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트리클럽에 농촌이 없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80년대 ‘공일(휴일)’ 특유의 풍경이 있었다. 전국노래자랑을 보면서 ‘땡!’ 소리에 박장대소를 한다든가 권투와 씨름 생중계를 보는 풍경이 아련하다. 아버지는 텔레비전 화면에 대고 “잽잽! 어퍼컷!”을 외치며 훈수를 두곤 했지만, 이제 권투경기는 올림픽 때나 볼까 말까다. 대체로 소득이 올라가면 스포츠도 큰 자본이 얽힌 종목이 인기를 끌고, 골프도 그중 하나여서 생중계도 이루어진다. 스타 골프선수들도 많은 데다 특권층만의 스포츠가 아닌 대중스포츠의 면모를 갖추었다고도 할 수 있다. 골프 치는 예능프로그램도 많아지면서 더욱 친근해졌고, 이제 회식 뒤에 노래방 코스 대신에 ‘스크린골프’ 문화도 낯설지 않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심지어 골프 업계는 코로나19 특수까지 누렸다. 실내 스포츠에는 여러 제약이 있던 탓에 야외활동을 할 수 있는 골프의 인기가 치솟고, MZ세대까지 골프에 유입되어 새로운 골프 소비계층이 창출되었다. <레저백서2022>에 따르면 골프 인구는 564만명으로 전년 대비 20% 급증했고, 가격이 싼 동남아시아 골프 투어가 어려워지자 국내 골프장으로 방문객이 늘어나면서 영업이익률이 39.7% 상승한 것으로 나왔다. 한때는 아웃도어 모델이 톱스타의 상징이었지만 근래엔 골프의류 광고 모델을 거머쥐는 것이 기준일 정도로 골프 산업은 나날이 성장 중이다. 하지만 성장에는 그늘이 짙기 마련이다. 결국 골프장 문제가 남는다. 한국에는 골프장이 500곳 정도 있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달려 이용료가 너무 비싸고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도 턱없이 부족하며, 무엇보다 골프 산업이 갖는 경제성을 이유로 골프장을 늘려야 한다고 골프업계는 말한다.

하지만 골프장이 들어서는 곳은 대체로 농어촌이다. 해안가를 따라서 골프를 즐길 수 있는 곳들이나 풍경이 좋은 골프장은 인기가 높아 심지어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골프장’ 같은 순위를 매길 정도다. 다만 죽기 전에 변하지 않을 사실 하나는 골프장이 들어설 때마다 지역주민들은 갈등에 휩싸이고, 산을 깎고 농지는 훼손된다는 것이다. 내가 사는 남양주시에는 아직도 반딧불이가 나오는 곳이 있다. 축령산을 끼고 계곡도 맑은 수동면 내방리 일대다. 그런데 이곳에 무려 38홀짜리 거대 골프장이 들어서려 하자 갈등이 일고 있다. 또 전북 순창군 주민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순창읍에는 기존의 9홀짜리 골프장을 18홀까지 확장공사를 하겠다 하여 끌탕을 하고 있다. 골프장 건설 계획이 알려지면 그때부터 ‘유치위원회’의 이름을 내걸고 지역발전, 세수확보 등의 명분으로 일부 인사들이 찬성운동에 나선다. 지역 정치인들은 여기에 힘을 보태고, 지역언론은 골프장이 큰손 광고주가 되어주길 바라면서 우호적인 여론을 만드는 데 끼어든다. 반면 골프장 지척의 주민들은 골프공도 날아오고 골프장에 뿌린 농약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며 극렬하게 반대운동을 한다. 골프장 문제로 어제는 형님아우, 오늘은 원수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깟 공놀이 때문에!

골프장의 농약사용 논란 때문에 친환경 골프장을 만든다 해도 골프공을 잘 굴리려면 잔디만 남아야 하므로 제초제가 필수다. 여기에 어마어마한 양의 지하수를 쓰는데 농촌에서 지하수는 농업용수이자, 식수이기도 해서 물꼬 싸움까지 벌어진다. 지방세를 체납하던 제주도 골프장에 지하수를 막아 버린다 하자 득달같이 달려가 납부를 하는 걸 보니 골프 산업은 지독한 물 산업이기도 하다.

어디 남양주시 수동면과 순창군 순창읍뿐이랴. 이 지면에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골프장은 전국 농어촌을 쪼개놓는 일등 공신이다. 골프가 대중스포츠가 되어간다고 하지만 그 어떤 스포츠가 이렇게까지 삶의 터전을 갈등으로 몰아넣는단 말인가. 골프장을 보통 CC, 즉 컨트리클럽(country club)이라 부르던데, 그 ‘컨트리’ 들어서면 진짜 컨트리인 농촌은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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