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진쌀’이 처한 슬픈 운명?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취반식미검정’은 밥을 먹어보고 맛·색·향 등을 품평하는 과정으로 평가단에 들어가 온갖 밥맛을 본 적이 있다. 기준이 되는 ‘표준품종’ 쌀을 두고 다양한 품종의 밥을 먹어보니 누구는 씹힘성에, 누구는 윤기에, 또 누구는 부드러움에 제각각 가점을 줄 뿐 못난 쌀은 없었다. 쌀의 민족답게 한국은 쌀 품종 개발도 잘하고 쌀농사 기술도 세계 최고이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1980년대까지 ‘정부미’라 불리며 맛은 없어도 양은 많은 다수확 품종인 통일벼 농사와 일반미 농사를 따로 짓기도 했다. 통일벼는 국가가 수매하는 지정품종이었으므로 소득의 기반이긴 해도 밥맛은 끝내 좋은 점수 주기 어려워 ‘영세민’이나 군인들이 먹는 싸구려 취급을 할 때도 있었다. 다른 지역에서 나락을 싣고 와 경기도에서 방아를 찧어 ‘경기미’로 속여 파는 ‘쌀세탁’도 감행했으나 이젠 “그땐 그랬지”의 추억담이다. 지금은 경기미가 아니어도 지역마다 맛있는 쌀이 있다.

2022년 말 기준으로 강원도에는 ‘오대’, 경기는 ‘참드림’, 경남은 ‘영호진미’, 전남은 ‘새청무’, 전북은 ‘신동진’ 쌀이 잘 맞는다며 볶음밥에 어울리는 품종, 김밥에 어울리는 품종까지 세심하게 구분해 농림축산식품부가 추천까지 해 놓았다. 쌀은 각 지역의 토질과 날씨에 따라 잘 맞는 품종으로 세심하게 개발돼 최소 10년에서 15년 정도 심어 보고, 망쳐 보기도 하면서 잘 정착시킨다.

신동진 품종은 호남평야를 품고 흐르는 ‘동진강’에서 이름을 딴 전북의 대표 품종으로 1992년부터 개발해 1999년 ‘신동진(익산438호)’으로 이름을 얻어 호남평야 일대에 보급됐다. 쌀알도 굵고 비료는 덜 들어가 친환경농업에도 어울리고, 맛도 좋아 정부가 농가에 적극 권했다. 2000년부터 재배가 늘다가 2004년에 비료가 많이 들어가 벼가 쓰러져 큰 피해가 나기도 했다. 신동진은 비료를 적게 주는 ‘소비’ 품종으로 적절한 거름양을 가늠하는 시간이 필요해서다. 그래도 신동진은 미덕이 많은 품종으로 민관 협력으로 전북을 대표하는 ‘브랜드쌀’이 되었다. 쌀알이 굵어 다른 품종과 섞이면 티가 나서 속이기 어려워 단일 품종쌀의 격에도 딱 맞아 2009년 ‘우수품종상’도 거머쥐었고, 소비자 인지도도 높다. 2020년 농촌진흥청에서 펴낸 <지역에 스며든 우리 품종 이야기>를 보면 딸기 ‘설향’과 사과 ‘홍로’와 더불어 ‘신동진’이 꼽힐 정도로 국가와 농민, 소비자 모두가 사랑하는 쌀이다.

그러다 쌀도 많은데 자꾸 쌀농사를 지어 팔아달라 한다며 양곡관리법으로 정치싸움이 난 뒤, 느닷없이 ‘신동진 퇴출’ 카드가 나왔다. 다수확에서 고품질 쌀 생산으로 전환을 하겠노라며 다수확 품종인 신동진의 공공비축 매입을 2024년부터 느닷없이 중단하겠다며 말이다. 이에 황당무계하다는 농촌의 반발에 겨우 2026년까지 유예 결정이 났다. 당연히 쌀에도 품종 교체주기가 온다. 단일 지역에 한 품종만 오래 심다 보면 병에 적응해 피해가 나고 기후위기도 큰 변수여서 과학자들은 다음 ‘선수’를 키워내느라 애를 쓴다.

신동진의 다음 주자는 ‘참동진’. 벼의 ‘흰잎마름병’을 잘 견디도록 개발했고, 신동진의 장점은 그대로 물려받은 차세대 선수다. 다만 농사는 일 년에 한 번 지을 뿐이니 변화무쌍한 날씨에 적응은 잘하는지, 거름은 얼마나 줘야 하는지, 맛은 어떤지 살필 시간이 필요하다. 심었다가 망치면 농가가 피해를 입기 때문에 더뎌도 차근차근 가보는 것이 보급 품종의 길이다. 그런데 2025년까지는 참동진으로 갈아타라고 급하게 등을 떠미는 형국이다. ‘다수확’ 품종이라던 신동진은 10a당 536㎏, 참동진은 540㎏이라고 농진청 보고서에도 나오는데 어쩌라는 것인지 혼란스럽다. 한국 쌀은 이미 고품질인 데다 수확량도 많다. 이는 과학의 승리요, 농민 노력의 산물이건만, 쌀농사 그만 지으라고 솔직히 말은 못한 채, 애먼 신동진 쌀만 잡도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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