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과 농촌쓰레기 실화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추위와 가스비에 시달렸던 겨울이 끝나간다. 봄은 반가워도 미세먼지와 산불은 무섭다. 산불은 더 자주, 더 크게 나는 추세다. 지난 주말에는 하동의 지리산 산불을 끄던 60대의 진화대원이 목숨을 잃기까지 했다. 독한 가뭄에다 기후위기도 산불 규모를 더 키운다. 산림과학원의 보고서를 보니 고온화 현상으로 병해충 활동도 승해 나무가 말라죽고, 고사목이 강력한 불쏘시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2012년 드물게 벼락이 쳐 산불이 난 적은 있지만 한국의 산불은 사람에게서 온다. 방화도 있지만 대체로 실화(失火)다. 산을 찾은 사람들이 내는 불이 40% 이상, 18% 정도는 영농철에 밭둑을 태우다 불이 난다. 12% 정도는 쓰레기를 태우다 불티가 산으로 날아가는 경우다. 하여 봄철이 다가오면 둑을 태우지 말라 안팎으로 신신당부해도 관행을 끊지 못한다. 대체로 마을의 터주들인 고령의 노인들에게 밭둑을 태우면 안 된다 말려보지만 막무가내인 경우도 많다. 좁은 동네에서 서로 얼굴 붉히기 전에 강력한 단속과 행정지도가 필요한 이유다.

하지만 농촌에서 태워야 할 것은 논둑 말고 더 많다. 수확하고 남은 고춧대나 깻단 같은 영농부산물이다. 불 때서 밥해 먹던 시절도 아니고 아궁이에 불을 지펴 영농부산물 처리도 어렵다. 트랙터로 밭을 밀어 처리하는 방법도 있지만 작은 밭을 일구는 고령 농민들에게 트랙터로 하는 밭정리도 돈이 드는 일일 뿐이다. 농촌마을의 생활 불편을 해결해주는 KBS 예능프로그램 <일꾼의 탄생>을 보면 고춧대나 콩대를 처리해 달라는 부탁이 많다. 뽑을 힘도 처리할 힘도 모자라기 때문이다. 고춧대를 쌓아놓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 결국 밭 한가운데 쌓거나 드럼통에 태우다 불티가 산으로 튄다. 그나마 영농폐비닐과 농약병은 집하장이 설치되어 수거하면서 해결의 가닥을 잡고 있다. 하지만 이것도 행정이 얼마나 관심을 갖느냐에 따라 다르다. 영농 폐자재 수거를 해두면 비누나 소액의 현금을 적립해 주는 곳도 있지만 기껏 모아뒀더니 빨리 가져가질 않아 결국 또 태우기도 한다.

여기에 생활쓰레기와 음식쓰레기 처리 문제도 남는다. 읍·면 소재지의 경우 쓰레기 수거가 원활한 편이지만 깊숙이 들어선 농촌마을에는 쓰레기 수거 차량이 들어오지 않아 태울 수밖에 없다. 운전을 할 수 있는 주민들은 차에 실어 읍·면사무소 분리수거장에 직접 가서 처리하지만 관절도 성치 않고 운전도 어려운 노인들은 마을 집하장까지 쓰레기를 가져가는 것도 점점 벅찬 일이 되어간다. 오랜 습속이기도 하고 실제로 소득이 없어 종량제봉투 사는 데 드는 몇백원도 아까워한다. 무상으로 종량제봉투를 지급하면 근처의 자녀들에게 주려 봉투는 모으고 쓰레기는 태운다. 종량제봉투 정책이 농촌에서는 다르게 작동하므로 농촌만의 폐기물 정책이 필요한 이유다. 시범적으로 산림청과 농림축산식품부가 영농부산물 파쇄기를 지원하자 부산물을 잘게 잘라 퇴비화하기 좋아 산불 염려도 줄일 수 있어 긍정평가를 받았지만 돈 핑계로 도입이 더디다. 귀농귀촌을 꿈꾸는 이들은 깨끗한 자연환경에서 살고 싶다는 이유를 꼽는다. 하지만 깨끗한 농촌은 상상에만 있을 뿐, 아침저녁으로 쓰레기 태우는 매캐한 연기가 자욱하다. 음식물쓰레기는 귀촌인들도 어쩌질 못해 땅에 묻고 만다. 여기에 지역발전을 내세우며 들어서는 산업단지는 산업폐기물 매립장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아 독한 산업 쓰레기마저 농촌으로 몰려오니 농촌의 쓰레기 대란은 계속된다.

산불이 나면 어르신들 줄초상을 치른다는 말이 있다. 산불 보고 크게 놀라고, 잿더미가 된 삶의 터전을 보며 괴로워하다 명을 재촉한다. 자연도 사람도 집어삼키는 산불. 그나마 돈과 교육으로 해결할 수 있는 농촌쓰레기 문제부터라도 해결하면서 자나 깨나 산불조심을 외쳐야 한다. 이것은 농촌의 실화(實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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