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명복을 빈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나는 2005년부터 2007년까지 모 지역에서 의무소방원으로 군복무했다. 소방에 대한 꿈과 로망이 있었다기보다는, 휴가가 많고 근무가 그다지 힘들지 않다는 말에 응시한 것이었다. 그러나 소방학교에서의 훈련은 왜 이렇게까지 하나, 싶을 만큼 힘들었다. 체력단련 시간에 수없이 들었던 “너희가 힘이 없으면 구조하러 가서 구조당한다”라는 말이 아직도 선명하다. 지역 소방서의 본서에 배치받고 난 첫날 새벽에는 세 번의 사이렌이 울렸다. 스피커에서 마이크를 톡톡 치는 소리가 나자마자, 선임들은 모두가 4층에서 1층까지 뛰어내려갔고, 몇 시간 후 돌아온 그들의 몸에서는 불냄새 비슷한 것이 났다. 물론 그날이 좀 과한 날이었다. 화재가 없는 날들이 조금 더 많았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나는 구급&화재에 배치받았다. 구급 출동이 있으면 응급구조사와 함께 구급차를 탔고 화재 출동이 있으면 방수복을 입고 방수모를 챙겨서 소방펌프차 끄트머리에 앉았다. 대도시의 의무소방원들은 주로 사무 업무에 배치된다고 들었으나 2교대로 돌아가는 이 지역은 그럴 형편이 아니었다. 화재 현장에 도착하면 고임목을 받치고, 말린 호스를 몇 개씩 쭉 펴서 잇고, 관창을 잡고 진입하거나 했고, 돌아오면 까만색이 된 호스를 고압분사기로 세척해서 널었다. 나는 내무실에서 존경받는 선임도 아니고 현장에서 신뢰받는 대원도 아니었으나, 그럭저럭 거기에 있었다.

어느 날, 수난구조 요청이 들어왔다. 나는 그때 외곽의 작은 출장소에서 직원 두 명과 근무하고 있었다. 강에 사람이 빠졌고 건져내기는 했으나 의식이 없다고 했다. 본서에서 출동한 수난구조대는 돌아가고 나와 응급구조사 한 명이 현장으로 갔다. 하천으로 가는 진입로는 차가 갈 수 없는 곳이었다. 구급차를 세우고, 장비를 챙긴 우리는, 그들이 있는 곳으로 뛰었다. 적어도 1㎞는 되는 거리였으니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5분은 걸릴 것이었다. 그러나 이럴 땐 몸과 마음이 약한 사람도 단단한 사명감을 덧입게 된다. 구급대원과 나는 쉬지 않고 뛰었고 우리를 본 신고자들이 어서 오라 소리 지르고 손짓을 해 더 빨리 뛰었다.

구조된 사람은 의식이 없었다. 이 상황을 구조라고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그를 둘러싼 사람들이 CPR, 그러니까 심폐소생술 같은 걸 하고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신고자들은 그를 물에서 건져내기는 했으나 그 이후로는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았다. 구급대원은 그에게 달려들어 가슴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열다섯, 하나 둘 셋 넷(…) 열다섯. 그러던 그가 나에게 말했다. “민섭아, 구급차에 가서 산소통 가져와.” 신고자들 앞에서 평온함을 유지한 목소리였지만 나에겐 그 어느 때보다도 다급하게 들렸다. 다시 구급차로 뛰어가서, 내 키 반만 한 무거운 산소통을 떼어서 들고, 그들에게 뛰어가다가, 나는 내가 5분 안에 갈 수 없을 것을 알았다. 골든타임이라고 부르는 4분은 이미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지나 있었다. 뇌사가 진행 중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도착한 때부터 4분이라고 믿고 싶었고, 어떻게든 이 산소통을 4분 안에 옮겨두고 싶었다. 울면서 뛰어가던 그때 어디선가 환청이 들려왔다. ‘너희가 힘이 없으면….’

병원으로 가는 동안의 CPR은 나의 몫이었다. 하나 둘 셋 넷 (…) 열다섯. 출장소로 돌아온 소방관은 소주 한 잔을 바깥에 뿌리고 가만히 고개 숙였다. 명복을 비는 그만의 방식이었다. 그는 어떤 마음으로 ‘요구조자’에게 달려갔을까. 내가 만난 소방관들은 평범하고 각자의 욕망에 충실한 사람들이었지만 적어도 현장에서의 그들은 모두 단단한 사명감을 덧입고 있었다. 2년이라는 짧은 시간 함께했지만, 내가 제대한 이후 2명의 소방관이 순직했다. 한 명은 소방학교의 교관이었고 한 명은 출장소의 부소장이었다. 그렇게 누군가를 향해 달려가는 그들이 있기에 오늘과 내일의 안온한 우리가 있다. 화재 진압 중 순직한 이형석, 박수동, 조우찬 소방관의, 그리고 타인을 위한 일을 하다가 우리의 곁을 떠난 모두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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