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백만명 청약 ‘로또 아파트’

박재현 논설위원
디에이치 퍼스티어 아이파크 전경. 현대건설 제공

디에이치 퍼스티어 아이파크 전경. 현대건설 제공

전쟁이 끝나고 모두 가난하던 시절부터 2000년대 초까지 복권의 대명사는 주택복권이었다. 1969년 9월15일 처음 발행된 주택복권 한 장의 값은 100원이고, 1등 당첨금은 300만원이었다. 당시 서울에서 괜찮은 주택 가격이 200만원 정도였다고 하니 요즘말로 ‘똘똘한 한 채’를 사고도 남을 금액이었다.

2002년 12월부터 로또가 나오면서 주택복권 인기는 급격히 떨어졌다. 로또는 1등 당첨액이 수백억원도 가능했다. 2003년 4월12일 당첨금은 사상 최대인 407억2000만원이었다. ‘로또 광풍’에 사행성 시비가 일자 정부는 2004년 8월 복권 한 장 가격을 2000원에서 1000원으로 내리고 당첨금 이월도 2회로 줄였다. 그 후 1등 당첨금은 대체로 10억원대 중반으로 떨어졌지만, 전체 복권 판매액의 95%는 로또가 차지했다. 결국 주택복권은 2006년 4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로또 1등 당첨 확률은 814만5060분의 1로 계산된다. 의견이나 성격 등이 잘 맞지 않는 부부를 가리킬 때 ‘로또 부부’라는 우스개도 퍼질 정도로 단어 쓰임새는 넓어졌다. 몇년 전부터는 아파트 분양 시장에서도 애용되고 있다. 수억원의 시세차익을 기대할 수 있는 곳을 ‘로또 아파트’, 이런 아파트에 청약하는 것을 ‘로또 청약’이라고 부른다.

26일 서울 강남구 개포동 ‘디에이치 퍼스티어 아이파크’ 아파트 무순위 청약 3가구에 신청자가 대거 몰렸다. 2020년 최초 분양할 때 가격으로 청약을 받으니 많게는 시세차익이 20억원에 달하는 ‘로또 아파트’인 셈이다. 청약 결과 지난해 6월 83만명 가까이 몰린 흑석리버파크자이 1가구 무순위 청약을 넘어선 101만3456명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그러나 당첨된다고 해도 분양가의 90%에 달하는 잔금을 6월7일까지 마련하려면 수억원의 자기 자금이 필요하다. 웬만한 서민에게는 ‘그림의 떡’인 셈이다. 예전에는 복권에 당첨되면 보금자리를 장만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집 자체가 로또가 됐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해 로또 당첨금으로 서울에서 반듯한 집 한 채 마련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로또 아파트에 당첨돼도 ‘현금부자’이거나 부모에게 도움을 받는 ‘금수저’만 행운을 잡을 수 있는 현실이 씁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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