체주의적 언동이 묻혀버렸다는 점이다. 그가 속한 더불어민주당은 물론 시민사회의 침묵은 우리 민주주의의 한계를 드러낸 것 같아 답답하다. 그의 문제 발언이 진짜 문제인 것은 그 문제의 심각성을 우리 사회가 별로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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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현의 역린 장애인 이동권과 공감 빵점 능력주의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박경석 대표의 날이 선 설전을 접하면서, 문득 베를린 역사박물관에서 본 1930년대 나치 독일의 포스터 한 장을 떠올렸다. 포스터에는 선천적 장애가 있는 사람이 몸을 비틀고 의자에 앉아 있고, 그 안쓰러운 모습 위에 적힌 ‘80,000 RM’이라는 큼지막한 숫자가 눈길을 끈다. 그 옆에는 수치의 의미를 설명하는 문구가 박혀 있다. 이 장애인 한 명을 평생 부양하는 데 당신들의 조국은 8만 제국 마르크를 써야 한다는 선전 문구이다. 섬뜩하다. 그러나 나름 합리적이다. 당신들이 낸 피 같은 세금이 국가적으로 불필요한 몸을 유지하는 데 낭비되어 국민 다수의 행복을 해치면 안 된다는 경제적 합리주의와 정치적 공리주의의 냄새를 물씬 풍긴다. 그 귀결은? 포스터는 나치의 ‘안락사’ 프로그램을 예고하는 신호였다. 우생학을 신봉한 나치는 아리안 민족의 인종 개량을 발목잡고 경제적으로 쓸모없다고 정한 선천적 장애인 20만 이상을 외딴 수도원 등에서 독가스로 안락사시켰다. 이때 축적된 독가스의 경험은 아우슈비츠 등 강제수용소 가스실에서 홀로코스트의 밑거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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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현의 역린 대통령의 역사관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의 행보가 연일 화제다. 비탄에 빠진 국민을 격려하며 압도적인 러시아 침략군에 맞선 그는 세계 언론에서 저항 민족주의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거인 골리앗을 때려눕힌 소년 다윗의 기개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영국, 미국, 독일, 폴란드, 캐나다, 이스라엘 등 주요 국가들의 의회에 생중계된 그의 애국적 화상 연설은 큰 감동의 물결을 일으켰다. 그의 연설은 여기저기서 민족주의의 귀환을 알리고 있다. 그런데 지난 20일 일요일 이스라엘 크네세트에서 있은 그의 화상 연설은 적지 않은 뒷말을 낳았다. ‘유대계’ 우크라이나인 대통령이라는 점 때문에 더 많은 기대와 관심이 쏠렸지만, 그의 연설에서 드러난 역사관은 많은 의구심을 낳았다. 그의 역사관은 유대인의 나라 이스라엘에서 덜미가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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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현의 역린 대선과 냉전 콤플렉스 레드 콤플렉스는 보수주의의 정치적 자살골이었다. 공산주의에 대한 극도의 공포에서 비롯된 레드 콤플렉스는 공산주의를 막는다는 명분 아래 무자비한 인권탄압도 정당화했다. 적색공포에서 비롯된 집단적 히스테리는 ‘이민자=빨갱이’ 또는 ‘유대인=빨갱이’라는 등식을 낳고, 반유대주의와 외국인 혐오증을 부추겼다. 레드 콤플렉스에 빠진 보수주의는 자유민주주의의 적이 됐다. 공산주의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자유를 침해해도 좋다며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을 부정했다. 헌법에 보장된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는 적색공포의 히스테리 앞에서 무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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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현의 역린 홀로코스트와 기억의 냉전체제 1월27일은 유엔이 정한 ‘홀로코스트 기억의날’이다. 1945년 이날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나치 강제수용소가 소련 적군에게 해방되었고, 아우슈비츠 해방 60주년인 2005년 유엔 총회는 매년 1월27일을 홀로코스트 추모일로 정했다. 유엔 헌장이나 인권선언, 제노사이드 협약 등에서 보듯이 제2, 제3의 홀로코스트를 방지하자는 국제적 공감대가 유엔 설립에 미친 영향을 생각하면, 이 추모일이 2005년에야 정해진 것은 생각보다 많이 늦었다. 이스라엘에서 히브리 달력으로 ‘니산’ 27일을 홀로코스트의날로 제정한 것은 1959년의 일이다. 제노사이드의 비극과 희생자들의 고통에 주목하는 유엔의 홀로코스트 추모일과는 달리, 이스라엘의 홀로코스트 기념일은 1943년 4월19일 ‘니산’ 달에 일어난 바르샤바 게토 봉기의 영웅적 민족 전사들을 기리는 데 방점이 있다. 유엔의 홀로코스트 추모가 보편적인 인권의 고양과 맞닿아있다면, 이스라엘의 홀로코스트 기억은 민족적 기억의 문제로 환원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