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선경
교열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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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입 우리말 ‘골탕’의 변신 힘든 날이다. 오늘따라 유독 ‘골탕 먹었다’는 말이 자꾸 입가를 맴돈다. 일이 실타래처럼 엉킨 하루였다. 아침부터 서두르다 버스를 잘못 탔고, 오후에는 예상치 못한 일로 친구와 한 점심 약속마저 깨졌다. 연이어 터지는 난감한 상황에 ‘골탕 먹었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퇴근길, 익숙한 골목길 단골 식당의 따뜻한 불빛이 위로처럼 느껴진다. 뜨끈한 주꾸미탕을 앞에 두고 오늘 하루를 떠올리니 쓴웃음이 나온다. 따뜻한 음식을 먹다 생각해보니 우리는 곤란하거나 손해를 볼 때 ‘골탕 먹었다’는 표현을 쓴다. ‘골탕’은 본래 음식 이름이었다. 예전에는 소의 등골이나 머릿골에 녹말이나 밀가루를 묻혀 기름에 지지고, 달걀물을 입혀 맑은장국에 넣어 끓인 국을 ‘골탕’이라고 불렀다. 듣기만 해도 손이 많이 가는, 꽤나 귀한 음식이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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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입 우리말 꼴값하며 살고 싶다 살다 보면 우리는 일상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따뜻한 봄날 내리쬐는 햇살처럼 기분 좋은 얼굴도 만나고, 때로는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질 만큼 불편한 ‘꼴’과도 마주친다. 꼴불견을 넘어 분위기가 사늘해지는 꼴사나운 광경과 맞닥뜨리면 괜스레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진다. 우리는 ‘꼴’이라는 단어를 유쾌하지 않은 상황과 연관 지어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좋지 않은 상황을 콕 집어 ‘꼴좋다’며 빈정거리기도 하고, 엉뚱하고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는 ‘꼴값한다’거나 ‘꼴값을 떤다’며 핀잔을 주기도 한다. ‘꼴’은 주로 마뜩잖은 상황이나 눈에 거슬리는 모습, 우스꽝스러운 행동 등 부정적인 맥락에서 사용된다. ‘꼴’도 보기 싫을 만큼 불쾌한 인식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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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입 우리말 그래도 ‘금손’보다 ‘엄마 손’ 주름 잡히고 거칠어진 투박한 엄마의 손에서 세월의 흔적이 잔뜩 묻어났다. 어린 시절 내가 아플 때마다 ‘엄마 손은 약손이다’라며 배를 쓰다듬어 주던 그 손이다. 연례행사처럼 띄엄띄엄 찾는 고향 집 밥상에는 변함없이 엄마의 손맛이 가득했다. 짙은 주름과 거친 손마디에도 엄마의 손맛은 오히려 더 깊고 진하다. 엄마는 손이 참 작고 예뻤다. 그런 손을 보며 사람들은 ‘손이 크고 빠르다’며 음식을 맛깔스럽게 준비하는 엄마의 빠른 손놀림에 놀라곤 했다. 예로부터 우리는 손을 통해 다양한 감정과 의미를 표현해 왔다. 음식을 푸짐하고 맛나게 만드는 솜씨를 가리켜 ‘손이 크다’고 말하고, 일을 능숙하고 빠르게 처리하는 사람에게 ‘손이 빠르다’는 칭찬을 건넨다. 손은 단순히 도구가 아니라 능력과 솜씨, 심지어 마음까지 담아내는 특별한 단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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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입 우리말 찢었다 요즘처럼 ‘찢다’라는 단어가 강력한 존재감을 뽐내는 시대가 있었을까. 공연 영상 댓글 창과 놀라운 개인기를 칭찬하는 말에서 ‘찢다’의 드높은 인기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찢다’가 유튜브와 SNS를 중심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다. 정말이지 ‘찢다’의 전성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래 ‘찢다’는 손이나 날카로운 도구로 붙어 있는 것을 잡아당기거나 째서 갈라놓는다는 물리적인 의미를 지닌 말이다. 종이나 천을 찢는 동작처럼, ‘찢다’는 명확하고 구체적인 물리적 행위를 나타낸다. ‘찢다’가 가진 이러한 속성 때문에, 사람들은 숨겨진 매력이나 실력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상황을 ‘찢었다’란 말로 표현하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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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입 우리말 이름 때문에 오해받는 큰 소, 황소 나의 옛 이름은 한쇼다. 우리말에서 ‘한’은 크다 또는 많다를 뜻한다. 한쇼는 큰 소란 의미다. 어느 날 사람들이 나를 황소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멋진 누런 황금빛 털옷을 입은 건 사실이지만 겉모습만 보고 지레짐작으로 황소라고 부르는 것 같아 살짝 아쉽다. 누런색 털옷 때문에 그렇게 여길 수도 있겠으나 황은 한자 黃과는 다른 우리말에서 비롯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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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입 우리말 엉겁결 햇살이 따뜻하다. 산책하기에 딱 좋은 날이다. 간밤에 비가 조금 내려 땅이 촉촉이 젖어 있다. 신이 나서 뛰어다니는 강아지를 따라 망우산 둘레길을 걷던 중, 그만 순간적으로 무언가를 밟아버렸다. 신발은 엿처럼 끈적끈적한 진흙으로 엉겁이 되었다. 야단났다. 또 ‘털팔이’처럼 뭘 묻히고 왔다고 아내에게 한 소리 듣게 생겼다. ‘엉겁’은 엿처럼 끈끈한 물건이 범벅이 되어 달라붙은 상태를 가리킨다. 이 ‘엉겁’은 요즘 하는 일 없이 사전 깊숙한 곳에 쓸쓸히 앉아 있다. 단짝 ‘결’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것 외에 딱히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결’이라는 발음 때문에 간혹 엉겁이 ‘엉겹’으로 잘못 불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결’을 만나면 즐겁다. 함께 뭉치면 ‘엉겁결’에 갑갑한 사전 속을 나와 사람들의 입과 입을 통해 자유로이 돌아다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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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입 우리말 알쏭달쏭 무지개? 비가 그친 뒤 하늘에 무지개가 떴다. 무지개를 가까이서 만져보고 싶었다. 친구랑 무작정 집을 나서 무지개가 걸려 있는 동네로 향했다. 어린 마음에 조금 빨리 걸으면 쉽게 그 동네에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연신 동요 ‘무지개’를 불러 젖혔다. “알쏭달쏭 무지개 고운 무지개/ 선녀들이 건너간 오색 다린가~” 무지개를 잡을 생각에 뜻도 모르면서 신나게 노래를 불렀다. 그저 선율을 타고 흐르는 노랫말이 부르기에도 듣기에도 좋았다. 무지개가 알쏭달쏭하다는 노랫말이 좀 어색하다고 느낀 건 꽤 많은 시간이 지난 후였다. 내가 알던 그 알쏭달쏭은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여 얼른 분간이 안 될 때 쓰는 말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노랫말 ‘알쏭달쏭 무지개’가 전혀 와닿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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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입 우리말 소대가리보다 소머리가 맛있을까 얼큰한 국물에 밥 한 그릇 말아먹자고 했다. 바로 곤지암 소머리국밥 이야기가 나온다. 얼큰한 국물이 소머리국밥으로 나아갔다. 뜬금없이 소머리국밥은 곤지암이란다. 직장인들에겐 자기만 아는 맛집이 꼭 한두 곳은 있다. 곤지암 골목에 유명한 소머리국밥집이 있나 보다. 어느 날 밥 먹다 친구가 말한다. 소머리국밥이 맞아? 소대가리국밥 아냐? 동물은 머리가 아니라 대가리가 맞지 않나. 별생각 없이 사는 나와는 달리 친구는 궁금한 게 많다. 국밥이 맛만 좋으면 되지 머리면 어떻고 대가리면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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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입 우리말 ‘한입 우리말’인 이유 평기자 시절 오피니언팀 팀장이 우리말 칼럼을 한번 써 보라고 했다. 무슨 배짱이었는지 그렇게 하겠다고 대뜸 대답하고 말았다. 당시에는 우리말 칼럼이 그리 많지 않았다. 큰 부담 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열심히 풀어놓았다. 어느 날 타 부서 후배가 페이스북에 우리말 칼럼을 올려 페친들한테 글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후배는 몇 가지 의견을 모아 조심스럽게 나에게 전했다. 그중 하나가 ‘기자가 독자를 가르치려고 든다’였다. ‘가르치다와 가리키다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가르치다는 어떤 사실을 알도록 하여 잘 쓰도록 하는 행동을 뜻하고, 가리키다는 어느 곳을 보도록 알려주는 손짓을 말한다. 두 말은 엄연히 다르다.’ 설명한다고 한 말이 독자들에게는 가르치려고 드는 모습으로 비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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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입 우리말 반려견과 개소리 사이에 눈뜨면 제일 먼저 강아지랑 산책을 한다. 털이 길어지면 강아지 미용실을 찾고, 추울 땐 따뜻한 옷을 입힌다. 자기 전에는 치카치카 깨끗하게 이를 닦아준다. 강아지와 지내는 삶이 일상이 되었다. 어제도 오늘도 ‘강아지 집사’의 삶을 살아간다. 이쯤 되면 키우는 게 아니다. 함께 생활한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듯싶다. ‘개’라고도 하지 않는다. 작고 어린 것을 뜻하는 ‘아지’를 붙여 강아지라고 부른다. 그래야 말하기도 편하고 듣기에도 좋다.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개가 아니라 강아지다. 강아지를 좋아할수록 일상에서 개와 강아지의 구분은 모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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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입 우리말 재수가 없으니 땡전도 없다 예능 방송에서 유명 연예인이 학생들 앞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내가 땡전 한 푼 못 받아도 이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연기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어느 날 연기를 하는 게 너무 싫어져 연예계를 떠난 뒤 복귀하면서 한 말이었다. 지금껏 살면서 땡전 한 푼 못 받아도 하고 싶은 일이 있었을까. 일에 대한 그런 열정이 한 번이라도 있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일이 안 풀릴 땐 으레 ‘재수가 없어서’라는 말을 쉼 없이 내뱉으면서 그럭저럭 그 시간을 버틴 듯하다. 재수가 없으니 땡전이 한 푼도 없다. 땡전이 들어올 운수가 없는데 어찌 내 주머니에 돈이 많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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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입 우리말 영역을 넓히는 ‘맛집’ 어깨에 놓여 있던 무거운 짐이 사라진 날, 선배가 전화를 했다. 그동안 애썼다며 동네에 집밥보다는 못하지만 괜찮은 맛집이 있다며 오라고 한다. 게으른 나와 달리 요즘 사람들은 맛집을 찾아 먼 여행도 마다하지 않는다. 소장용 맛집 인증사진은 필수다. 빠듯하게 돌아가는 삶 속에서도 각자 방식대로 세상과 소통하며 여유를 즐긴다. 맛집은 맛있기로 유명한 음식점을 이르는 말이었다. 예로부터 사람 사는 곳에는 먹거리가 빠지지 않는다. 먹거리가 있는 곳에 으레 맛집 한두 곳은 있다. 더욱이 독특한 먹거리를 찾아 맛집 기행을 떠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음식 맛도 개성이 넘쳐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