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영화제’라는 즐거운 상상

정윤수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정윤수의 오프사이드]‘스포츠영화제’라는 즐거운 상상

영화제 하면 흔히 부산국제영화제 같은 최고 수준의 그야말로 ‘국제적인’ 영화제를 떠올리기 쉬운데, 작으면서도 알차고 소중한 영화제들이 쉼 없이 열리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직전의 집계로 한 해 200개 가까이 열렸다.

올해로 23회째를 맞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작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상영작을 중심으로 한 담화와 토의, 정념이 뜨겁다. 지역의 문화적 자산과 해당 분야의 독창성을 결합한 경우로는 2005년 시작된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꼽을 수 있다. 청풍명월의 8월 밤하늘은 영화음악으로 인하여 늘 아름다웠다.

정윤수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정윤수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이런 영화제의 특징과 의의를 보면, 그저 영화를 상영하는 정도가 아니라 문화를 생산하고 확산한다는 점이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경우 상호연대의 네트워크 형성, 방대한 아카이브 구축, 차세대 여성영화인의 성장 등을 목표로 한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도 그 분야 최고 전문가와 함께하는 ‘영화음악아카데미’ 과정을 16년 동안 진행해오고 있다. 음악영화의 수준 제고와 다양성 확산을 위한 제작지원 프로젝트도 가동 중이다. 올해로 6회째를 맞는 울주세계산악영화제나 다큐멘터리를 특화한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의 경우, 영화를 매개로 사회적 참여와 다양한 시선의 논쟁적 교차라는 문화적 의의를 획득해낸 사례다.

나는 여기에 스포츠영화제를 추가하고 싶다. 최근 들어 두 차례의 스포츠영화제가 조촐하게나마 진행되었다. 2019년 대구스포츠영화제가 열린 적 있다. 총 9편의 스포츠영화를 중심으로 시네마토크와 스포츠토크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작년에는 인천의 주안영상미디어센터에서 인천스포츠영화제가 열렸다. 얼핏 듣기에는 의외의 상상력이라는 느낌이면서도 가만히 살펴보면 충분히 납득이 되는 경우로 충주국제무예액션영화제가 있는데, 무술액션 장르를 특화한 이 영화제 역시 넓게 보면 스포츠영화제의 특성을 갖는다.

이를 좀 더 확장해보면 어떨까. 확장한다는 뜻은, 스포츠영화를 ‘감동과 눈물’이라는 제한된 감정 서사에 국한하지 않고, 그야말로 인류사의 수많은 고통과 난제와 갈등이 뒤엉킨 아주 다양하고 묵직한 문화콘텐츠로 이해하고 접근하자는 것이다.

스포츠와 관련된 영화 또는 영상물에는 ‘감동과 눈물’을 포함하면서도, 그것을 뛰어넘는 작품과 기록들이 풍성하다. 주제만 하더라도 스포츠 미학이나 교훈 외에도 스포츠를 둘러싼 정치적 갈등, 사회적 긴급 사태, 분쟁과 소요, 혐오와 차별, 인권과 평화, 교육과 생태 등 긴박한 현실과 미래 지향적인 가치 등이 다채롭게 그리고 상당한 수준으로 제작되어 왔다. 이를테면 더글러스 고든 감독이 지네딘 지단의 현역 시절 경기 모습을 89분 동안 찍은(경기 종료 1분 전 지단이 퇴장당했다) <지단, 21세기의 초상>이나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마라도나> 같은 작품은, 통상 말하는 ‘스포츠영웅’의 재현 수준을 넘어 한 인간이 위엄 있는 세계를 충실히 보여준다. 국내의 경우로 이해영 감독의 <천하장사 마돈나>는, 지금 당장 다시 보고 서로 담화할 만한, 그러면서도 유쾌한 걸작이다.

일반적 의미의 영화는 아닐지라도, 이를테면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을 기록한 레니 리펜슈탈의 다큐멘터리 <올림피아>나 전후 일본의 심리적 긴장과 사회적 우울이 저변에 깔린 이치가와 곤 감독의 1964년 도쿄 올림픽 다큐멘터리 등은 한 국가가 스포츠 또는 올림픽이라는 거대한 메가이벤트를 통해 어떠한 욕망을 집단적으로 투사하였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렇게 다양한 시선의 스포츠영화들을 풍성하게 구성하고 그 종목의 스타와 전문가들이 팬들을 만나는 풍경은 상상만 해도 즐겁다. 또한 다른 영화제들이 그렇듯이 이 영화제를 중심으로 하여 한국 스포츠의 현실을 진단하고 미래를 예감하는 프로그램들이 전개되면 ‘스포츠의 사회화와 대중화’가 더욱 촉진될 수 있다. 또한 스포츠를 문화콘텐츠로 이해하고 활용하는 젊은 세대들이 다종다양한 방식으로 디지털 변주를 해나간다면, 그 자체로 새로운 스포츠영상산업이 창출될 것이다.

이에 대한체육회나 한국프로스포츠협회 같은 전국적 차원의 조직이나 프로스포츠산업 전체를 아우르는 단체가 공신력 있게 참여하고 스포츠를 지역문화 활성화의 소중한 씨앗으로 여기는 지자체가 중후하게 지원한다면, 스포츠문화는 더욱 갱신하고 확장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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