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전쟁, 아직 초입국면…중국의 ‘굴기’ 주춤한 지금이 기회”

박재현 논설위원

김형준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장

김형준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장이 지난 3일 경기 성남시 판교 사무실에서 세계 반도체 경쟁 현황과 대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미·중 반도체 전쟁으로 중국의 기술 발전 속도가 늦춰지는 사이에 우리는 기술 개발로 예전의 초격차를 유지해야 한다”면서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뛰어넘는 인공지능(AI) 연산에 특화된 저전력 신경망처리장치(NPU) 개발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정지윤 선임기자

김형준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장이 지난 3일 경기 성남시 판교 사무실에서 세계 반도체 경쟁 현황과 대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미·중 반도체 전쟁으로 중국의 기술 발전 속도가 늦춰지는 사이에 우리는 기술 개발로 예전의 초격차를 유지해야 한다”면서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뛰어넘는 인공지능(AI) 연산에 특화된 저전력 신경망처리장치(NPU) 개발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정지윤 선임기자

김형준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장은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를 지낸 반도체 소자·공정 전문가이다.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학회장, 한국반도체산업발전위 공동의장 등을 맡아 반도체 산업 역량을 끌어올리는 데 기여해왔다. 2015년 서울대 교수들과 함께 펴낸 <축적의 시간>은 기술 발전을 위한 제언으로 주목받았다. 2022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미래 핵심·원천 기술 확보를 위해 범정부 차원에서 출범시킨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 단장을 맡고 있다.

안보와 직결된 전략물자가 된 반도체 산업…중국, 막대한 돈 쏟아부으며 자립화 시도
미국 견제로 속도 느려지겠지만 시간 문제…한국, 옛날처럼 ‘초격차’ 만들어가야

기술발전 격동기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노키아처럼 한 방에 훅 가버려
인력 유출 막기 위해 R&D·인프라 지원 필요…반도체 설계 회사 육성도 시급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전쟁’이 치열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반도체는 사람의 심장과 같다. 심장이 약하면 덩치가 아무리 커도 강하다고 할 수 없다”며 노골적으로 반도체 굴기를 주문하고 있다. 미국은 2022년부터 첨단 반도체와 고성능 제조 장비의 중국 수출을 막고 있다. 그러면서 지난 4일 일본·유럽연합(EU)과 함께 구형 반도체까지 제재키로 하고, 한국과 대만에는 미국에 생산시설을 지으라고 압박한다.

한국에서 반도체는 수출의 15%를 차지하는 최대 기간산업이다. 한국에 중국은 최대 반도체 시장이고, 미국은 원천 기술을 갖고 있다. 미·중 틈바구니에서, 또 일본·대만과의 시장 경쟁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 대표되는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지금 어느 때보다 복잡한 고차방정식의 해답을 찾아야 한다. 반도체를 놓고 세계는 왜 이토록 전쟁을 방불케하는 경쟁을 벌이고, 그 속에서 우리의 길은 무엇일지 김형준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장에게 들어봤다. 그는 “본격적인 전쟁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초입 국면”이라며 “반도체는 이제 안보와 직결된 전략물자가 됐고, 각국은 이를 주권(Sovereignty)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또 “반도체 전쟁으로 중국의 기술 발전 속도가 늦춰지는 사이 우리는 기술 개발로 예전의 초격차를 유지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 반도체 전쟁은 어디서 촉발된 것인가요.

“반도체 산업은 초거대 글로벌 분업 구조입니다. 반도체 제조 국가는 6개, 글로벌 기업의 현지 공장이 있는 싱가포르·말레이시아 등까지 포함하면 9개국 정도 됩니다. 여기서 미국은 설계를 하고, 제조는 한국·대만, 소재·부품은 일본이나 EU 등이 공급망을 형성합니다. 이 구조를 중국이 거부한 겁니다. 중국은 원유 수입량보다 반도체 수입이 더 많아요. 이걸 탈피해서 반도체를 직접 만드는 자국화·자립화를 하고 싶은 거지요. 그래서 2015년부터 10년 동안 1조위안, 우리 돈으로 치면 170조원이라는 엄청난 돈을 투입하며 자급률 70%를 달성하려 합니다. 미국이 이를 견제하고 나서면서 전쟁이 촉발된 겁니다.”

- 중국은 왜 필요한 반도체를 수입하거나, 최소한 미국처럼 TSMC 같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를 활용하지 않을까요.

“안보 이슈 때문입니다. 반도체가 없으면 드론조차 날릴 수가 없습니다. 미사일을 쏠 수도, 미래를 대비한 우주선도 발사할 수 없습니다. 전쟁 무기에 다 반도체가 들어가는데 그걸 모두 해외에 의존하는 게 불안한 거죠. 또 TSMC에 맡기면 다 해결될까요. TSMC의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이 60% 정도인데, 밀려드는 신규 수요를 다 받아주지 못할 수도 있고요. 글로벌 공급망의 정점에 있는 미국이 대만에 중국 제품을 못 만들게 할 수 있습니다. 현대전에서는 반도체가 무기입니다.”

- 기술이 국제정치 패권을 좌우하는 ‘기정학’(技政學·Techno-politics) 시대의 핵심이 반도체란 말씀이군요.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의 반도체 기업 인텔이 얼마 전 파운드리를 강화한다고 했지만 현재 최첨단 프로세서를 제조할 수 있는 기술은 대만 TSMC와 한국의 삼성전자뿐입니다. 대만은 중국이 위협하고 있고 한국은 북한에 접해 있죠. 언제든지 분쟁 지역이 될 수 있는 곳이니 굉장히 불안하죠. 그런데 반도체 생산이 멈추면 모든 산업이 다 멈추는 거잖아요. 코로나 팬데믹 때 반도체 부족으로 자동차를 못 만드는 경험을 했잖습니까. 그래서 미국도 반도체를 자국 안에서 생산하기로 한 겁니다. 삼성전자·TSMC에 미국에 공장 지어라, 인텔한테는 보조금 주면서 공장 세우라고 하는 거지요. 이를 담은 법이 2022년 통과된 미국의 ‘칩스법(반도체지원법)’입니다.”

- 미국 정부의 보조금 규모를 보면 삼성전자나 TSMC보다 미국의 인텔에 몰아주고 있는데요(미국 정부는 보조금 85억달러에 저리대출 110억달러 등 195억달러를 지원한다. TSMC에는 보조금 66억달러 등 116억달러를 지원한다고 8일 밝혔다. 삼성전자에는 60억~70억달러의 보조금이 예상된다).

“반도체 전쟁과 자국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건 어쩔 수 없는 겁니다. 왜 미국 기업에만 많이 주냐고 아무리 아규(언쟁)해도 미국은 눈도 깜짝 안 할 겁니다. 삼성전자 보조금이 60억달러 정도 될 것으로 전망되는데, 그 돈이 적은 액수도 아니니 최대한 받고, 그걸 활용할 방안을 찾는 게 합리적입니다.”

- 주요 정보 제공 등 보조금에 대한 대가가 있잖습니까. 그 정보가 경쟁 업체에 흘러갈 위험도 있다고 하는데요.

“미국 정부가 핵심 기술을 요구한들 삼성이 그걸 순순히 내놓겠습니까. 법인도 다르고요. 미국에 있는 오스틴 공장과 테일러 공장의 매출과 주요 고객이 누구다 정도까지는 가능성이 있겠죠. 그러나 그게 기술 정보나 영업 기밀에 의한 손해가 나지는 않을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 미국이 중국으로의 장비 수출을 금지하면서 중국에 공장이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반도체 최대 수입국인 중국 시장을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 아닐까요.

“우리 기업의 중국 진출 역사를 먼저 보죠. SK하이닉스는 법정관리 상태일 때 투자비를 줄이고 생산원가 절감을 위해 우시에 공장을 지었습니다. 시장이 가깝다는 이유는 그다음이었습니다. 삼성전자 시안 공장도 조금 정치적인 면이 있었습니다. 당시 삼성은 모바일폰 공장을 베트남으로 이전하고 싶어 했습니다. 대신 반도체 공장을 짓겠다는 것으로 중국 정부를 자극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또 삼성전자 시안 공장은 사실 입지가 좋지 않습니다. 상하이에서 대륙을 관통해야 하니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듭니다. 그래도 시진핑의 고향이라는 특성을 감안했을 겁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중국 시장 점유율 하락이 우리 기업에 미칠 부정적 영향은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행히 미국이 장비 업그레이드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유예해준 상황입니다.”

- 향후 미·중 간 반도체 전쟁은 가속화할까요.

“빨리 끝날 문제가 아닙니다. 본격적인 전쟁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초입 국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중국만이 아니라 심지어 일본도 이제 반도체를 주권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전의 분업 체계로 돌아간다는 것은 가능성이 매우 낮습니다. 적어도 10년 동안은 최소한 지금 수준의 방식이 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미국의 견제로 중국의 기술 축적 속도가 느려질 겁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중국의 추격에 대응할 시간이 생긴다고 볼 수 있어요. 시간의 문제일 뿐이지 중국은 결국 반도체 자립화를 이뤄낼 것입니다. 우리의 조선과 철강은 이미 중국에 따라잡혔고 근래에는 디스플레이·태양광이 중국에 추격당했습니다. 전기자동차 부문도 중국의 추격을 뿌리치기 쉽지 않을 거예요. 겨우 남은 게 반도체입니다. 반도체 전쟁은 위기이기도 하지만 기회이기도 합니다. 중국이 주춤하는 사이 옛날처럼 초격차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 일본도 반도체 부활에 나섰습니다.

“일본은 30년 전만 하더라도 세계 반도체 매출 톱10에 6개 기업이 있던 곳입니다. 현재도 소재와 장비에서 기술력이 높습니다. 잃어버린 20년을 끝내면서 그동안 잃어버린 반도체 생산 역량을 되살리고자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본 구마모토에 짓는 TSMC 생산 공장에 일본 정부는 10조원 정도 보조금뿐 아니라 도로·철도 등 인프라 확충, 대만 기술자들의 현장 정착 지원까지 전폭적으로 지원했습니다. 일본뿐 아닙니다. 네덜란드의 극자외선(EUV) 장비업체인 ASML이 본사를 국외로 옮기려고 하니까 ‘베토벤 작전’이라는 이름까지 붙여가며 각종 지원책을 쏟아냈습니다. 결국 우리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대한 국가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 그러나 두 기업에 대한 지원은 ‘재벌 특혜’나 ‘부자 감세’라는 시각이 존재합니다.

“그렇기는 합니다. 여론의 반대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나라들은 대놓고 지원하는 상황에서 기업에만 맡겨서는 미래가 불확실하다고 생각합니다. 꼭 보조금이 아니어도 반도체 공장 지역을 국가산업단지로 지정하는 등 인프라를 지원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연구·개발(R&D) 지원입니다. 기업들의 R&D 자금이나 시설 투자에 인센티브를 늘리면 그 자금이 기업에만 머무르지 않고 대학과 연구기관까지 흘러갑니다. 그곳에서 인력이 양성됩니다. 당장 미국과 일본에 짓는 공장들이 가동하게 되면 그걸 돌릴 인력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2030년까지 15만명이 부족하다고 추산되는데, 결국 한국의 우수 인력을 많이 빼갈 겁니다. 반도체 인력의 해외 유출을 막기 위해서라도 지원이 필요하고, 이런 사정을 여론에 설득해야 합니다.”

- 한국이 메모리 반도체 점유율은 높지만, 미래 먹거리인 시스템 반도체나 AI 반도체에서는 어느 정도 경쟁력이 있을까요.

“반도체 산업은 챗GPT가 등장하면서 큰 격동기를 거치고 있습니다. 이전에 인터넷 등장 이후 잘나가던 소니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도태됐고, 스마트폰 등장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기업들은 노키아처럼 한방에 훅 가버렸습니다. 그런 역사에 비춰보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 우리 반도체 기업들도 AI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AI 반도체 기술을 확보해야 합니다. 데이터센터 서버와 로봇, 자동차 하다못해 청소기 같은 소형 가전도 AI 기능이 없으면 팔리지 않게 되니까요. AI는 엄청난 연산력을 갖춘 AI용 반도체가 필요합니다. 영상처리 반도체인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제작하던 조그마한 회사 엔비디아가 시총 2조달러의 빅테크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AI 연산에 GPU를 활용하는 전략이 주효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엔비디아 칩의 전력 소모량이 많다는 겁니다. 전 세계 데이터센터가 쓰는 전기량은 네덜란드·아르헨티나·스웨덴의 1년 전력 소모량과 맞먹는다고 합니다. 결국 GPU를 넘어 AI 연산에 특화된 저전력 신경망처리장치(NPU·인공신경망을 통해 사람처럼 사고할 수 있는 프로세서) 개발에 나서야 승산이 있습니다. 이런 칩을 설계할 수 있는 팹리스(반도체 설계회사) 육성도 시급합니다.”

박재현 논설위원

박재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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