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폴란드 사람이었다고?!

임지현 서강대 교수

그니에즈노는 폴란드 옛 왕국의 도읍이다. 피아스트 왕조 국가는 체코나 헝가리 등 동유럽 이웃 국가들과 비슷하게 10세기 말인 서기 963년 건립되었다. 폴란드 왕조가 가톨릭으로 개종한 것도 이곳이니, 유서 깊은 도시다. 이곳에는 ‘폴란드 국가 기원 박물관’이라는 독특한 박물관이 있다. 대체로 5세기부터 10세기에 걸쳐 권력자와 농민들이 사용했던 다양한 금동제품과 토기, 나무로 만든 머리빗, 걸쇠 등 다양한 물건들을 전시하고 있지만, 솔직히 인상적이지는 않다.

임지현 서강대 교수

임지현 서강대 교수

그런데 지난 8월 포즈난에서 열린 세계역사학대회를 마치고 이곳을 방문했을 때, 눈길을 끈 것은 폴란드 초기국가 시대 유품들을 전시한 상설전이 아니라 박물관 관람 동선의 맨 마지막에 배치된 특별전이었다.

‘위대한 폴란드-거대한 거짓말’이라는 이름의 이 특별전은 쉽게 이야기하면 인터넷과 유튜브 등에서 떠도는 폴란드의 ‘국뽕’ 사관을 대표하는 가짜 역사를 10여개 패널에 담아 한눈에 보여준다. 폴란드인 선조들이 세운 위대한 ‘레흐 제국’(Lechia)의 업적은 그야말로 눈부시다. 이들은 2000년 전에 이미 철기를 제조하고 바퀴를 발명했다. 도시를 설계하고 민주주의 제도를 정착시키고 독자적인 화폐를 사용했다. 군사력도 막강하여, 당시 세계 최강인 알렉산더 대왕과 시저의 로마군대를 물리쳤다.

그런데 왜 이토록 위대한 업적이 거의 알려지지 않고 심지어 폴란드인들마저 심드렁해하는가? 그건 서구와 러시아에 매수된 식민사관에 젖은 고고학자와 역사가들이, 이민족이 레히아 제국의 위대한 역사적 업적들을 횡령하도록 돕고 있기 때문이다.

이 애국적 재야 역사가들이 발굴했다는 지도를 보면, 6세기 폴란드 ‘레히아’ 제국은 발틱해, 북해, 흑해 연안을 거쳐 오늘날의 독일과 발틱3국, 헝가리, 체코, 불가리아, 루마니아, 유고슬라비아, 우크라이나와 유럽 지역 러시아를 아우르는 방대한 제국임을 알 수 있다. 파리와 로마조차 폴란드 제국의 영향권 아래 있었다는 흔적도 해석에 따라 얼마든지 가능하다.

흑해 연안을 집어삼킨 고대 폴란드의 ‘레흐 제국’과 알타이산맥과 카스피해를 거쳐 흑해에 도달한 고대 한민족의 스키타이 기마 제국이 서로 만나 세계 패권을 겨루었을 가능성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생각만으로도 짜릿할 것이다. 국뽕은 국뽕끼리 통한다.

전시가 보여주는 폴란드 국뽕 역사관의 압권은 “예수가 폴란드 사람이었다”는 주장이다. 히브리어 구약에 ‘레히’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오는 이유는 성경이 유대교의 역사가 아니라 폴란드인 레흐족의 역사임을 뜻한다. 베들레헴 역시 ‘Bet Lechem’, 즉 레흐의 땅이라는 뜻이다.

예수가 폴란드 사람이라면, 예수의 아버지 하느님도 같은 핏줄일 수밖에 없다. 하느님이 만든 아담과 이브가 에덴의 동산에서 사용한 말도 폴란드어였다. 17세기의 위서에 따르면 슬라브어가 인류 최초의 언어였는데, 아담과 이브가 언어학적으로 가장 장형인 폴란드어를 썼다는 가정은 너무도 자연스럽다.

그런데 국뽕 역사학은 폴란드에만 있는 게 아니다. 예수의 국적을 놓고 폴란드인들은 크로아티아인들과 결코 승자를 알 수 없는 큰 싸움을 한바탕 벌여야 했다. 아담과 이브는 헝가리인들의 조상이기도 한데, 슬라브어 계통인 폴란드어와 위구르-핀란드어 계통인 헝가리어는 조금도 비슷하지 않다.

상대를 죽여야 내가 이기는 제로섬게임, 아니 오징어게임 규칙이 이들의 역사해석을 지배한다. 세르비아인들은 조금 안전하다. 세르비아 국뽕 역사학은 12사도를 재빨리 선점했는데, 다행히 경쟁이 세지 않다. 초국가적 보편종교인 기독교의 예수-아담-이브-12사도를 민족주의적으로 전유하는 동유럽의 국뽕 역사학을 들여다보면, 이들 피억압민족의 안간힘에 측은지심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민족주의적 자살골이다. 그니에즈노 국립박물관이 국뽕 역사관에 레드카드를 꺼내든 것도 그 때문이다.

동유럽 국뽕 역사학의 민족주의적 자살골에 실소를 금치 못하면서도, 공자가 한국 사람이고 베이징도 한국 땅이었다는 식의 자살골에는 환호하는 한국의 민족주의는 얼마나 반민족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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