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인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길

정윤수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정윤수의 오프사이드] ‘체육인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길

제41대 대한체육회장으로 이기흥 후보가 재당선됐다. 낙승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어디 쉬운 선거가 있겠는가. 그간의 노고가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당선 이후 보름 정도가 지난 이 시점에서는, 그저 그런 치하보다는 날카로운 격려가 더 필요하다.

정윤수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정윤수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무엇보다 명실이 상부해야 한다. 이전 4년 동안의 재임 기간이나 또 이번 선거를 치르면서, 누구보다 이 회장 스스로 ‘스포츠선진국’이라는 표현을 많이 썼다.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강조한 ‘스포츠인권 향상을 통한 선진화’에 대해서도 적극 호응하였다. 명실이 상부한다는 것은, 내세운 가치와 그것의 구체적인 사업이 궤를 같이한다는 것이다.

지금도 진천선수촌에는 ‘스포츠선진국’이라는 글자가 큼직하게 걸려 있고 대한체육회의 공문서에도 이 표현이 많이 쓰이고 있다. 이 용어가 수사가 아니고, 현 정부가 내세운 슬로건이니 일단 박자는 맞춰준다는 정도의 잔꾀가 아니라면, 앞으로 4년 동안 전개할 스포츠정책과 사업에 있어 스포츠선진국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내용을 구체적으로 펼쳐야 한다.

그것을 위하여 이 회장은 새로운 4년의 초반에 스포츠선진국을 향한 미래 비전과 그것을 구체화할 대한체육회의 역할 및 사업에 대하여 전면적인 검토를 하기 바란다. 연속되는 4년이 아니라 완전히 새롭게 출발하는 4년이라는 마음으로 생각을 달리하는 수많은 사람들까지 포괄하여야 한다. 스포츠선진국이라는 높은 산을 오르는 데는 단 하나의 등정로만 있는 게 아니며, 더욱이 선진국이라는 목표 역시 단 하나의 어떤 성취를 뜻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의 충언과 탁견을 경청해야만 한다.

그런 점에서 이 회장이 평소 강조한 ‘체육인’ 또는 ‘체육인의 자존심 회복’이란 말도 아주 폭넓게 이해해야 한다. 선거 과정에서 투표권을 지닌 체육인들을 바로 그 이름으로 열렬히 호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체육인의 범주와 맥락을 어떻게 확장하느냐에 따라 말 그대로 ‘한국 체육’의 미래가 달려 있다.

충언하건대 이 ‘체육인’이라는 표현은 결코 배타적으로 쓰여서는 안 된다. 그동안의 관용을 보면 이 체육인에는, 생활체육 동호인은 흐릿하게 포함되고 대체로 직업 선수들이 중심이 되는데, 그렇다고 모든 선수들이 포함되는 것은 아니고 적어도 대표선수 출신이어야 하고 그 최상위에 메달리스트가 존재한다. 일종의 상징 권력이랄 수 있는데, 문제는 이것이 하나의 상징이자 존중이 아니라 유무형의 위계와 특정한 권한과 발언권으로 외화되곤 한다.

이를 ‘체육인’이라는 표현으로 더 강화하기보다는 각각의 단위와 역할과 권한으로 폭넓게 재편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스포츠가 사회 속의 스포츠로 의미 있는 확산을 하게 된다. 각 지역의 사정을 보면 각종 큼직한 시설과 굵직한 사업에 있어 ‘진짜 체육인’은 들러리를 서거나 지역의 토호들이 좌지우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기존의 울타리를 철거하고 ‘체육인’이라는 범주를 폭넓게 확장하고 여기에 각 지역의 문화, 복지, 생태, 건강 전문가들이 결합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체육이 사회 속으로 번져가고 그 과정에서 ‘진짜 체육인’들의 일자리와 자긍심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역 이권 싸움만 재연될 우려가 있다.

‘체육인의 자존심을 회복’한다고 강조한 것 역시 새롭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선거 전략 차원에서 ‘자존심 회복’을 내걸 수는 있어도, 실제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위험하다. 체육계에 대한 다양한 비판 때문에 체육인의 자존심이 하락한 게 아니다. 지난 수년 동안 체육계가 지속적인 비판을 받았다면 그것은 조재범 코치 가해사건(징역 10년6개월)이나 최숙현 선수의 죽음(관계자 모두 징역 8년 등 중형 선고) 같은 실로 엄청난 사건에 대한 비판이었고, 그것도 ‘모든 체육인’이 아니라 그러한 사태에 대한 사전의 관리감독과 사후의 책임과 혁신을 다하지 못한 대한체육회 및 이 회장에 대한 비판이었다. 누가 지금 이 순간에도 묵묵히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체육인을 비판하겠는가. 그러니 ‘체육인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길은, 두 번 다시는 그와 같은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부단히 자정하고 혁신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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