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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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민주주의·헌법’ 독서 열풍 무엇인가의 결핍은 갈망을 낳는다. 시인 김지하가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열망하던 때는 국회를 해산하고 정치 활동을 금지시킨 뒤 비상계엄령하에 탄생한 ‘유신 헌법’ 시기였다. 그토록 바라던 민주주의는 오랜 시간 뒤에 왔다. 유신의 심장이 쓰러진 뒤 맞이한 ‘서울의 봄’은 전두환 신군부의 쿠데타와 비상계엄으로 짓밟혔다.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발행 1년도 되지 않아 100만부 넘게 판매되며 ‘정의 신드롬’을 일으켰던 2010년의 한국 사회도 결핍의 시기였다. 이명박 정부 인사들의 법적·윤리적 흠결, 총리실 민간인 사찰 문제 등이 불거지며 정의에 대한 갈망이 열풍의 원동력이었다. ‘국민 행복 시대’를 앞세웠던 박근혜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한 날 국내에서 개봉된 영화 <레미제라블>의 흥행도 마찬가지다. 19세기 프랑스의 ‘비참한 사람들’(Les Miserables)이 바리케이드에 올라 불렀던 민중의 노래는 2012년 한국 시민들의 가슴을 방망이질했다. “내일이 오면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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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블랙아이스 국내에서 가장 컸던 추돌사고는 2015년 2월11일 인천공항고속도로 영종대교에서 발생한 106중 추돌사고다. 안개가 짙게 낀 날, 도로에 형성된 살얼음인 ‘블랙아이스’까지 결합된 사고였다. 당시 영상을 보면 공항 리무진 버스, 승용차, 트럭 등 차량들이 찌그러지고 뒤엉키며 아비규환이 됐다. 사고 당시에만 사망이 2명, 부상이 130명에 달했다. 블랙아이스로 일어난 대표적 사고는 2011년 12월24일 천안논산고속도로에서 발생한 104중 추돌사고다. 제설 작업 뒤 도로에 남아 있던 물기가 얼어붙으면서 발생했다. 지난해 11월27일 원주 만종교차로(53중), 2023년 1월15일 세종포천고속도로(47중), 2020년 2월17일 순천완주고속도로(31중)에서 일어난 대형 추돌사고 원인으로도 블랙아이스가 지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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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칩플레이션 서울 신문로 한 대형 교회 앞 길가엔 조그마한 노점 호떡집이 있다. 얼마 전 이 집 할머니에게 들은 얘기다. 밀가루가 많이 들어간 호떡 반죽 10㎏을 3만3000원에 받아다 호떡 한 개에 1500원에 팔았다. 그러다 찹쌀과 흑미가 들어간 고급 반죽으로 바꿨더니 납품받는 가격이 5㎏에 3만원이 됐다. 호떡값을 2000원으로 올렸지만 한 달 정도 지나 다른 집이 호떡값을 1500원으로 내려 할머니도 같이 내렸다. 그새 반죽 가격은 3만1000원이 됐다. 원재료값은 두 배 올랐는데 500원만 올려도 손님이 준다는 것이다. 팔아도 남는 게 없으니 장사하기 힘들다는 하소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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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단도직입 “그날 밤, 가상의 적을 향해 돌격하는 돈키호테가 떠올랐다” 현직 대통령 윤석열이 지난 3일 밤 느닷없이 TV 화면에 나와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1987년 이후 차곡차곡 쌓아온 민주주의를 한방에 허물어트리는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광경에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는 “국회가 범죄자 소굴이 되었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전복을 기도하고 있다. 지금까지 패악질을 일삼은 망국의 원흉, 반국가 세력을 반드시 척결하겠다”고 계엄의 이유를 밝혔다. 계엄사령관이 임명되고 정치활동 금지, 언론과 출판의 계엄사 통제, 전공의 48시간 내 복귀를 담은 포고령이 발표됐다. 계엄군이 헬기를 이용해 국회에 진입하고 저항하는 국회 보좌진, 시민들과 충돌했다. 시시각각 국회를 압박해 들어가는 쿠데타 세력의 움직임을 지켜보며 애가 타들었다. 결국 국회와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지켜냈고, 6시간 만에 계엄은 해제됐다. 하지만 계엄 후유증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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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단도직입 “아직도 건전재정?…윤 대통령, 도대체 공상 속에 사나”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대한 국회 심사가 시작됐다. 바야흐로 예산 정국이다. 정부 예산안에는 국정운영 철학과 방향과 정책이 담겨 정부·여당과 야당의 한판 싸움이 치열하다. 정부는 건전재정을 앞세우며 글로벌 복합위기 속에서도 거시경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했다고 자평하고 있지만, 부자감세로 세수 기반이 무너졌다는 반론이 신랄하다. 올해까지 2년째 역대급 ‘세수 펑크’를 메우기 위해 정부는 외환방파제 역할을 하는 외국환평형기금을 끌어오고, 올핸 저소득층 주거안정을 위한 주택도시기금까지 손대고 있다. 지방교부세를 감액해 지방정부 허리띠를 졸라매게 하면서도 정부 쌈짓돈인 예비비는 14% 늘렸다. 윤석열 대통령이 양극화 해소를 내세웠지만 부자감세 후폭풍으로 취약계층 지원은 더 줄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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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노벨상 휩쓴 AI 구글이 인수한 딥마인드의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2016년 대결은 인류에게 큰 충격을 던졌다. 가로·세로 19줄에서 나오는 경우의 수가 10의 170제곱에 달해 아무리 첨단 컴퓨터라도 매수 최적의 수를 찾는 건 시기상조라고 봤었다. 하지만 이세돌 9단의 3연패 뒤 4국에서 거둔 1승은 인류가 AI에게 거둔 첫 승이자 유일한 승리가 됐다. 국내외 언론은 “인류의 존엄을 되찾았다”고 흥분했고, 승착이 된 78번째 수는 ‘신의 한 수’로 불렸다. 올해 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데이비드 베이커 미국 워싱턴대 교수와 ‘알파고 아버지’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가 이름을 올렸다. 허사비스 CEO는 공동수상자인 존 점퍼 딥마인드 디렉터와 함께 ‘알파폴드2’라는 AI를 통해 2억개 이상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는 방법을 찾았다. 베이커 교수도 AI로 단백질 구조를 설계했다. 이들 공로로 50년 묵은 과학적 난제를 풀고 신약 개발의 새 지평을 연 것이다. 전날 발표된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존 홉필드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제프리 힌턴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도 머신러닝 기술을 개발한 ‘AI 대부’들이다. AI가 인류 최고의 두뇌 게임 바둑을 넘어 노벨상을 휩쓸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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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단도직입 “금투세에 대한 ‘마녀사냥’에 온 국민이 홀린 것 같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기준금리를 내리고 중국 정부가 경기 부양책을 내놓으면서, 글로벌 증시는 활황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빠질 땐 미국보다 더 빠지던 한국 증시는 여전히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정부는 올 초부터 한국 증시의 고질적인 저평가(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개선하겠다며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프로그램들을 추진해왔으나 반응은 기대 이하다. 시장 전문가들은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시행 논란을 이유로 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아예 금투세를 폐지하려 하고 더불어민주당도 이재명 대표가 지난 7월 전당대회에서 금투세 시행 유예를 언급하면서 당론이 어정쩡하게 바뀌었다. 내년 시행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열린 의원총회에서도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윤석열 정부의 ‘부자감세’ 정책을 비판해온 민주당의 자기부정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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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1억대 현대차 자동차는 ‘달리는 국기’라고 할 만하다. 지금이야 한국의 수출 차들이 고급 브랜드로 인정받아 당연해 보이지만, 몇년 전만 해도 해외여행이나 출장 중에 도로를 달리는 현대차·기아 차를 보면 어깨가 으쓱해진다는 경험담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1967년 설립된 현대차는 이듬해 미국 포드의 코티나 2세대 모델을 국내로 들여와 단순 조립해 생산을 시작했다. 그 후 정주영 창업 회장과 동생 정세영 현대자동차 사장의 집념으로 1976년 독자적인 고유 모델 ‘포니’를 탄생시켰다. 포니는 그해 에콰도르에 5대 팔려 첫 수출 모델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현대차는 1986년에는 자동차의 본고장 미국에 전륜구동 모델인 ‘포니 엑셀’ 100대를 처음 수출하며 ‘포니 신화’를 해외에서도 실현하는 듯했지만, 내구성과 AS 문제 등으로 시련을 맞았다. ‘바퀴 달린 세탁기’라는 혹평을 받으며 싸구려 차로 인식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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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민원사주 공익신고자들의 ‘용기’ 1992년 3월 14대 총선을 앞두고 학생군사교육단(ROTC) 출신 이지문 중위는 서울 종로구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에서 군 부재자투표 부정을 폭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운동권 출신도 아니고 데모 한 번 안 한 그였지만, 부재자 투표에서 무조건 1번을 찍게 하고 그러지 않으면 투표용지를 빼앗거나 불이익을 주라는 상부의 노골적 지시를 따를 수만은 없었다고 했다. 그의 용기 덕에 군 부재자투표가 영외 투표로 바뀌며 부정선거를 차단하는 발판이 마련됐다. 정작 그는 헌병 조사와 영창생활을 하다 그해 5월 이등병으로 파면됐고, 삼성그룹 사전 채용이 취소된 후 직장도 구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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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배춧잎 두 장에 배추 한 포기 ‘신용카드보다는 체크카드, 그보다는 현금’이라는 재테크법이 있다. 신용카드는 당장 돈이 나가지 않아 충동구매를 부추길 수 있지만, 통장 잔액 한도에서 결제하는 체크카드는 그걸 막아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쓸데없는 곳에 돈을 쓰지 않으려면 현금만 한 게 없다. 지갑에서 5만원권 지폐를 빼는 느낌과 카드명세서에 서명하는 느낌은 엄연히 다르다. 지금이야 2009년 6월23일부터 신사임당을 넣어 발행된 5만원권이 ‘대세 화폐’지만, 2010년대 중반까지는 세종대왕이 그려진 1만원 지폐가 가장 많이 쓰였다. 초록색 바탕이어서 ‘배춧잎’이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붉은색 계열 1000원권은 단풍잎이었다. 지갑이 얇은 서민들은 세뱃돈이나 경조사비로 배춧잎을 몇 장 넣을지 많은 고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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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뉴스테이와 뉴빌리지 현대식 주거공간으로 탄생한 아파트는 이제 재산증식 수단 1호가 됐다. 그럴수록 아파트에 대한 욕망은 뜨거워지고 있다. 그 욕망은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 줍니다”라는 아파트 광고 문구가 자극적으로 보여주듯, 어디에 무슨 아파트에 사느냐로 부(富)의 정도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그 결과 아파트 이름은 화려해지고 길어지고 있다. 지역명 다음에 ‘자이’ ‘래미안’ ‘푸르지오’ 등 아파트 브랜드를 넣고 특장점을 살린 ‘메트로’(역세권), ‘리버뷰’(강이 보임), ‘센트럴’(도심에 위치) 같은 별칭이 붙는다. 2개 이상 대형 건설사가 짓는 단지라면 각각의 브랜드를 나열해야 하니 이름은 끝없이 길어진다. 전국에서 가장 긴 단지 이름은 25자에 이르고 보통 10자를 넘기 일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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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단도직입 “집값 작년부터 이상신호…무원칙하고 무능한 정부, 의지마저 박약” 정부는 일시적 잔등락이라고 하지만, 부동산 가격 상승에 서민·중산층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한국은행은 금리를 내리고 싶어도 집값을 자극할까 내리지 못하고 있다. 겨우 집 한 채 장만한 사람들도 지역별 양극화가 심해지며 ‘똘똘한 한 채’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서울 고가·저가 아파트 간 격차가 역대 최대로 벌어졌다. 무엇보다 지금 높은 집값을 청년 세대들은 감당할 수 없다. ‘인서울’ 대학 진학을 위한 입시경쟁, 좋은 일자리를 향한 취업 전쟁에서 승리해도 내 집 마련은 ‘넘사벽’이다. 도리어 알뜰하게 모아가던 전 재산을 전세사기에 날린 피해자들이 늘고 있다. 다수를 열패감에 밀어넣는 집값 상승은 언제까지 지속될까, 정부 대책은 효과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