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셀 도쿠멘타’와 반유대주의

임지현 서강대 교수

5년마다 열리는 ‘카셀 도쿠멘타’는 베니스비엔날레와 더불어 현대미술의 흐름을 보여주는 중요한 예술의 터이다. 나치가 ‘퇴폐미술’이라고 낙인찍은 현대미술의 전복적 상상력을 느낄 수 있어 카셀 도쿠멘타를 좋아한다. 8월의 방문을 잔뜩 기대하고 있는데, 독일 친구들이 개막일부터 불거진 ‘반유대주의’ 논란을 전해준다.

임지현 서강대 교수

임지현 서강대 교수

인도네시아의 집단 창작 예술가 그룹 ‘타링 파디’의 ‘민중의 정의’라는 대형 걸개그림이 개막일부터 반유대주의 논란에 휩싸여 결국 철거되었다. 길이만 18m에 이르는 이 대형 걸개그림에서 ‘반유대주의’ 혐의의 집중포화를 받은 부분은 두 가지였다. 다윗의 별이 그려진 스카프와 모사드라고 새겨진 헬멧을 쓰고 있는 돼지가 영국의 MI5나 러시아의 KGB 돼지와 나란히 있는 그림도 비판받았지만, 촘촘하게 땋은 귀밑머리의 정통파 유대인이 시가를 문 채 나치 SS 휘장이 새겨진 중산모자를 쓰고 있는 그림이 더 큰 문제였다. 유대인에 대한 정형화된 묘사라는 비판은 피해 가기 어려웠다. 비판이 거세지자 도쿠멘타 측은 처음에는 검은 천으로 그림을 덮어 표현의 자유 문제를 제기하고자 했지만, 정치권의 압력에 못이겨 결국 작품을 철거했다. 검은 천으로 그림을 덮는 행위 자체를 검열에 대한 저항이자 증인으로 읽은 것이다.

논란을 지켜보면, 이 걸개그림이 유대인에 대한 순전한 증오를 부추기거나 호전적 반유대주의를 담고 있다는 독일 조야의 비판은 지나친 감이 있다. 그 밑에는 독일의 홀로코스트 기억 콤플렉스가 있다. 이스라엘에 대한 보이콧, 투자철회, 제재를 반유대주의라고 선포한 2019년 독일 연방의회의 결의안은 그 콤플렉스의 정치화를 상징한다.

20세기 유럽에서 벌어진 가장 끔찍한 범죄의 가해자임을 기억해야 한다는 독일인들의 강박관념을 마냥 탓하기만은 어렵다. 아시아·태평양 전쟁의 가해자인 일본 사회에서 그런 강박관념을 찾아볼 수 있다면 차라리 행복하겠다는 부러움도 있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자치 국가 요르단, 시리아 등 이웃에 대한 식민주의적 정복 국가가 된 지 이미 오래이다. 이스라엘 국가에 대한 비판을 반유대주의와 동일시하는 독일의 기억문화는 자신들의 양심적 제스처를 위해 결과적으로 이스라엘 식민주의를 옹호하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비단 2022년 ‘카셀 도쿠멘타’만의 일이 아니다. 2020년 ‘루르 트리엔날레’에서는 기조 강연자로 내정된 아프리카의 탈식민주의 이론가 아실 음벰베에게 반유대주의의 혐의를 걸어 그의 초청을 무산시킨 바 있다. 음벰베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와 홀로코스트를 인종주의의 환상이라고 병렬시켰다는 게 반유대주의라는 비난의 근거였다. 식민주의적 폭력을 감히 홀로코스트와 비교하면 안 된다는 유럽중심적 기억문화의 문제가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실제로 독일은 1904~1908년 사이에 일어난 나미비아의 나마와 헤레로 부족에 대한 제노사이드에 대해 2021년 6월에야 겨우 공식적 사과가 아닌 유감을 표명하고 ‘배상금’이 아닌 ‘개발지원금’ 명목으로 11억유로를 지불한다고 발표했다.

이스라엘에 대한 거듭된 사과 및 배상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20만 대 600만이라는 제노사이드 규모의 차이는 분명하다. 그러나 ‘강제수용소’ ‘독일 민족의 생활공간’ ‘절멸 전쟁’ 등 홀로코스트를 떠받친 식민주의적 제노사이드의 개념이 거의 모두 나미비아의 식민주의 학살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따져보면, 인도네시아의 반유대주의 또한 식민주의의 산물이다. 1930년대 네덜란드의 나치들이 자신들의 식민지에 반유대주의를 도입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식민주의 지배 경험이 나치의 동유럽 점령에 도움이 될 거라며 나치에게 적극적인 구애 활동을 펴기도 했다. 네덜란드의 나치들이 도입한 반유대주의는 일본 점령하의 인도네시아에서 곧 반중 인종주의로 변이되었다. 1965~1966년 인도네시아 반공주의의 정치적 제노사이드가 화교에 대한 인종주의적 학살로 이어진 것도 우연은 아니다. 홀로코스트를 식민주의 제노사이드와 분리해서 특권화시키는 것이야말로 아마도 홀로코스트 희생자들 자신이 가장 피하고 싶은 일이 아닐까?

(이달부터 내년 2월까지 독일과 폴란드를 오가며 살게 됐다. 하반기 ‘역린’ 칼럼은 중·동부 유럽의 역사적 프리즘을 통해 한국 사회를 재조명하는 데 치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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