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와 과거사 문제

임지현 서강대 교수

다케다 료타 ‘일한의원연맹’ 간사장의 마이니치 신문 인터뷰가 외교가의 화제다. 그가 전하는 말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일한의원연맹의 일본 대표들을 만난 자리에서 “과거사 문제를 비롯한 한·일관계의 현안을 한국의 내정에 이용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마땅히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독도에 대한 일본의 영유권 주장, 일본 제국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옹호하는 우익의 역사관과 교과서, 일본군 위안부와 징용 등 한·일 양국 사이에서 문제가 되는 과거사의 긴 목록을 보면, 숨이 턱 막힌다.

임지현 서강대 교수

임지현 서강대 교수

여기에는 과거사를 내정에 이용해 온 한·일 양국의 정치가들뿐 아니라 역사가들의 책임도 크다. 국제정치에서 국가적 이해의 충돌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그 갈등을 국민감정의 차원으로 증폭시켜 막다른 길로 몰고 간 데는 자국 중심적 민족주의 역사학이 나침반 역할을 했다.

한·일관계와 과거사 문제들 되돌아보면, 20세기의 대표적인 역사가 에릭 홉스봄의 예언이 떠오른다. 그는 1990년대 초 부다페스트의 한 강연에서 역사학이 원자탄을 만드는 핵물리학보다 더 위험하다고 일갈했다. 유고슬라비아의 참혹한 내전이 발발하자 그의 경고는 곧 현실이 되었다. 배타적 민족주의 역사관의 논리적 귀결은 끔찍한 인종청소였다. 슬로베니아의 류블랴나 대학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한 친구는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와 같은 정치가가 아니라 자기들과 같은 직업적인 역사가들이 진짜 전범이라고 씁쓸하게 내뱉었다. 과거가 미래의 발목을 잡았고, 과거는 미래가 되었다.

과거사를 둘러싼 위기가 계속해서 고조되어 온 동아시아의 상황이 발칸반도보다 더 낫다는 자신은 없다. 한·일 공동역사위원회는 상호 이해보다는 서로에 대한 비난으로 끝났고, 21세기에도 역사 화해는 요원하기만 하다. 과거사를 둘러싼 한·일 간 감정의 골은 더 깊어졌다. 일본 정치의 우경화가 그 원인으로 거론되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

1978년 8월 한국 언론의 보도를 보면, 후쿠다 다케오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보다는 일본의 ‘대한 경제원조’나 ‘대일 무역역조’가 더 중요한 현안임을 알 수 있다. 더구나 ‘독도에 대해 일본은 계속 영유권을 주장’하면서도 한·일관계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당시 주한 일본 대사 스노베 료조의 인터뷰 내용을 그대로 전하면서도 크게 흥분하는 논조는 아니다.

또 1975년까지 간헐적으로 지속된 히로히토 일왕의 야스쿠니 참배나 후쿠다에 이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스즈키 젠코 총리에 대한 항의도 찾아보기 어렵다. 아베 신조(安倍晉三) 총리가 주변국의 비판적 여론을 의식해 야스쿠니 신사 참배 대신 공물료를 보낸 것조차 신랄히 비판한 2018년 8월의 기사들과 비교해보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의 역사 교과서 문제도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수정주의 사관을 담은 교과서의 우경화는 1955·56년의 교과서 검인정 지침부터 시작되었다. 난징대학살이 역사 교과서에서 지워지고 ‘침략’이라는 용어가 ‘진출’로 대체되었다. 태평양전쟁으로 아시아 각국이 서구식민주의 지배에서 독립했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일본의 침략은 해방으로 미화되었다.

21세기의 ‘새역사교과서’가 식민주의를 미화하고 일본군 위안부와 징용 등의 폭력성을 부정하는 수정주의 교과서지만, ‘새 역사’는 아니었다. 1955·56년의 검인정 방침에서 이미 수정주의 사관의 교과서는 시작되었다. 바뀐 것은 일본의 역사 교과서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이웃 국가들의 시선이다. 바꾸어 말하면, 현실이 나빠진 게 아니라 악에 대한 감수성이 더 예민해진 것이다.

일본의 역사 교과서는 이제 일본의 문제가 아니라 동아시아의 문제가 된 것이다. 그것은 한국이나 중국의 교과서도 마찬가지다. 동아시아 삼국이 나라별로 따로 떨어진 역사를 살아온 게 아니라 서로 얽혀서 중첩된 초국가적 역사를 살아왔기에 이들 각각의 역사가 동아시아의 문제인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을 부정하는 수정주의 사관이나 난징대학살과 일본군 위안부를 둘러싼 동아시아의 첨예한 논쟁은 우리의 기억과 상상력이 국경을 넘어 동아시아로 확대되었다는 점에서 침묵의 카르텔보다 더 긍정적이다. 이웃을 향해 열려 있는 동아시아 기억공간의 형성은 적신호가 아니라 청신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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