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꽃도 못 보고 짓는 마늘농사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하루종일 밭을 매고 와서도 꽃에 물을 주는 농촌의 할머니들을 보고 있으면 아름다움이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화분에 물을 주고 있는 여성농민에게 식물 기르는 일이 지겹지도 않냐 물었더니 “이쁘잖아. 촌에서 꽃을 볼 일이 없어”라고 알쏭달쏭한 말을 건네신다. 기실 농사라는 것은 꽃과의 싸움이다. 굵고 단단한 소출을 내기 위해서 꽃은 적절하게 쳐내거나 아예 꽃 볼 일이 없도록 하는 것도 농사다. 과수농사에서 꽃을 솎는 적화작업이 일 년의 농사를 결정하듯, 마늘은 아예 꽃대가 올라오지 못하게 끊어버리는 농사다. 봄 한철 맛있게 볶아먹고 장아찌도 담그는 그 마늘종이 마늘 꽃대다. 영양을 마늘로 집중시켜야 하기 때문에 꽃을 길러내는 마늘종은 그냥 둘 수가 없다. 마늘종을 그대로 두면 마늘꽃이 피는데 아기 주먹만 한 동그란 꽃이 보랏빛으로 피어 퍽 예쁜 꽃이다. 고급 꽃품종인 ‘알리움’이 마늘꽃이지만 꽃 보자고 짓는 농사가 아닌지라 농촌에서 보기 힘든 꽃도 마늘 꽃이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마늘은 종자의 특성상 꽃으로 퍼지는 종자번식이 아니라 마늘의 인편으로 영양번식을 하는 작물이다. 그래서 마늘 영양체로 종자를 활용하다 보니 바이러스 감염 문제로 육종가들의 골치를 아프게 해왔다. 하여 급한 대로 병을 피하는 방법이 외래종 마늘을 도입해 육성시키는 방법을 써왔다. 게다가 마늘은 온도에도 민감한 작물이다. 마늘 하면 의성, 단양의 육쪽마늘이 유명한데 이 마늘을 ‘한지형 마늘’이라고도 하고 재래종 마늘이라고도 한다. 서늘한 기운에서 잘 자라는 한지형 마늘은 육질이 단단해 껍질 까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지만 특유의 알싸한 맛과 두고두고 먹기에 좋아 김장에 쓰기 좋다. 그래서 여전히 ‘김장마늘’ 하면 육쪽마늘이자 재래종마늘을 제일로 여긴다. 하지만 직접 손으로 마늘을 까서 먹는 시대가 급격히 저물면서 언제까지 재래종 마늘 농사가 이어질지 전망은 어둡다. 반대로 기후가 따뜻한 곳에서 들여온 속칭 ‘스페인마늘’인 대서종 같은 마늘을 ‘난지형 마늘’이라 한다. 껍질이 잘 까지기 때문에 깐마늘 시장에서 수요가 많고, 때마침 기후위기로 날이 뜨거워져 이제 한국에서도 난지형 마늘을 더 많이 기르고 있다.

여러 이유로 ‘홍산마늘’은 마늘계의 슈퍼스타이다. 2016년 품종등록을 한 홍산마늘은 ‘꽃마늘’로 보통의 작물처럼 꽃을 이용해 육종을 할 수 있어 기존의 마늘 육종이 갖는 고충을 덜어주었다. 안 그래도 씨마늘 수입에 많은 돈을 써야 했던 차에 귀한 품종이 육성된 것이다. 홍산마늘에 넓을 홍(弘)자를 갖다 붙인 이유가 한지와 난지를 가리지 않고 심을 수 있어서다. 여기에 크게 잘 자라는 데다 쏙쏙 잘 뽑히는 성질 때문에 수확에도 용이하다. 종종 오해를 받는 것이 홍산마늘 끝(인편)이 초록색이어서 소비자들이 꺼리기도 했지만 그 초록색에 약용성분이 더 많이 들어 있다며 적극적으로 알려낸 덕분에 외려 초록색은 ‘국산마늘’의 증거로 삼기에도 좋았다. 심어보니 좋았던 그 홍산마늘은 2020년 품종대상까지 거머쥐면서 국산 딸기 품종 ‘설향’에 버금가는 차세대 스타의 면모를 모두 갖춘 마늘이다.

하지만 홍산마늘 특화지역인 홍성군에서 큰 사고를 쳤다. 전국에서 홍산마늘 재배 비율이 가장 높은 홍성군은 선정적인 홍보영상을 제작 배포했다가 치도곤을 당하는 중이다. 본격적인 햇마늘 판매 시기에 물가안정을 이유로 마늘을 수입하겠다는 정부 때문에 부아가 치미는 와중에 마늘로 사고를 친 것이다. 홍보영상의 선정성 때문인지 농업 이슈가 드물게 중앙언론에까지 오르내린 주목 효과는 있었지만, 마늘 농가의 사정이 끝으로 몰려 있는 와중에 쓸데없이 이목을 낚아챈 것이다. 꽃 한송이 구경도 못하고 마늘 한 알 바라보며 땅에 머리 숙여 마늘 기르던 농민들과 홍산마늘 품종을 애써 육성해낸 육종가들 모두에게 큰 죄를 지었다. 백배사죄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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