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란 무엇인가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대리운전을 할 때, 신도시의 아파트가 목적지가 되면 걱정이 찾아왔다. ‘나가는 길을 잘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요즘의 대단지 아파트는 마치 미로 같아서 한 번 들어가면 쉽게 나오기 어렵다. 내가 심각한 길치인 것을 감안해야겠으나 나만 그런 것은 아닌 듯하다. 아이의 한글 선생님도 30분 정도 수업에 늦고서 했던 말이 “새로 생긴 아파트에 갔다가 나오는 길을 못 찾아서 한참 헤맸습니다” 하는 것이었다. 그 복잡해진 길들은 외부와의 단절, 그리고 폐쇄를 선언한 요즘의 아파트를 그대로 보여준다. 기본 브랜드에 서브 브랜드를 덧붙이고, 거대한 정문을 세우고, 입주민이 아닌 사람이 오가는 것을 통제하고, 입주민만 이용 가능한 커뮤니티 시설을 확장해 나간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며칠 전 모 아파트 입주민 대표는 아파트의 놀이터에 놀러온 입주민이 아닌 아이들에게 “남의 아파트 놀이터에 오면 그건 도둑이야”라는 말을 하고 그들을 내쫓았다고 한다. 나는 그의 말이 2021년에 들은 가장 놀랍고 아픈 기억이 될 듯하다. 나의 어린 시절, 1990년대를 상상해 보면 더욱 그렇다. 그 시기의 놀이터란 어디에 있든 공유의 대상이었다. 오늘은 나의 놀이터, 내일은 너의 놀이터에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오징어 게임’ ‘술래잡기’ 같은 것을 하면서 놀았다. 지금 내가 지내는 강릉의 작은 동네도 그렇다. 언덕 위에 작은 초등학교가 있고 수업이 끝난 아이들은 몇 개의 아파트 단지를 지나면서 차례로 거기에 사는 친구의 놀이터에 가서 논다. 아이들의 놀이에는 브랜드도, 분양가도, 어떤 위계나 통제도 없다. ‘깍두기’라는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은 문화를 스스로 만들어내면서 모두가 잘 놀았고, 누군가가 엄지손가락을 들고 “무엇 하고 싶은 사람 여기 붙어라”라고 하면 처음 보는 누군가가 그 위에 손을 올리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공간을 공유하며, 타인의 처지를 살피며, 모두가 깐부처럼 놀았다.

나의 어린 시절을 너무 미화한 것 같아 민망하기도 하지만, 그러한 가능성을 모두가 감각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추억을 가진 모두가 그의 발언에 분노했을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한 입주민 대표만이 가진 천박함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 아파트의 브랜드를 자신의 가치라고 믿는, 그 브랜드를 공유하는 사람들과 선택적으로 연결되고 싶어하는, 그래서 그 바깥의 타인을 상상하지 않는/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임대 아파트와 브랜드 아파트의 학급을 따로 나누자고 하거나, 등하교 시간에 아파트에서 학교에 이르는 길을 폐쇄한다거나, 배달노동자들의 출입을 통제한다거나 하는 일들이 실제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들에게 아파트의 경비·청소·관리 노동자들은 어떠한 존재일까. 어쩌면 아파트의 시설물처럼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 모두는 타인을 더욱 동정할 필요가 있다. 다른 브랜드를 가진, 특히 연약한 이들을 동정해야 한다. 자신이 갑의 자리에 있다면 더욱 그렇다. 단순히 누군가를 불쌍하고 안쓰럽게 여겨야 한다거나 무조건 자선을 베풀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동정은 같은 정을 가져야 한다는, 타인의 처지에서 사유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뜻이다. 타인에 대한 이해와 다정함은 거기에서부터 생겨난다.

우리는 이제 ‘아파트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새롭게 던져야 한다. 이 단어 하나로 한 시대의 욕망을 모두 설명할 수 있을 만큼 너무나 중요한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투자의 대상으로 살피는 것도 물론 필요하겠으나 그 공간에서 우리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가는가를 살펴야 한다. 우리가 나와 닮은 사람의 범위를 지나치게 축소시키는 것은 아닌지, 단절과 폐쇄의 가치를 지향하게 된 것은 아닌지, 나와 브랜드가 다른 타인을 상상하는 방식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아파트에 살아가는 사람뿐 아니라 브랜드 아파트를 욕망하는 모두가, 이제는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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