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과 냉전 콤플렉스

임지현 서강대 교수

레드 콤플렉스는 보수주의의 정치적 자살골이었다. 공산주의에 대한 극도의 공포에서 비롯된 레드 콤플렉스는 공산주의를 막는다는 명분 아래 무자비한 인권탄압도 정당화했다. 적색공포에서 비롯된 집단적 히스테리는 ‘이민자=빨갱이’ 또는 ‘유대인=빨갱이’라는 등식을 낳고, 반유대주의와 외국인 혐오증을 부추겼다.

임지현 서강대 교수

임지현 서강대 교수

레드 콤플렉스에 빠진 보수주의는 자유민주주의의 적이 됐다. 공산주의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자유를 침해해도 좋다며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을 부정했다. 헌법에 보장된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는 적색공포의 히스테리 앞에서 무시됐다.

1968년 124군부대의 청와대 습격, 푸에블로호 피랍사건, 울진·삼척 무장 공비 침투 사건, 1975년 월남의 적화 통일, 1976년 판문점 도끼 살인 사건 등을 거치면서 고조된 레드 콤플렉스는 10월 유신과 잇단 긴급 조치를 정당화하는 논거로 작용했다.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자유를 희생해도 좋다는 논리가 판쳤다.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자마자 미국은 자유민주주의가 공산주의에 오염될지 모른다는 적색공포에 떨었다. 1930~1940년대 파시즘과 투쟁하느라 잠잠했던 미국의 레드 콤플렉스는 1950년대 매카시즘으로 되돌아왔다. ‘빨갱이’라는 혐의만으로 문화계의 자유주의자들이 매장됐고, 심지어는 메이저리그 야구팀 신시내티 레즈조차 ‘레즈’(Reds)라는 이름을 버리는 촌극도 벌어졌다.

반공 진영이 레드 콤플렉스의 유령에 쫓기고 있을 때, 공산 진영은 ‘포위된 요새’ 신드롬에 갇혀 있었다. 제국주의 열강에 포위된 사회주의의 요새 소련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언론의 자유는 억압해야 마땅했고, 일상의 행복에 대한 인민들의 욕구는 혁명의 추상을 위해 양보해야 했고, 노동조합은 당의 명령에 복종하는 위성 조직으로 전락했다.

존 리드가 <세상을 뒤흔든 10일>에서 묘사한 격정적인 자유 토론 당시 지도부에 대한 신랄한 야유와 비판을 서슴지 않았던 땀내 나는 노동자들의 소비에트 민주주의는 스탈린주의의 관료적 명령체제에 질식해 버렸다. 노동자가 주인인 사회주의 요새를 구출하기 위해 노동자들의 의사를 짓밟는 것은 볼셰비즘의 새로운 상식이 되었다.

제국주의에 포위된 요새에서 인민을 위한 독재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인민의 자유는 무시되어야 마땅했다. 당의 명령 아래 강철 대오를 이루어야만 제국주의의 간섭을 물리칠 수 있다는 믿음은 인민을 사회주의라는 기계의 톱니바퀴로 만들었다. 당의 명령은 토의와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관료제의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인민에게 전달되는 일방통행이었다.

무엇이 행복인가는 인민이 정하는 게 아니라 당이 결정했다. 당이 결정한 행복에 반대하는 자는 인민의 적이고 계급의 적이었다. 공산주의의 가장 끔찍한 점은 인민에게 당이 정한 행복을 강요하는 것이었다. 배부른 소리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불행할 수 있는 자유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회는 극히 불행한 사회이다. 강요받은 행복은 행복이 아니다. 레드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유주의가 자유를 위해 자유를 죽였듯이, 포위된 요새 신드롬 환자였던 공산주의는 인민을 위해 인민을 죽였다.

대선을 2주 앞두고 갈라질 대로 갈라진 한국 사회에서 냉전의 잔영을 느끼는 것은 비단 나만일까? 레드 콤플렉스를 비판하는 사람은 포위된 요새 신드롬에 눈을 감고, 포위된 요새 신드롬을 비판하는 사람은 레드 콤플렉스에 눈을 감고 있다. 어느 한편을 비판하면 반사적으로 다른 한편을 옹호한다고 생각하는 단순 논리 앞에서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다. 냉전 콤플렉스를 낳은 ‘제로섬게임’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구기 어렵다.

냉전체제에 청년기를 보낸 우리 세대의 대부분은 극히 단순한 이분법으로 세상을 재단하는 데 익숙하다. 당시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은, 레드 콤플렉스를 부추기는 ‘반공주의 선전’이나 지상낙원을 약속하는 ‘공산주의 선전’ 둘 중 하나였다. 냉전 시대의 이데올로기적 폭력은 그만큼 총체적이었다.

한 폴란드 친구의 농담처럼, “자본주의가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밟고 서 있는 체제라면, 사회주의는 거꾸로 다른 인간이 한 인간을 밟고 서 있는 체제이다.” 그런데 내가 다른 사람 위에 서 있으면 정의롭고 다른 사람이 내 위에 서 있으면 부당하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한국의 좌파와 우파는 많이 닮아 있다. 참을 수 없이 저속한 네거티브 선거전을 보다 보면, 우리 사회에 깊이 드리운 냉전의 그림자에 새삼 놀라게 된다.


Today`s HOT
올림픽 성화 도착에 환호하는 군중들 러시아 전승절 열병식 이스라엘공관 앞 친팔시위 축하하는 북마케도니아 우파 야당 지지자들
파리 올림픽 보라색 트랙 첫 선! 영양실조에 걸리는 아이티 아이들
폭격 맞은 라파 골란고원에서 훈련하는 이스라엘 예비군들
바다사자가 점령한 샌프란만 브라질 홍수, 대피하는 주민들 토네이도로 파손된 페덱스 시설 디엔비엔푸 전투 70주년 기념식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