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현의 한발 멀리서

구중궁궐에서 빨리 나와야 할 사람들

박재현 콘텐츠랩부문장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새 집무실이 들어설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의 모습. 경향신문 자료 사진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새 집무실이 들어설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의 모습. 경향신문 자료 사진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집무실 용산 이전에 시동을 걸었다. 권력의 구중궁궐에서 나와 국민과 소통하겠다는 취지에 누가 반대하랴만, 섣부르고 성급한 ‘공간 이동’으로 생기는 안보 공백과 이전 비용 논란에 여론의 지지는 뜨겁지 않다. 결국 이전 배경에 풍수지리가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왔다. 합리적 주장과 반론을 바탕으로 진지하게 추진해야 할 중대사에 불통과 비(非)과학이 등장하는 모양새가 씁쓸하다.

박재현 콘텐츠랩부문장

박재현 콘텐츠랩부문장

4차 산업혁명 시대, 첨단 기술로 세계 곳곳에서 시장을 개척하고 있지만 국내 기업 역시 풍수에 민감하다. SK그룹 서울 종로 서린빌딩 사옥은 거북이 물을 마시는 ‘영구음수형(靈龜飮水形)’의 명당으로 유명하다. 건물 네 기둥에 거북 발 모양의 상징이 있고, 청계천 쪽 정문 앞에는 거북 머리를 상징하는 검은 돌, 후문 쪽엔 꼬리를 뜻하는 삼각 문양이 있다. 건물 전체를 거북이 떠받치고 있는 형태를 만든 것이다. 삼성 또한 창업주 이병철 회장 때부터 풍수와 밀접한 기업이었다. 2008년 그룹의 핵심 계열사들이 이전한 서초동 사옥은 여러 계곡의 물이 고였다가 천천히 나가는 ‘취면수(聚面水)’ 형상으로서 돈이 모이는 자리라고 한다. 이전 당시 이건희 회장의 집무실도 풍수 자문을 거쳐 최종 결정됐다.

재벌들의 이익단체인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역시 풍수친화적이다. 정문이 여의도공원을 마주 봤던 기존 건물을 허물고 2013년 현재 건물을 완공했을 때는 정문이 동향인 광장아파트 쪽으로 바뀌었다. 그해 전경련 하계포럼에서는 ‘CEO를 위한 풍수 인테리어’를 강연했다.

이심전심이었을까. 전경련 산하 경제연구원은 청와대 집무실을 용산으로 옮기면 관광수입이 매년 1조8000억원씩 발생하고 국내총생산(GDP)이 많게는 3조3000억원 늘어난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산출 근거는 너무 낙관적이고 설득력이 부족하다. 경제적 효과를 과학적으로 분석한 보고서가 아니라 새로운 권력을 향한 노골적인 스토킹이다.

전경련은 탄생부터 정경유착의 상징이었다. 특히 박근혜 정부 때는 청와대로부터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출연 요구가 있자 800억원을 갹출하는 데 기업들을 동원했다. 전경련이 당선인과의 거리를 좁힐수록 정경유착이 다시 꿈틀거릴까 걱정된다. “국민과의 소통은 공원을 찾는 한가한 시민과의 만남으로는 이뤄지지 않는다. 적극적으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 만나야 한다”(동아일보 송평인 칼럼). 동감한다. 그렇기 때문에 알아서 가려운 곳을 찾아 긁어주는 전경련과의 대화가 소통일 수는 없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당선인을 향해 경제단체들은 정부의 규제 때문에 경영활동이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에서 대기업과 총수를 비롯한 대주주들은 기울어진 운동장 위에서 달콤한 과실을 두둑히 챙기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과 카카오페이의 ‘상장 사태’에서 보듯 대기업들은 알짜 계열사를 떼어낸 뒤 중복상장으로 돈을 쉽게 끌어오고 수백억원씩 돈잔치까지 벌인다. 반면 소액주주는 손해가 나도 속수무책이다. 현대산업개발의 광주 학동아파트 붕괴사고와 삼표산업 채석장 사고, 현대제철 등 대기업 사업장에서도 산업재해가 끊이지 않고 있지만 중대재해처벌법은 아직 ‘종이 호랑이’일 뿐이다. 가습기살균제 참사 후 11년 만에 나온 조정안을 거부하는 기업도 있다.

‘동학개미’로 일컫는 소액주주들이 급증했지만 증시 자금은 미국 기업으로 흘러가고 있다. 삼성전자보다는 애플에, 현대차·기아보다는 테슬라에, 네이버보다는 아마존에 열광하는 ‘서학개미’로 변신하고 있다. 미래성장성, 지배구조, 배당 등 주주환원 정책 등에서 미국 기업들이 월등하기 때문이다. 창업자의 후손이라는 이유로 경영권을 물려받고 계열사마다 보수를 받아 해마다 수십억원을 챙기는 회장님이 어디 한둘인가.

대한한국 대표기업 삼성전자는 최신형 스마트폰에 인위적으로 해상도를 낮춰 과열을 막는 게임 최적화 서비스(GOS) 기능을 넣어서 소비자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미래먹거리인 반도체 파운드리 분야에서는 대규모 투자 발표에도 대만 TSMC에게 연전연패하고 있다. 시장의 우려가 높아지고 있지만 이재용 부회장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정치권력만 소통이 필요한 게 아니다. 기업 역시 소비자·고객, 노동조합, 임직원 및 주주 등 이해관계자와 소통하고 대화해야 한다. 세상과 동떨어진 대기업 총수들 역시 안온한 구중궁궐에서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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