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경
교열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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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입 우리말 외래어에 가려진 우리말 풍경 거리마다 낯선 외래어 간판들이 빼곡하고, 사람들의 입에서는 자연스레 외래어가 흘러나온다. ‘열쇠고리’ 대신 ‘키링’, ‘경치’보다는 ‘뷰’, ‘휴식’ 대신 ‘힐링’이 더 익숙하다. 방송에선 ‘한강 뷰’가 좋다고 난리고, 지친 일상엔 ‘힐링’이 필요하다고 거침없이 말한다. ‘케어’도 마찬가지다. 어느새 ‘보살핌’이나 ‘치료’라는 말보다 더 자주 쓰인다. 아픈 이를 돌볼 때나 마음을 다독일 때 ‘케어가 필요해’라고 한다. 짧고 간결하게 느껴지지만, 그 단어에는 어떤 손길인지, 어떤 마음인지가 드러나지 않는다. 반면 ‘보살피다’엔 오래 바라보고 정성을 쏟는 깊은 마음이 스며 있다. 우리말은 단순히 뜻을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다. 삶을 대하는 태도와 마음을 담고 있다. ‘열쇠고리’에는 문을 여닫던 시절의 손맛이, ‘휴식’에는 그늘 아래서 숨 고르는 시간이 배어 있다. 우리는 이 언어를 통해 우리 방식대로 세상을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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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입 우리말 감정을 정조준한 언어, ‘저격’ 요즘 ‘저격’이라는 말이 유독 자주 들린다. ‘취향 저격’ ‘심장 저격’ ‘여심 저격’… 긴 설명 없이도 감탄과 공감을 빠르게 전하는 말이다. 누군가의 마음을 찌르는 듯한 장면이나 매력적인 무언가가 등장하면, 사람들은 주저 없이 ‘저격’이라는 단어를 꺼낸다. 다들 알다시피 이 단어의 본뜻은 전혀 다르다. ‘저격’은 본래 조용히 숨어 있다가 특정 목표를 정밀하게 겨냥해 공격하는 행위를 의미했다. 군사 작전이나 정치적 언어에서 사용되던, 차갑고 위협적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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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입 우리말 걸림돌과 디딤돌, 생각의 차이 길을 걷다 보면 작은 돌멩이에 발이 걸려 순간 휘청거릴 때가 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평범한 일상생활 속에서도 간혹 우리는 예상하지 못한 문제나 난관, ‘걸림돌’을 만난다. 때로는 쉽게 넘어설 수 있는 사소한 방해물에 불과하지만, 어떤 때는 앞길을 막는 거대한 벽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럴 때 ‘돌부리를 차면 발부리만 아프다’는 속담이 떠오른다. 걸림돌을 억지로 치우려 하기보다는 그 존재를 인정하고 지혜롭게 대처하는 편이 훨씬 현명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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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입 우리말 나는 어떤 ‘꾼’일까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전통 공예품을 만드는 사람, 새로운 기술을 탐구하는 사람, 아름다운 자연을 카메라에 담는 사람. 어쩌면 많은 이들이 장인, 마니아, 전문가, 혹은 덕후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부정적 어감 때문인지 ‘꾼’은 쉽게 입에 붙지 않는다. 우리말에서 ‘꾼’은 어떤 일에 능숙하거나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중립적인 말이다. 낚시꾼, 나무꾼, 농사꾼, 구경꾼처럼 긍정도 부정도 아닌 그저 ‘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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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입 우리말 색깔 속에 감춰진 우리말 말은 참으로 신비스럽고 경이롭다. 그 속에는 질서와 자유로움이 어우러져 우리가 평소에 쓰면서도 새롭게 느껴질 때가 많다. 이러한 언어의 신비는 특히 색깔을 표현하는 방식에서 두드러진다. 흔히 ‘빨갛다’ ‘까맣다’는 사물의 외양을 묘사하는 데 쓰인다. 잘 익은 빨간 사과나 숯처럼 까만 연기를 떠올릴 수 있다. 우리말은 이처럼 대상을 설명하는 말이 대상을 꾸며주는 형태로 변하며 더욱 풍부해진다. 가령 ‘사과가 빨갛다’가 ‘빨간 사과’로, ‘연기가 까맣다’가 ‘까만 연기’가 되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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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입 우리말 나를 아는 공간, 단골집 하루 종일 쌓인 긴장과 피로가 퇴근길에 한꺼번에 몰려온다. 회사에서 벗어나니 그제야 업무와 스트레스로 짓눌린 어깨가 축 처진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도 잠시뿐 어느덧 정든 단골집 문을 자연스럽게 열고 들어선다. 낯익은 주인장을 보는 순간, 집에서 기다릴 아내에게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하루의 고단함이 사르르 녹아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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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입 우리말 왜 우리는 ‘불’을 끈다고 할까 ‘Turn off the light.’ 우리말로 “불을 끄세요”다. 영어 ‘light’는 ‘빛’이지만, 우리는 조명을 켜고 끄는 행위를 ‘불’과 연결해 표현한다. ‘불’이 ‘fire’인 영어권에서는 우리말 “불을 끄세요”를 듣고 전등이 아닌 다른 ‘불’을 상상하며 의아해할 수도 있다. 이러한 언어적 특성은 우리말 ‘불’의 의미가 확장된 사실과 관련이 있다. 과거 옛사람들에게 ‘불’은 어둠을 밝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등잔불, 촛불, 호롱불 등 밤을 밝히던 거의 모든 조명은 불을 사용했다. ‘불’과 ‘빛’이 동일시되던 언어 습관이 지금까지 이어져 전기 조명을 끄는 행위마저도 ‘불을 끈다’고 말한다. 자동차 연료가 바뀌어도 습관적으로 ‘기름을 넣는다’고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마찬가지로 수백년간 ‘불’이 ‘빛’을 내는 동력이었기에 그 관습이 언어에 깊이 뿌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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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입 우리말 오만가지 감정을 담는 숫자, 5만 숫자 5만은 그저 크기만 한 수로 여겨진다. 그 너머, ‘오만(五萬)’은 단순히 숫자를 뛰어넘는, 특별한 의미와 감정을 담아내는 ‘말그릇’이다. 우리말에서 오만은 헤아릴 수 없이 많거나, 매우 복잡하고 강렬한 감정 또는 상태를 표현하는 특별한 단어다. 이는 숫자가 가진 명확한 경계를 허물고, 감정과 비유를 담아내는 우리말의 독특한 특성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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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입 우리말 긁혔네, 그래서 말인데 요즘 젊은 세대들은 누군가 기분 나쁜 말을 했을 때 ‘나 좀 긁혔어’나 ‘긁?’이라는 말을 자연스레 쓴다. 마치 물리적으로 긁힌 듯 들리지만, 사실 이는 감정적으로 동요하거나 삐지거나 불쾌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단순히 신조어의 등장이라고 보기 쉽지만, 어쩌면 우리는 ‘긁다’라는 단어에 숨겨진 더 깊은 의미를 놓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곰곰이 살펴보면 ‘긁다’에는 ‘남의 감정이나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자극하다’라는 뜻이 이미 포함되어 있다. ‘긁어 부스럼을 만들다’라는 관용구처럼, 이는 단순히 피부를 긁는 행위에 그치지 않고 감정적 의미도 담고 있었다. 결국 ‘긁히다’가 ‘삐지다’ ‘상처받다’처럼 쓰이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말이라기보다, 사전 속에 잠자던 비유적 의미가 젊은 세대의 기발한 언어 감각 덕에 되살아난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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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입 우리말 타령, 삶과 소리 이야기 예로부터 우리 민족의 희로애락을 담던 특별한 노래 형식, ‘타령’은 판소리와 민요에서 그 진가를 발휘해왔다. 느린 가락은 듣는 이의 마음에 깊이 스며들어 때로는 애절함을 자아내고, 때로는 삶의 고단함을 위로했다. ‘흥부가’의 흥부 타령은 가난 속 희망을, ‘춘향가’ 중 옥중 춘향의 타령은 임을 향한 그리움과 절개를 보여주었다. 타령은 서민의 삶과 정서를 전하는 중요한 통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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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입 우리말 ‘골탕’의 변신 힘든 날이다. 오늘따라 유독 ‘골탕 먹었다’는 말이 자꾸 입가를 맴돈다. 일이 실타래처럼 엉킨 하루였다. 아침부터 서두르다 버스를 잘못 탔고, 오후에는 예상치 못한 일로 친구와 한 점심 약속마저 깨졌다. 연이어 터지는 난감한 상황에 ‘골탕 먹었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퇴근길, 익숙한 골목길 단골 식당의 따뜻한 불빛이 위로처럼 느껴진다. 뜨끈한 주꾸미탕을 앞에 두고 오늘 하루를 떠올리니 쓴웃음이 나온다. 따뜻한 음식을 먹다 생각해보니 우리는 곤란하거나 손해를 볼 때 ‘골탕 먹었다’는 표현을 쓴다. ‘골탕’은 본래 음식 이름이었다. 예전에는 소의 등골이나 머릿골에 녹말이나 밀가루를 묻혀 기름에 지지고, 달걀물을 입혀 맑은장국에 넣어 끓인 국을 ‘골탕’이라고 불렀다. 듣기만 해도 손이 많이 가는, 꽤나 귀한 음식이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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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입 우리말 꼴값하며 살고 싶다 살다 보면 우리는 일상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따뜻한 봄날 내리쬐는 햇살처럼 기분 좋은 얼굴도 만나고, 때로는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질 만큼 불편한 ‘꼴’과도 마주친다. 꼴불견을 넘어 분위기가 사늘해지는 꼴사나운 광경과 맞닥뜨리면 괜스레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진다. 우리는 ‘꼴’이라는 단어를 유쾌하지 않은 상황과 연관 지어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좋지 않은 상황을 콕 집어 ‘꼴좋다’며 빈정거리기도 하고, 엉뚱하고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는 ‘꼴값한다’거나 ‘꼴값을 떤다’며 핀잔을 주기도 한다. ‘꼴’은 주로 마뜩잖은 상황이나 눈에 거슬리는 모습, 우스꽝스러운 행동 등 부정적인 맥락에서 사용된다. ‘꼴’도 보기 싫을 만큼 불쾌한 인식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