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삶이 조금 더 즐겁길 바라며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대리사회>라는 책을 쓸 때만 해도 대리운전은 나에게 온전히 생계를 위한 노동이었다. 그 책이 나온 지도 5년이 지났지만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요즘도 나에게 묻는다. 요즘도 대리운전을 하고 계신가요, 하고. 그때마다 나는 어떻게 답해야 할지 고민한다. 하기는 하는데, 이걸 노동이라고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는 마음이 되기 때문이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나는 작은 스타트업의 대표로 일하면서 평일에는 사무실에 출근한다. 그러다가 저녁이 되면 대리운전 콜을 켠다. 대리운전을 시작하고 처음 밤 10시의 강남에서 콜을 켰을 때, 나는 알았다. 아아, 여기가 그래서 강남이구나. 반경 1㎞ 이내에 나를 기다리는 수십명의 사람이 있었다. 사무실에서 일하던 나는 집이 있는 지역으로 가는 콜을, 아니면 내일 강의가 있는 지역의 콜을 본다. 내가 가고 싶은 어디든 갈 수 있는 듯하다. 그렇게, 원래는 교통비를 지불하고 1시간은 걸려야 갈 거리를, 몇만원의 대리운전비를 받고, 더욱 빠르고 편하게 도착한다. 마치 덤처럼 느껴지는 노동이다.

주말가족으로 지내고 있으니까, 주말에는 강원도 모 지역으로 간다.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일요일 늦은 시간이 되면 대리운전 콜을 켠다. 근처 골프장이나 펜션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서울로 가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KTX 비용 몇만원을 지불하는 대신 그들의 차를 운전하면서 서울로 간다. 그러고 나면 약 15만원을 번다. 이것을 노동이라 해도 괜찮을지 잘 모르겠다. 내가 배운 노동이란 이런 몸과 마음으로 하는 게 아닌데. 그러나 이 역시 생계의 문제다. 평일의 교통비를 아끼고 다만 몇만원을 더 버는 일, 주말의 KTX비를 아끼고 십몇만원을 더 버는 일, 이러한 노동이 없다면 지금 나의 삶이 지속 가능할 것이라고 감히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노동의 이유가 있고 대리운전과 같은 플랫폼노동이라면 더욱더 그러하다.

언젠가 이런 상상을 해본 일이 있다. 나에게 2주 정도 온전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대리운전으로 전국일주를 해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저녁에 강남에서 시작해 우선 수원까지 간다. 강남~수원이라면 3만5000원, 충분히 안락한 숙소를 잡을 수 있다. 이제 다음 날엔 수원에서 평택으로, 그다음 날엔 평택에서 천안으로, 다시 천안에서 세종으로, 세종에서 대전으로, 대전에서 논산으로, 논산에서 전주로, 전주에서 남원으로, 남원에서 광주로, 광주에서 나주로, 나주에서 목포로, 그리고 다시 동쪽으로, 마지막 날엔 어디 골프장 근처에서 서울로 가는 콜을 잡는 것으로 이 무전 대리 전국일주를 마무리한다.

대리운전을 하다보면 차 주인들이 자주 묻는다. 왜 대리운전을 하고 있느냐고. 그러면 나는 눈치를 보아 적당히 투잡을 하고 있다든가 아이들이 어려서 돈을 벌어야 한다든가, 하고 답한다. 그러나 전국일주를 할 때는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대리운전으로 전국일주를 하고 있어요. 일주일 전에 강남에서 출발했고 하루에 한 콜씩 타면서 전주까지 왔어요. 목포까지 잘 갈 수 있으면 좋겠네요.” 이 말을 들은 그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무언가 억울한 마음이 될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러니까 이 사람이 지금 내 차를 타고 여행을 하고 있고, 나에게 받은 돈으로 숙소까지 잡을 테고, 팔자가 아주 좋구나. 그래도 혹시 이런 재미있는 일에 동참하게 해주어 고맙다고 팁을 주는 손님도 간혹 있을지 모른다. 정말이지 누구를 만날지 예측할 수 없는 게 이 일이니까.

나는 계속 일을 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이 일과 삶을 연동시키며, 조금은 더 즐겁게 여러 일들을 해 나가고 싶다. 대리운전으로 전국일주를 하든, 출퇴근을 하든, 주말가족으로 살아 나가든, 나의 일도 삶도 조금 더 지속 가능한 것으로 만들며 잘 살아가고 싶다. 어려운 시기이지만 모두 그러한 유쾌한 여유를 조금 더 간직할 수 있기를. 나도, 당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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