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이동권과 공감 빵점 능력주의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박경석 대표의 날이 선 설전을 접하면서, 문득 베를린 역사박물관에서 본 1930년대 나치 독일의 포스터 한 장을 떠올렸다. 포스터에는 선천적 장애가 있는 사람이 몸을 비틀고 의자에 앉아 있고, 그 안쓰러운 모습 위에 적힌 ‘80,000 RM’이라는 큼지막한 숫자가 눈길을 끈다. 그 옆에는 수치의 의미를 설명하는 문구가 박혀 있다. 이 장애인 한 명을 평생 부양하는 데 당신들의 조국은 8만 제국 마르크를 써야 한다는 선전 문구이다.

임지현 서강대 교수

임지현 서강대 교수

섬뜩하다. 그러나 나름 합리적이다. 당신들이 낸 피 같은 세금이 국가적으로 불필요한 몸을 유지하는 데 낭비되어 국민 다수의 행복을 해치면 안 된다는 경제적 합리주의와 정치적 공리주의의 냄새를 물씬 풍긴다. 그 귀결은? 포스터는 나치의 ‘안락사’ 프로그램을 예고하는 신호였다. 우생학을 신봉한 나치는 아리안 민족의 인종 개량을 발목잡고 경제적으로 쓸모없다고 정한 선천적 장애인 20만 이상을 외딴 수도원 등에서 독가스로 안락사시켰다. 이때 축적된 독가스의 경험은 아우슈비츠 등 강제수용소 가스실에서 홀로코스트의 밑거름이 되었다.

장애인 안락사 프로그램은 나치의 종말론적인 폭력을 합리주의와 공리주의로 정당화했다는 데 끔찍함이 있다. 국가의 목적에 부응하는 유능한 몸이 아닌 장애인들에게 한정된 자원을 낭비할 수는 없다는 합리주의의 논리적 극단이 안락사 프로그램을 가져왔다.

다행히 안락사 프로그램은 발을 못 붙였지만, 우리는 나치와 다르다고 안심할 수만은 없다. 우리는 모두가 몸의 차이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에 기여한다고 믿기보다는 동원의 효율성을 기준으로 몸을 서열화하는 데 너무 익숙하다. 몸의 서열화에는 남과 북, 진보와 보수의 차이가 별로 없다.

평양 시내에는 장애인이 한 명도 없다는 북한 당국의 자랑 밑에는 국가의 목적에 적합하지 않은 몸에 쏟아진 무자비한 국가 폭력이 도사리고 있다. 평양의 웅장한 도시계획에는 장애인의 자리가 없다. ‘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탑승 시위 이래 SNS 공간에서 중증 장애인들에게 쏟아지기 시작한 혐오 발언을 보면 남이 북보다 나을 것도 없다. 북은 위로부터의 폭력이고 남은 밑으로부터의 폭력이라는 게 다를 뿐이다.

공산당이 억압한 주변부 사람들의 기억을 ‘목소리 소설’로 승화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서울 중심가의 카페가 정장을 입은 남자들로 거의 꽉 차 있어 놀랍다고 했다. 여성, 특히 나이 든 여성이나 장애인을 거의 볼 수 없는 게 이상하다며 야릇한 웃음을 지었다. 그의 문학적 감수성은 단숨에 우리의 현실을 깊숙이 뚫고 들어왔다.

북한의 돌격대식 사회주의 건설이나 남한의 고도성장을 견인해 온 ‘산업 전사’의 신화는 고강도의 현장 노동에 특화된 몸을 유능한 몸으로 특권화해 왔다. 고강도 노동에 적합하지 않은 몸을 ‘장애’라 규정하고 ‘정상’의 몸과 구별하면서 차별과 비하를 일상화했다. 장애인들이 참기 어려운 것은 불편한 몸에서 비롯된 고통보다도 사람들이 자신의 고통을 무시하고 비하할 때이다.

21세기 들어, 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권을 거치는 동안 줄곧 “장애인 이동권이 문명사회에서 생존권이자 기본적인 시민의 권리”라는 장애인들의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로만 돌아왔다. ‘전장연’의 지하철 출근 시위가 시민을 볼모로 벌이는 비문명적 불법 시위라는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의 발언은 그들의 고통을 비하함으로써 역린을 건드렸다.

전동차의 출발을 막은 자신들의 투쟁이 불법일 수는 있지만 비문명적이지 않다는 박경석 대표의 지적은 불법과 문명이 반드시 반대말은 아니라는 깨달음을 보여준다. 한 세기 전 노동자들의 파업과 시위는 문명화를 향한 투쟁이라고 선언한 로자 룩셈부르크를 연상하게 된다. 불법 자체보다도 문명화 통로가 불법으로만 열리는 상황이 더 문제인 것이다.

이준석 대표는 먼저 정치권의 무관심과 무능을 반성하고,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만나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타자의 고통에 대한 공감 능력이 없는 능력주의는 승자독식과 사회적 불평등을 합리화하는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그의 능력을 깎아내릴 의도는 없다. 단지 그의 능력이 도구적 합리주의로 흐를까 걱정되는 것이다.

실무 능력 빵점의 부도덕한 도덕주의 좌파와 공감 능력 빵점의 도구적 능력주의 우파 중 무조건 한 패를 골라야 한다면, 어떻게 해도 잃는 도박이다. 그런데 이 게임 법칙은 누가 만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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